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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여행

베르트 모리조. Berthe Moris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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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코 시대의 화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손녀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로 여성으로써 유일하게 인상파 전시에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죠.

 

Berthe Morisot. 출처 : 위키미디아

 

베르트 모리조 (Berthe Pauline Morisot : 1841~1895)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고, 출중한 미모의 소유자였습니다. 인상주의 화가의 아이콘인 마네의 뮤즈로 알려져 있죠.

 

19세기 여성화가가 그릴 수 있는 주제는 어느 정도 제약이 있었기에, 풍경화나 소박한 실내의 정경 혹은 일상 속의 여성과 아이들의 모습을 주로 화폭에 담았습니다.

 

<여름날>.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으로 파스텔 톤의 풍푸한 색채를 사용하여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그녀의 그림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순간들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드가(Edgar Degas)나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가 유쾌하고 활기찬 순간을 그려낸 것과는 대조적이죠.

 

그녀는 그림을 위해 살았으며, 그녀의 인생을 그림에 담았다.

- 시인 폴 발레리 (Paul Valery)

 

모리조는 1864년 파리 살롱전에 풍경화를 출품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2년 뒤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를 만나 그의 작품세계에 빠져 들었고 많은 영감을 주고 받습니다.

 

이미 결혼한 상태였던 마네와 모리조는 비록 사제간이자 서로 모델이 되어 주는 사이였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을 숨기기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1874년 모리조는 마네의 막내 동생 외젠 마네(Eugene Manet)와 결혼하여 딸 줄리를 낳습니다. 하지만, 모리조는 마네에 대한 연정을 계속 품고 있었고 외젠 또한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뛰어난 예술적 재능과 부유한 가정환경 등 요즘시대로 치면 금수저였던 모리조가 막장드라마 같은 사랑을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진정한 사랑의 힘일까요?

치기어린 열정이었을까요?

 

하여간, 모리조와 외젠 사이의 결혼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전해지지 않는 반면 모리조와 마네사이의 사랑이야기는 참 많은 루머를 만들어 냈다고 해요.

<마네의 제비꽃 여인 : 베르트 모리조>란 제목으로 영화화 되기도 했죠.

 

 

여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베르트 모리조는 고전미술의 종점이자 현대미술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인상주의 미술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르트와 에드마 모리조 자매는 부유했던 집안의 재력 덕에 어린 시절에는 많은 지원을 받으며 미술 수업을 받았지만 전문화가를 꿈꾸었던 그녀들의 야심은 사회적 제약을 뛰어넘어야 했죠.

 

집안의 압력에 굴복해 언니 에드마는 서른이 가까운 나이에 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해군 장교와 결혼하였는데, 베르트는 이때 많은 갈등 속에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답니다.

 

<요람>.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이하 그림의 출처는 같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화가의 꿈을 접고 가정을 이룬 언니 에드마를 바라보는 베르트의 복잡한 심경이 에드마의 표정으로 드러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기를 바라보는 에드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파스텔톤으로 은은하게 그려낸 침묵의 순간은 베르트 모리조 그림의 전매특허라고 얘기했었죠?^^

 

 

인상파의 대부격인 마네는 여성편력이 있었고, 그 때문인지 매독을 앓았었죠.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던 때라, 그 시대의 예술가들에겐 그리 드문 질환도 아니었고 그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죠.

 

모리조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비슷한 연배의 화가로 폴 세잔, 모네, 르누아르 등이 왕성히 창작활동을 하고 있었고, 모리조는 이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자신의 예술혼을 키워 나갑니다.

런던, 벨기에 등지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고, 1892년엔 파리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합니다.

그녀는 54세때 장티푸스를 앓다가 눈을 감습니다.

 

 

그녀는 당대의 여성들처럼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 용기있는 여성이었습니다.

 

한 개인으로써 주변 사람들의 눈총에도 기 죽지 않고 사회적인 편견과 맞서 싸우며 자신을 뜻을 펼쳐나가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녀의 그림은 기존의 회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구도를 시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모델의 모습을 무릎 바로 아래부분까지만 그려낸다거나...

달걀 밑 부분을 깨서 달걀을 세웠던 콜롬부스의 달걀처럼 누군가 해 놓은 일은 쉬워보이지만 막상 처음 그런 일을 해내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란 걸 아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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