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여행

공터에서. 김훈. 해냄

반응형

 

출처 : 도서출판 해냄. 예스 24

 

 

<공터에서>를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언젠가 제주도에서 탔었던 잠수함 속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에머럴드 빛 심연의 바다 속을 바라보던 막연한 경외감... 신비로움보다는 오히려 공포에 가까웠던 느낌...

 

지금은 그것이 확실한 지도 애매한 전해들었던 것 같은 조상들의 이야기들.

굳은 심지가 부족한 나로써는 그런 신산의 시대를 무기력하게 버텨낸 민초들의 생명력에 또 다른 경외감을 느끼곤 했었다.

 

아마도, 일제 치하가 길어지던 어느 시점에선가부터는 조선의 일반 백성들은 식민지화된 나라의 미래는 결국 일본의 속국으로의 삶으로 변함없이 이어지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조선의 독립을 꿈꾸며 쉼 없이 항일의식을 고취하던 강인하고 끈질긴 사람들도 있었겠으나, 부박한 현실이지만 거기에 맞춰 살며 하루 하루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stylec.co.kr/shop/item.php?it_id=1598855383&cid=2444230656&sbn=true

 

[추석선물] 멘토 활성숯 디지털 찜질기 MT-3200

 

stylec.co.kr

 

"나의 등장 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 김 훈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 속, 거기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어찌된 일인지, 집 안에서 할아버지의 역사에 대한 언급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어느 전쟁에선가 전사했다는 것 정도밖에 내 기억에 남아있는 건 없다...

 

@syedmohdali121/unsplash

 

할머니는 홀홀 단신으로 아버지를 키워내셨다.

아스라한 기억이지만, 만주로 가는 기차 편을 이용해 보따리 장사를 하셨다고 했다.

말이 장사이지, 일종의 밀매였을 것이다.

검표원을 피해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린 적도 있다고 들었다.

난 그 얘기를 훗날 수 없이 많이 보았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상상했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렇게 억세게 살아내던 끝에 할머니는 고향마을 어귀에 크지 않지만 논밭뙈기 어느 정도를 샀었고, 가을이면 쌀가마니를 회수하러 가시곤 했던 기억도 남아있다.

지금같으면 이혼, 재혼 이런 게 별 문제도 아닌 일이지만, 그 당시로써는 대단히 심각한 사안이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외로움에 지치셨는지 누군가와 정분이 나서 성이 다른 아들을 하나 더 낳게 되었다.

 

이때부터 시골마을에서는 손가락질이 시작되었고, 그 화살은 국민학생이었던 아버지에게도 쏟아졌다고 한다.

국민학교까지 언덕고개를 2개는 넘어야 하는 긴 거리를 오가는 등하교 시간동안, 또래 애들은 뭉쳐서 아버지에게 손가락질하며 놀려대곤 했다고 한다. 마음에 응어리가 맺혔다고 하셨다. 가난하고 못 살던 시절에도, 누군가를 왕따시키며 괴롭히는 잔인한 집단폭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섬찟하게 느껴졌었다.

 

@jey_photography/unsplash

 

지나칠 정도로 과묵하셨던 아버지는 자신의 과거사에 대해 이런 저런 말씀을 거의 내게 해주지 않으셨다.

그저, 취중에 습관적으로 흘리셨던 여러 얘기들은 따지고 보면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한 것들이었다.

어머니와는 먼 발치에서 한번 보고는 결혼까지 이어졌다고 기억된다.

옛날에는 중매쟁이들에 의해 적당한 혼처들에 혼담이 오가다가 성사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혼처로 중매가 들어오자, 아버지가 직접 가서 확인하셨던가 보다.

 

그렇게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사 놓은 땅을 작은 할아버지가 뺏기 위해 벌인 일이라고 했다. 정확한 전후 사정은 듣지 못하였고, 그 일로 작은 할아버지를 원수처럼 여긴다는 건 알고 있었다.

모두 너무 오래된... 그리고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파헤쳐 알아내고 싶지도 않은 일들이었기에 아버님의 죽음과 함께 과거사로 모두 묻혀진 일이 되었다.

stylec.co.kr/shop/item.php?it_id=1598857058&cid=2444230656&sbn=true

 

[추석선물] 코지마 디지털 자동전자 혈압계(손목형) CBP-160

 

stylec.co.kr

혹독했던 훈련병 시절...

결혼하고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가 입대했기 때문에, 면회를 가서 너무 말라버린 아버지를 어머니는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참으로 처참했을 전후 시절...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배고픔과 고난의 시간들을 온몸으로 견뎌내셨던 부모님의 삶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단절적으로 그려졌다.

 

부모님들은 그 힘들었던 시절에 대해 그리 많은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었다.

그저 우리때에 비하면 너희들은 행복한 줄 알아라... 그 정도였다.

평상시에는 거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도, 약주가 과해지면 항상 레퍼토리처럼 엇비슷한 어린 시절의 상처 이야기만 반복하셨더랬다.

 

그 비어있는 시간의 간극을 이 소설이 채워 넣는 듯 하여, 읽는 내내 괴롭고도 처참했다.

 

@hardebeckmedia/unsplash

 

흥남부두 철수 때의 가슴아픈 모습들.

부산 앞 바다 백사장에서 바닷가를 향해 엉덩이를 까고 큰 일을 해결하는 피난민들의 구질구질함...

시대의 냉정함에 상처받고 무너진 소심남의 방랑벽이며, 한 목숨 부지하기 위해 버텨내야 했던 비참한 순간들.

 

소설은 대부분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렌즈의 촛점을 맞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려운 시절 현실에 발 붙이지 못했던 무능(?)했던 선대인들의 찌질한 모습 속에서 현실의 내 모습이 오버랩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난 몇 년동안 늙기가 힘들어서 허덕지덕하였다.

의료비 지출이 늘어났다. 지금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느낌이다.

여생의 시간을 아껴 써야 할 것이다.

 

- 작가 후기 중에서

 

"여생의 시간을 아껴 써야겠다"는 작가의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손꼽히는 작가라고는 하나, 너무도 잘 쓰여진 서사에 정신 없이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역작을 써 내기 위해 치뤘을 그의 노고와 그에 비례하는 건강의 악화가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인터넷 세상이 되어,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의 흔적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상의 공간 속에 남겨 놓게 된다.

 

수 십년을 거슬러 올라가, 비워져 있던 내 선조의 기억을 채우는 시간들이었다.

마치 뿌리가 약해 비실거리던 연약한 식물에 수 없이 많은 잔 수염들이 돋아나 뿌리의 부피감이 2~3배는 넓어진 느낌이 든다.

 

@rebeccaharris/unsplash

 

글로써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내는 작가의 필력이 새삼 감탄스럽고 부럽다.

구차스럽고 때론 고통스럽지만, 연출력 좋은 감독의 손에 의해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으로 창조되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책 읽는 내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아니더래도 살아가기 퍽퍽한 이 시대에 굳이 과거의 고통을 들추어 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스친다.

 

정말 요즘 세대들만 해도, 해방전후와 6.25 전쟁 시절의 얘기를 마치 먼나라 이야기처럼 알거나 혹은 거의 관심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풍요로움으로 보릿고개가 무엇인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런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