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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욕망의 힘. 이명옥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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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다산책방. 예스 24>. 2015년 출간

한국 문화예술계의 기획자이고 작가이자 국민대학교 미술학부 교수,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등 많은 직함을 가지고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이명옥씨의 책이다.

대표 저서들 상당수가 그림의 해석과 관련된 것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그림을 바라보는 그녀의 탁월한 감상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와 청소년 권장도서 등 많은 추천을 받은 책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착한 욕망이 있는 반면

또 다른 욕망을 갈망케 하여

착한 욕망을 축소시키거나 파괴하는 나쁜 욕망이 있다."

- 말렉 슈벨

 

내가 이책을 만난 건 시립도서관에서였다.

책 표지에 그려진 조형물은 빨간 하이힐이었지만, 페인트가 질질 흘러내리는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그 밑에 쓰여진 책 제목과 부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 조형물을 책 표지에 선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잘 알다시피, 하이힐의 기원은 섹시한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일본 나막신 (게다)처럼 길거리의 오물을 피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던 것이다. 아직 익숙해지지 못한 여성들에겐 때론 극심한 고통을 주기도 하는 애물단지 '하이힐'은 여성의 각선미를 극대화하여 여성성을 강조하는 소품이자 때론 페티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요물이다.

이미 지구상 모든 남녀에게 정형화된 섹시한 여성의 이미지에서 하이힐을 제거한다면...

"착한 욕망을 깨우는 그림"이라는 부제가 의미하듯, 이 책은 멋진 작품들을 소개하는 그림책이다.

별다른 생각없이 도서관 책장 사이에 서서, 책의 첫 그림을 향해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잭 베트리아노의 2007년 작 <Game on>이 펼쳐진다.

 

                                 <출처 : 욕망의 힘. 다산책방>. Game on. 2007년. 잭 베트리아노.

<욕망의 힘>에 실려 있는 잭 베트리아노의 Game on 이란 작품은 내게는 순간적으로 훅 달아오르게 만드는 야한 포르노사진과도 같았다. 성인이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누구나 한번 쯤은 해 봤음 직한, 에로틱하고 야한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순식간에 감상자를 관음증 환자로 만들어 버린다.

흠칫 놀라 주변을 돌아보니, 바로 옆에서 여성분이 책을 고르느라 허리를 약간 구부리고 있었다. 괜시리 민망해져 더 이상 진도를 빼지 못하고, 대출하여 집에서 차분히 보았을때... 같은 그림이건만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전해져 온다.

                         <출처 : https://yong3569.blog.me/80183963452>. 잭 베트리아노, Game on

 

게다가,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잭 베트리아노의 2007년작 <Game on>은 위의 그림이 뜬다. 둘 다 <Game on>이라 부르는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윗 그림<Game on>을 도서관에서 처음 봤을때의 인상이 너무 강렬하여...마치 포르노 사진을 남 몰래 훔쳐보는 청소년 같았던..ㅎㅎ... 아래 그림에서는 그닥 큰 감흥은 없었다.

사실 난 포르노와 예술작품의 경계를 아직도 알지 못한다. 또한 일부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서서 그 기준을 정하고 판단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실 <Game on>을 보면서 연인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연상하는 사람들에겐 아름다운 명화임에 틀림없고, 불륜이나 원나잇 스탠드 등을 떠올린다면 뭐 그닥... 즉, 예술과 포르노의 구분이란게 감상자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어떤 기준잣대를 들이 밀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게 저항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오만한 여자가 결국 정복당했습니다. 이제껏 이런 쾌락을 맛 본 적이 없습니다...이것은 사랑의 매력은 아니지요. 쓰라린 전투 끝에 획득한 전리품이며 교묘한 작전을 통해 결정된 완벽한 승리입니다."

-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에서 발몽 자작이 메르퇴유 후작 부인에게 보내 편지 중...

 

 

영화로도 몇 차례 리메이크 된 작품이기도 한데, 이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은 잭 베트리아노의 영원한 주제인 듯 보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그의 작품들은 예상할 수 있듯이 찬사와 비난이 극명하게 엇갈리곤 한다.

흔히 비평가들은 성적판타지를 자극하는 3류 그림이라고 혹평하곤 하지만, 대중들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인 '관음증'을 자극하는 그의 그림에 열광한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해 인기 화가가 된 그의 작품들은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현대인의 깊은 외로움과 상처, 절망을 그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처음으로 접한 것도 바로 이책에서 였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밤의 사람들 (Nighthawks). 1942년. 시키고 미술 연구소

미국적인 장면을 그리는 사실주의 화가로서 빠르게 명성을 얻은 에드워드 호퍼 는 여러 작가나 영화감독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도시의 고독한 이미자, 개성적인 조명과 분위기, 주유소, 모텔, 사무실, 텅 빈 거리등을 많이 묘사했다.

 

                                                     <출처 : 카페/CGV아트하우스>.

 

 

 

                                           <출처 : https://cafe.naver.com/loveindian/14872>

슬럼프에 빠져 패배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 거릴때, 우리 안의 선한 욕망을 일깨우고 원초적인 생명력을 불러낼수 있는 그림 한 점의 위력은 때론 무시못할 강렬함이 있다.

인간 본성을 탐구하는 이런 예술가들이 묘사해 내는 인간의 욕망들을 바라보면서, 동 서양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나와 같은 욕망을 지닌 채 때론 좌절하고 때론 환희하며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일원임을 확인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고지식하게 여겨지는 고전명화 감상에 비하면, 현대 미술은 확실히 개방적이고 파격적인 요소가 있다.

이런 신세계에 눈을 뜨게 해 준 책이 바로 <욕망의 힘>이었고, 그 모든 것의 시작은 <Game on>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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