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여행

침묵하는 우주. 우주에 우리만 있는가? 폴 찰스 윌리엄 데이비스 저/문홍규, 이명현 역

반응형

<출처 ; 사이언스 북스. 예스 24>. 2019년 출간

 

우주에 우리만 있는가?

꽤나 오래된 답을 찾지 못한 질문 중 하나이다.

아직까진 지구 근처의 행성에서 생명체를 발견했다는 과학적 보고는 없다.

우리와 같은 생명체가 우주내에 존재 한다는 것도 혹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도 둘 다 증명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인간이 탐사/탐구하기엔 이 우주는 너무도 광활하다.

아무리 우연에 우연을 거듭 반복하여 인간이란 생명체가 지구상에 존재하게 되었다고 해도, 무한에 가까운 이 우주 속에 또 하나의 지구같은 환경이 형성되지 말란 법은 없다는 게 이런 질문을 하게되는 기본적인 추측이다.

하지만, 우주안에 다른 생명체에 관한 과학적인 입증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출시된 영화 <Ad Astra> 에서도 우주내의 또 다른 생명체를 찾아 나서는 프로젝트 내용이 나온다.

 

해왕성 근처까지 간 프로젝트 우주선 안에는 브래드 피트의 아버지가 타고 있다. 27년이 지난 상황이라 아버지가 죽었을 거라 여기고 있던 주인공 브래드 피트는 해왕성근처에서 시작되는 인류를 위협하는 전류급증현상(써지사태)이 주인공의 아버지가 살아서 현재 진행중인 실험 탓인 것으로 잠정 결론 지어진 상태라는 사실을 듣고 화성의 기지로 가서 해왕성 근처의 우주선과 교신하도록 상부의 지시를 받는다. 감정을 배제하고, 아들로써 아버지를 설득하라는 임무였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여러가지 비밀들이 하나씩 꺼플을 벗기 시작하는데...

우주과학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기 때문에, 기존에 봤었던 우주 영화와 비교하면서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는데 시작은 장대하였으되 끝은 뭔가 밍밍해져 버린 느낌의 영화였다...

이런 영화들이 대개 그렇지만, 몇 몇 장면들은 아이디어가 신선하고 높이 살 만한 것들도 있다. 정성을 많이 들인 흔적이 역력하고, 브래드 피트를 포함한 배우들의 연기들도 크게 흠 잡을 만한 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영화를 보게 되면 개인적으로는 매우 안타깝다. 한편의 좋은 영화를 만든 다는게 결코 쉽지 않을 뿐 더러, 종합예술이라는 영화계에서 어지간한 재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다.

충분히 애를 썼고, 나름 신선한 부분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많이 부족해 보이는 작품들...

그저 평범한 인간들이 비범한 인간들을 따라가려는 지난한 몸부림으로 보여져 안타까운 것이다.

 

                                        <출처 : Unsplash.com/@nasa>

하지만, 그 광활하고도 넓은 우주에서 너무도 쉽게 아버지의 우주선을 찾아내어 도킹하고 아버지를 만나는 것 까진 그렇다 해도 이후의 액션 씬들은 이런 저런 SF 우주 영화 베끼기에 돌입한 듯 약간의 코 웃음 마저 치게 만드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브래드 피트의 내면연기가 이 모든 것을 커버하고 남음이 있었다. 달에서마저 에너지 전쟁을 벌인다는 미래의 예측은 인간사회의 변치 않는 특성을 지적하는 사실 굉장히 섬찟한 일이다.

디테일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영화가 전달하려고 했던 메시지가 과연 무엇인지도 사실 애매하였다. 영화는 끝부분으로 갈수록 허접하고 실망스러웠는데도, 그럭저럭 이런 저런 재미는 있는 영화였다. 잘 나가다가 본의 아니게 끝 부분에서 킬링타임용 영화를 만들어 버려서 탈이지만...

이 영화는 몇 가지 기존 우주영화에서 천착하지 않았던 점들을 짚고 있었다.

즉, 극강의 고독과 인간이란 생명체에 대한 탐구...

아들이 70여일 넘게 극한의 고독과 싸우며 아버지를 만나러 왔건만, 아버지는 스스로 우주속에서의 삶을 마감하려 한다...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 있을 이유란 무엇일까?

책 리뷰를 하려다 영화 리뷰가 되어 버렸다...^^

                                 <출처 : UNSPLASH.COM/@ALEX_ANDREWS>

타인의 시각에서 보면, 이해 하기 힘든... 왜 어떤 이는 대부분의 것들을 다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데도,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는 걸까?

왜 인간은 다른 인간들로부터 철저히 격리되면 살아가지 못하는 걸까? (이건 포유류의 특성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이해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인간이란 생명체의 기원을 찾다보면 우주로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우주에서 온 것임이 제일 과학적으로 유력한 가설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이 광활한 우주 안에 우리와 같은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을 까 상상하는 건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과학이 닿을 수 있는 한계는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너무도 적다.

직접적으로 확인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리하여 온갖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우주안에서 타 생명체의 존재를 밝혀내려는 시도가 있어왔고, 간접적이라는 말 자체가 의미하듯이 해석을 할 줄 아는 전문지식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필자는 우리가 외계 문명을 바라보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생명과 마음, 문명과 기술의 본질은 물론,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우리의 고정 관념을 버려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 폴 데이비스, <침묵하는 우주> 1장에서

사실 흥미로운 앞 부분의 이야기까지는 따라가는데 별 무리가 없지만, 뒷 부분으로 갈수록 전문적인 영역으로 파고들면서 책을 읽기가 쉽지는 않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서도 솔직히 책을 다 읽었다 할 수도 없는게, 기존에 내가 알던 지식에 한 걸음씩만 더 나아갔을 뿐 그 이상의 것들에 대하여는 아무리 자세한 설명을 해 준다해도 받아들이질 못하겠더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호기심도 일어나고 재미있는 지적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받은 책이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