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여행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김영하

반응형

 

출처 ; 랜덤하우스코리아. 예스 24

 

국립 예술대학교 교수, 자신의 이름을 건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한국 문학의 대표적 아이콘으로 새벽부터 새벽까지 잠시도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나날들.

누가 보더라도 분명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김영하 작가...

 

그 자리에서 몸부림치며 애써 살아내는 동안 끊임없이 쌓여왔던 독소들에 심신이 지쳐갈 무렵, 그에게는 예고된 공허가 찾아온 듯 합니다.

소설가로써의 정체성에 대한 흔들림, 이로 인한 피로감...

 

어느날, 아내에게 이런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자 아내는 선뜻 그에게 숨쉴 공간을 갖도록 제안합니다.

참으로 현명한 아내이지요.

부지런히 앞만 보고 연구에 매진하던 대학교수들에겐 수 년에 한번씩 안식년의 기회가 찾아듭니다.

대부분 교환교수자격으로 선진국(대개는 북미나 유럽 쪽)으로 안식년을 지내기 위해 떠나는데, 좀 더 넓고 다양한 시각을 갖출 새로운 기회가 되지요.

소설을 잘 쓴다고 하여, 소설을 잘 쓸수 있는 방법을 잘 가르친다는 법은 없습니다. 겸손의 변명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학교수로써 제자들에게 소설 쓰는 것에 대해 가르치는 일에 김영하 작가는 약간의 부담을 느낀듯 합니다. 자기보다 더 잘 가르치는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한것 같구요...

역시나 평범한 사람은 아닌거 같아요.

 

@Lucabravo/unsplash

 

우연이든 필연이든 국립 예술대학교 교수직과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 자리를 내려 놓은 후, 김영하 작가 부부는 캐나다로 장기체류하기 위해 떠납니다.

그 과정에서 시칠리아를 경유하지요.

 

시칠리아는 몇년 전에 모 방송국 프로그램을 찍으면서 한 차례 들렀던 경험이 있었던 김영하 작가는 이번에는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아내와 함께 방문합니다.

 

익숙하고 편안해져서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던 일상과 주변 사물들...

해외 장기체류를 위해 이사짐을 정리하면서 깨닫게 되는 불필요한 삶의 군더더기들.

어느샌가 노예가 되어 질질 끌려다녔던 온갖 것들은 꼭 필요했던 것들만은 아니었음을 알게됩니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이 힘들어진 요즘은 아마도 여행에 대한 갈증에 목말라하는 분들이 꽤 많을 겁니다.

오죽하면 항공사에서 적자도 벌충할 겸 내놓은 아이디어 상품이 비행기를 이륙해서 이륙한 공항으로 다시 돌아오는 상품으로 해외여행 기분만이라도 느껴보게 하자는 것까지 출시되었을까요...

 

사실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여행들을 다녔지요.

다시 그런 시절이 돌아오려는지는 현재로써는 장담하기 힘들지만,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그만큼 여행이 주는 기쁨이 적지 않다는 것이지요.

 

우린 왜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걸까요?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실 여행이라는 건 보통 피곤하고 힘든 일이 아닌데 말이죠.

 

@jeshoots/unsplash

 

고해상도의 대형 스크린을 통해 우린 세계 곳곳을 편안히 집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드론을 이용하여 맛깔나게 찍어낸 화면은 막상 현지에서 직접 본 모습보다 훨씬 드라마틱할 수도 있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기 위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직접 몸으로 부대끼며 경험하는 것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게 마련이니까요...

 

여행을 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늘상 생기곤 합니다.

우리네 인생살이가 그렇듯이 말이죠.

시칠리아로 가기 전, 김영하 씨 부부도 이탈리아에서 여러가지 고생을 하게 됩니다.

때 마침 철도 파업이 겹치면서 정상운행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죠.

 

그리 넓지 않은 해협을 건너기 위해, 기차가 페리호에 고스란히 들어가 반대편 기차선로로 이어진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죠.

참 신통한 아이디어더군요.

두 지점을 잇는 다리가 완성되면, 이런 진풍경도 사라진다고 하더군요.

 

유럽의 기차들은 정시 도착, 정시 출발하는 것으로 유명하죠.

우리나라의 기차들도 예전에는 연착이 잦은 편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비교적 시간을 잘 맞춰 운행하는 편이지요. 유럽 몇몇 나라의 기차는 심지어 안내방송도 별로 없습니다. 시간 되면 그냥 스윽 출발해 버립니다. 시간은 칼 같이 지키구요.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시칠리아에서의 삶...

여유롭고 충만한 시간들...

 

우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달의 세월을 잘 견디질 못합니다.

지금도 '잘 살아보세' 외치며 하루 종일 피곤하게 일하던 전후세대의 마인드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고, 조금이라도 남보다 뒤쳐지는 것을 죽도록 싫어하는 비교 DNA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죠.

삶의 의외성을 즐기고, 늘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기엔 우리사회의 포용력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겠죠.

좁은 국토에 비해 과밀한 인구로 인해 심한 경쟁이 불가피한 때문일까요?

 

@philippcamera/unsplash

 

어느 분야이건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일반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긴 합니다.

삶의 어느 한 순간을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부유하며 시간을 즐기는 모습이 꽤나 부럽습니다.

 

책 여기 저기 실려 있는 현장 사진은 제 눈에는 뭐 그리 멋있거나 예쁘진 않았습니다.

매우 건조해보이고, 때로는 삭막한 풍경일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현장에서 김영하 작가가 느꼈던 점들은 사진을 통해 제가 본 모습과는 많이 달랐던 거 같네요.

어쩌면 사진이 갖는 한계일지도 모르지요.

 

많은 제약으로 해외여행이 어려워진 지금, 시칠리아로 간접여행을 떠나고 싶으신 분들은 구글지도 펼쳐 놓으시고 이 책을 일독하시면 되겠습니다.

직접 경험한 것 만 못하겠지만, 그래도 김영하 작가의 필력으로 나름 색다른 간접경험을 하시게 될 테니까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