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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 이세욱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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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열린책들. 예스24>. 2008년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7살 때부터 이미 단편소설을 쓰고 있었던 천상 글쟁이였다. 대학 졸업후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과학잡지에 '개미'에 관한 평론을 발표했던 것을 120여회의 개작을 통해 1991년 <개미>라는 불후의 작품을 내게 된다.

<개미>로 전 세계인에게 프랑스의 천재작가로서의 확고한 이미지를 심어 놓은 베르베르는 이후 수많은 작품들을 발표하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작가 중 한사람으로 자리를 굳혔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든 건, <개미>처럼 나무에 관한 상상도 못했던 여러 지식을 접할 걸 기대했었다. 하지만, 책 내용은 생각과는 완전히 달랐다.

<나무>는 18편의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지만, 각각의 단절된 이야기라기 보다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이라는 기본 틀 안에서의 에피소드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출처 : 게티이미지 코리아>.베르나르 베르베르

내겐 너무 좋은 세상

바캉스

투명피부

냄세

황혼의 반란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조종

가능성의 나무

수의 신비

완전한 은둔자

취급주의 : 부서지기 쉬움

달착지근한 전체주의

허깨비의 세계

사람을 찾습니다

암흑

그 주인에 그 사자

말 없는 친구

어린 신들의 학교

'내겐 너무 좋은 세상'은 기막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고, '바캉스'는 언젠가 봤던 미국SF 드라마가 떠 올랐다.

'투명피부'는 묘사가 적나라해서인지 내 상상력이 잘 발휘되어서인지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뫼비우스의 그림은 오히려 독자의 상상력을 방해할 것 같았다.

사람들으 누가 폭력을 당하는 광경은 견뎌 내지만, 어떤 사람이 자기들과 다르다는 것은 참지 못한다...아무도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 투명피부. <나무> 중에서

 

 

'냄세'의 발상은 이 책에서도 단연 창조적이고 신선했고, '황혼의 반란'은 코 앞으로 닥쳐온 미래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함부로 입밖에 내 뱉기 힘든 말들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과감히 써 나가는 모양이 조금 당황스러웠다...우리 모두는 결국 늙어 병들어 죽을 것 아닌가?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는 그의 책 <인간>의 연습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르베르는 인간세계를 차원을 달리하여 쳐다보는데 능숙한 편이다. 땅 속 깊은 곳의 작은 생명체인 개미의 시각에서 인간세계를 들여다 보기도 하고, 저 높은 곳에서 인간세상을 관조해 보기도 한다. 이렇듯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인간사의 모든 게 희극처럼 보인다는 누군가의 말 처럼, 아마 우리는 의미없는 일에 목숨걸고 투쟁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종'은 내 몸의 두 손이 나의 조종을 벗어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사실 고정관념이 무서운 게 그 틀을 깬다는 게 너무 힘들다는 점이다. 아무리 얇은 막으로 막아 놓았다고 해도, 우리의 사고방식은 그 틀 안에서만 헤엄치려는 경향이 있다는 걸 평상시에는 전혀 깨닫지 못한다. 콜롬부스의 달걀처럼 말이다.

이 책의 제목 <나무>는 단편 '가능성의 나무'에서 따 온 듯 보였다. 미래의 모든 가능성을 나무처럼 계통도로 그려 검토해 본다해도 완벽하게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은유한 작품이었다.

꿈에서 본 그 나무가 오늘 아침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어쩌면 역사에는 순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어쩌면 어떤 사건들은 예측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생각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 가능성의 나무. <나무>중에서

 

'수의 신비'는 수를 이용해 인간사를 비꼬는 듯한 현학적인 작품이다. '완전한 은둔자'는 베르베르가 한참 명상에 빠져 있을 때에 했음직한 상상력의 나래인 듯 하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우리안에 유전자를 통해 전해져 있는 집단지성에 접할수만 있다면 좀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방법으로 수 많은 수도자들이 선택한 방법이 '명상'이라는 거였다.

어떤 문제에 밤낮 없이 골똘히 빠져 있다보면, 어느 순간 해결책이 퍼뜩 떠오르는 순간이 있는데, 바로 이 순간이 집단지성과 내 자아가 만나는 순간이라는 것이었다. 한번도 명상을 통해 그런 경지에 다다른 적이 없는 나로써는 유경험자들의 얘기에 그런가보다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단편 들 하나 하나 작은 반전과 깨알같은 유머들을 담고 있다.

읽다보면, 베르베르만의 색깔이 느껴진다. 한 작가의 여러 작품들을 읽다보면 공통적으로 흐르는 작가의 기운이 있게 마련이다. 그건 다른 어떤 작가라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최근의 베르베르 작품이 그렇듯이, 들어는 보았으되 읽어본 사람은 드물다는 고전의 명저들처럼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경박단소(輕薄短小)의 시대 아닌가?

많이 허황되어 보이면서도 은근히 그럴 듯한 상상력의 전개도 재미있지만, 글 전체적으로 흐르는 가벼운 유머감각과 세련됨... 뭐 그런 느낌?

하루에도 수 백권이 쏟아져 나오는 블루오션 시장에서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 독자들에게 각인시킬 힘을 지닌 작가의 상상력이란...

추워지는 날씨에 밖에 나가기 싫어 지는 겨울밤, 하루에 한 두편씩 읽어 보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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