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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여행

잭 베트리아노. Jack Vettr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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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베트리아노 (Jack Vettriano : 1951. 11. 17. ~)는 스코틀랜드의 화가입니다.

 

이탈리아계 부모로부터 태어난 그는 스코틀랜드의 탄광에서 광산 기술자로 직장생활을 시작 하였고 여가시간에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14년간의 무명화가 시절을 보낸 뒤 1989년 스코틀랜드 왕립 아카데미 전시회에서 출품한 두점의 작품이 즉각 팔리면서 영국 화단의 신데렐라로 등장했다고 하죠.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그가 이후 런던과 홍콩, 뉴욕등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일반대중의 호감과는 달리 미술평론가들은 잭 베트리아노의 그림에 대해 매우 비우호적이었죠.

근본도 없이 취미삼아 그린 그림이라는 거죠.

 

"그 누구도 그의 작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에 있어서는

마음대로 그림을 그려도 좋을 것이다.

잭 베트리아노의 작품에는 알맹이가 전혀 없다."

- 모 평론가

 

기성 미술계에 전혀 기반이 없었던 베트리아노에 대한 미술평론가들의 이러한 평가로, 런던 국립미술관에는 한 점도 전시되지 못하고 있었죠.

한데, 2004년 소더비 경매에서 잭 베트리아노의 대표작인 <노래하는 버틀러, The Singing Butler>가 744,800파운드(15~16억 정도)라는 그 당시로써는 최고가에 팔리면서 그의 작품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노래하는 버틀러. 잭 베트리아노. 출처 : 구글 이미지

 

이 작품은 1992년 로열아카데미에 출품이 거절당했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대중들의 인기에 힘입어 평단의 비난도 꺾이게 된 것이죠.

작품 전체에 율동과 움직임이 가득한 이 그림은 불어오는 바람에 우산을 들기도 벅차하는 하녀의 펄럭이는 치마와 저 멀리 먹구름의 모습이 세찬 비바람이 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오른쪽 남자의 턱시도는 꿈쩍도 하지 않는 모습이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양쪽의 불균형을 이룬 두 사람 사이에서 낭만적인 자세로 춤을 추는 남녀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죠? 이 작품으로 베트리아노는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잡게 됩니다.

​"나는 아방가르드니 뭐니 하는 것은 모른다.

그림을 그릴 때 나는 스스로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연출 한 게

내 그림이다.

 

그것은 도피처이자 노스텔지어다."

- 잭 베트리아노

 

Beautiful Losers. 출처 : 상동

 

그의 그림을 관통하는 정서 끈적하고 로맨틱한 욕망입니다.

우아하고 지적인 이미지와는 한참 먼 음울하면서도 통속적이라 할 만한 장면들이 꽤 많습니다.

이런 그림들이 퇴폐적이라고 여겼던 비평가들이 좋은 평을 할리가 없었죠.

잭 베트리아노는 독학으로 공부한 화가여서 정규의 코스를 밟아 미술계에 입문하지 않았죠.

그의 그림속에 담긴 통속적인 욕망은 많은 비평가들의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됩니다.

그를 가리켜 '욕망을 화폭에 옮긴 돈만 아는 화가'라느니, '퇴폐의 정서를 캔버스에 그려넣은 화가'라는 혹평을 해 댑니다.

 

예술의 존재이유 인간이 지닌 미적감흥과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있다면, 대중의 기호가 미술비평가들의 평가마저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변화도록 유도한 대표적인 사례가 된 것이라 할 겁니다.

"어떤 미술품의 가치는  누가 매기는 걸까요?"

 

 

미술 비평가들은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작품을 매우 추상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여 대중들을 선도합니다. 일반인들의 입장과는 동떨어진 이런 비평가들의 견해는 미술을 쉽게 접근하기 힘든 그 무엇으로 만들어 버리곤 하죠.

그리하여 현재의 미술시장은 소더비 경매 크리스티 경매 등을 중심으로 특정지역에 집중된 소수의 전문 미술비평가들 미술품 중개상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고 하네요.

 

영국의 화가중 가장 많은 작품 포스터를 판 작가가 된 잭 베트리아노는 예술이란 것이 반드시 고독한 천재에 의해 발전할 의무는 없으며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 또한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예술과 연을 맺은 건 21세때 여자 친구가 선물했던 수채화 도구 세트를 받은 뒤 부터였네요. 그가 그린 그림이 팔리기 시작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어머니의 처녀시절 이름 베트리아노를 예명으로 삼았다고 하네요.

 

그의 작품들을 쭈욱 보다보면, 그 만의 색채와 분위기가 확실히 느껴지지 않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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