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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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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학동네. 예스 24

 

늘 다니는 시립도서관에서 보유하고 있던 김영하 작가의 작품은 모두 훓어서 읽어본 셈이네요. 이 책을 마지막으로 해서 말이죠.

아무리 기다려도 올 것 같지 않던 차례가 드디어 돌아왔거든요.

 

어떤 이는 대출을 받아가서는 함흥차사가 되어 반납을 안하고 있을 때도 있었고, 게다가 늘상 누군가가 대출 예약을 걸어 놓아서 우선 순위에서 밀리곤 했었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이 책에 목숨걸고 매달릴 일도 영화 내용으로 봐서는 사서 보고 싶은 것도 아니어서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로 했었거든요...

영화의 후폭풍인지... 도데체가 왜 이 책만 그리도 인기가 있었던 건지 모르겠네요.

 

손에 쥐어든 책<살인자의 기억법>은 굉장히 얇은 책이었어요.

설경구와 김남길을 투톱으로 하여 제작되었던 동명의 영화가 개봉 된 후, 참 많은 리뷰와 결말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나왔었죠.

tv.naver.com/v/2069055

 

<살인자의 기억법> 30초 예고편

네이버 영화 예고편 저장소

tv.naver.com

 

감독판은 극장개봉판과는 전혀 다른 버전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 같더군요.

https://www.youtube.com/watch?v=vLUNzrXhboE살인자의 기억법. 감독판 리뷰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비교적 길지 않은 소설 속에서도 김영하 작가의 촌철살인 같은 문장들이 빛을 발합니다.

책 속에서 봤던 문장 중, 가장 인상적이고 무서웠던 거예요... 주인공의 집 마당에서 개가 땅에서 파 헤쳐 낸 여자의 팔을 물고 돌아다니는 장면과 함께 말이죠...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이하 출처는 동일합니다.

 

완벽주의 연쇄살인마 김병주가 나이 70이 되어 알츠하이머 병을 앓게 되면서 소설은 시작됩니다.

 

25년전 교통사고로 인해 뇌수술을 2차례 하면서, 뭔가 변화가 생긴 뒤로 김병주는 살인행위를 멈춘 상태였지요. 살인을 할 때의 그 팽팽한 긴장감과 완벽 범죄를 위한 치밀함...

또한 그런 것을 느끼기 위해 계속 되는 연쇄살인. 이런 감정들이 수술을 하면서 사라져 버린 탓인 듯 해요.

 

오랜 시간을 기다려 읽은 소설은 한번 봤던 영화 속 장면들이 많이 오버랩 되면서 김영하 작가만의 특색이 느껴지지 않았고, 실제로도 최근 읽었던 작가의 필체와는 결이 많이 다른 듯 느껴졌어요.

 

책 페이지 안에도 여백이 어찌나 많은지, 148 페이지 분량이지만 3분의 1 정도는 줄일 수 있겠더라구요.

영화의 내용이나 결말은 원작과 비교할 때 심하게 각색되어 있더군요.

영화도 그리 밝은 내용은 아니었지만, 원작의 음울함은 꽤나 깊고 어둡군요.

 

 

우리는 스스로를 무엇이라 규정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아마도, 뇌리 속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는 삶의 기억들... 이것들이 곧 '나'라는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징표가 아닐런지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늙어감에 대해 몹시도 두려움을 갖고 삽니다.

늘어만 가는 주름살을 펴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구요, 애써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젊게 살려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장착한 노년의 모습은 때로 안쓰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운 노년의 모습은 스스로 제 한 몸 다스리지 못하거나 자연스런 뇌의 노화진행으로 인한 기억의 삭제이겠지요. 두가지가 겹쳐 있다면 최악의 상황일거구요.

 

 

몇 년 전, 은사님의 병실을 방문했다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육신에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반 혼수상태의 낯선 극노인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죽음을 앞 둔 극 노인의 모습으로는 별로 탐탁치 않은 거지만, 몇 십년 뒤의 내 모습이 아닐거라는 장담을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일이었죠.

 

고려장이란 풍습이 있었죠. 극노인들을 산에다가 내다버리는 것이죠.

아사(餓死)... 굶어 죽음...

고려장으로 아들의 지게에 실려 산 속으로 들어가면서도, 아들이 힘들게 고생하는 걸 안쓰러워하는 늙은 노모의 이야기는 참 가슴 먹먹하게 하죠.

나라마다 시대별로 비슷한 풍습이 있었을 거예요.

 

끔찍한 연쇄살인마의 허망한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개인적으로는 엉뚱한 지점에서 두려움을 느꼈답니다.

 

 

25년이나 멈춰 왔던 살인 충동이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부활하여 자신을 돌보러 온 요양사를 살해하기까지 되었는지... 소설의 기본 전제가 끔찍하기 그지 없어요.

영화에서는 애지중지 키워 온 딸을 또 다른 연쇄살인마로부터 지켜내려는 눈물겨운 사투로 보여주지만, 원작에서는 별 다른 이유 없는 그저 연쇄살인마의 잔혹한 살인으로 드러나기 때문이죠.

심지어 점점 심해지는 알츠하이머로 인해 요양사를 어떻게 살해했는지 왜 죽였는지 전혀 본인이 병식조차 없는데다 그 모든게 모두 망상에서 비롯된 일인 것으로 반전처리해 버리죠... 대단히 찝찝한 반전입니다.

 

각색된 영화내용과 이를 비워내지 못한 채 읽은 원작의 줄거리는 그 간극을 채워내지 못하고 더러운 기분만 남깁니다. 기다리고 기다려서 읽은 책 치고는 너무 억울한 보상이네요 ^^

 

혹자는 원작의 구성이나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막힌 전개 등을 호평하며 김영하 작가의 작품을 엄지척하더군요. 어차피 각자의 렌즈를 통해 바라본 소설의 내용이 똑 같을수는 없겠죠.

 

다시 한 번 머리 속을 비워내고, 천천히 읽어봐야겠습니다.

별로 두껍지 않은 책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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