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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호스피스 의사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깨달은 삶의 의미. 레이첼 클라크 저/박미경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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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메이븐. 예스24

 

 

지난 해 읽은 책들 중에서 한 권만을 추천해 달라면 망설임 없이 단연코 이 책을 선택할 것 같습니다. 건성건성 그린 것 같은 책 표지 그림이 주는 무미건조한 느낌과 오래된 타자기로 찍어낸 듯한 필체의 책 제목이 주는 형식적인 첫 인상과는 달리, 책장을 몇 장 넘기기도 전에 '이건 뭔가 다르다'는 삘이 강하게 전해져 왔죠. 어쩌다 도서관에서 이 책이 제 눈에 걸려들었는지...^^

레이첼 클라크의 세심하면서도 시종일관 따뜻하고 애정어린 시선과 번역서적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을 만큼 유연하게 번역하신 박미경님의 하모니가 한권의 뛰어난 책을 독자들에게 선사한 것 같습니다. 이런 책을 접하게 된 걸 개인적으로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 때문이었을까요?... 책을 완독하는 동안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혔는지 모릅니다. 처치곤란하게 쌓여가는 책들 때문에 요즘엔 도서관에서 일차로 빌려다 읽고, 합격점을 받은 소장하고 싶은 책들만 구입하려고 하는데요...

이 책은 책을 읽는 도중에 바로 인터넷으로 주문을 넣을 정도였지요.

믿고 보는 배우가 선택한 작품처럼, 책을 읽는 도중에도 이 작가의 필력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책이 될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거죠.

우회적인 표현들로 삶의 현재성과 인생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선명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필력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뭔가 막연하게 해답을 갈구하던 문제에 대해 속시원한 설명을 해주는 일타강사의 해설을 듣는 느낌이랄까요?

포스팅하면서 늘 글을 쓰는 입장에서 저자의 필력이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사람과 인생에 대한 지극한 관심 사랑 그리고 깊은 성찰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늘 죽음을 옆에서 지켜보게 되는 의사들마저 거론하기 꺼려하는 죽음이라는 주제.

 

 

작가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하는 의사입니다. 삶의 마지막 자락을 보내는 환자들과 늘 함께하는 직업의 특성상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 지인들의 모습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명멸했을 겁니다.

그리고 막상 의사였던 자신의 아버지를 말기암으로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겪어야 했던 환자보호자이자 딸로써의 소회를 너무도 진솔하고 감성적으로 묘사해놓아서 여러 번 눈물을 훔쳐내곤 했지요.

유려하고 세심한 필체는 가슴아픈 이야기마저 고급스러운 벨벳으로 감싸안은 듯 잔인한 사실들을 부드럽게 받아들이게 합니다.

 

 

한국에서의 우리 삶의 마지막 모습은 과연 어떨까요? 집안 어른들의 죽음을 지나오며 바라본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둘러싼 모습은 그리 좋게 보이지 만은 않았습니다. 갖은 인공관 장치들이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본 것처럼 주렁주렁 전신에 매달려 있고, 무의식 상태인 것처럼 보이는 상태로 무작정 침대위에 누워 시간만 보내고 있는 초고령환자들의 모습들은 죽음이란 무형의 존재에 대한 공포심을 한없이 키워놓습니다.

혹자는 부모가 아이들을 돌보듯, 고령이 되면 자식들이 부모를 돌봐야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리 녹녹한 문제는 아닙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기를 희망하지만 실제론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무의미한 생명연장에 대한 사려깊고 신중한 사회적 성찰이 본격화되어야 할 때임을 실감하게 합니다.

 

이 책에 언급된 많은 사랑의 실제 사례들이 주는 찐한 감동들은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이만 먹었지 어떤 삶이 충만한 삶인지 여전히 모르는 독자들에게 '살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법'에 대해 너무도 가슴 먹먹하게 전해주는 이 책은, 선데이타임즈 톱 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대중성과 작품성 모두를 평가하는 2020 코스타 바이오그라피 상 최종후보에 올랐다고 하네요.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이 저에게만 있는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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