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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여행

조반니 벨리니. Giovanni Bel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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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 벨리니 (Giovanni Bellini : 1430? ~ 1516)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화가.

 

색채감이 풍부하고 뛰어난 예술가로 피렌체나 로마에 견줄만한 르네상스 미술의 중심으로15세기 베네치아 파를 확립했다.

초기에는 아버지와 매부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1487년 이후에는 정서적인 메시나의 화풍에 더 끌렸다.

 

<겟세마니에서의 고통>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이하 그림의 출처는 같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인 <게세마네에서의 고통>, <피에타>, <그리스도의 변모>는 매부였던 화가 만테냐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고, <쌍수의 성모자> 란 작품에서부터 딱딱한 형태감을 부드럽게 하는 색채감각을 선보였다.

 

<피에타>

 

1506년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가 베네치아 최고의 화가라며 극찬했었던 조반니 벨리니는 정확한 데생을 회화의 기본으로 여긴 피렌체나 로마의 화가들과는 달리 베네치아 화풍이라 할 수 있는 풍부한 색채와 빛의 묘사가 특징으로 한 작품들을 그렸다.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처형>

 

<십자가 처형>에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슬픔에 잠겨 절망하는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그려 넣었고 오른쪽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요한의 비통해 하는 모습을 담았다. 이 처럼 초기의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서 있는 수직적인 단순한 구도를 묘사한 뒤, 배경으로 수평의 언덕이나 하늘 등의 넓은 풍경을 그려넣어 장면의 극적인 묘사를 성취해내곤 했다. 요즘처럼 다양한 색깔을 구현해 내기 힘들었던 시기였기에, 무엇보다도 부드럽고 화려한 색감이 당시로서는 꽤나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꽤나 선정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되어 있는 이 그림은 1507년경에 보드에 오일 템페라화로 제작된 것이다.

 

<순교자 베드로의 암살>

 

베드로는 그림 좌측 하단에서 칼에 찔려 살해되고 있고, 오른쪽에서는 또 다른 수사 한사람이 곤경에 빠져있다.

그간의 조반니 벨리니의 작품에서 보았던 주제 표현방식으로 보자면, 살해당하는 베드로의 모습은 무척이나 작게 묘사되어 있다.

반면 배경처럼 보이는 숲과 그 안에서 나무를 하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꽤나 크게 비중을 차지한다.

 

아마도 조반니 벨리니가 이 그림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처참한 살해현장을 앞에 두고서도 아무일 없는 듯이 자기일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광장에서 한 여성이 칼에 수십번 찔리는 범죄가 발생했지만 막상 그 여성이 사망할 때까지도 신고접수조차 없었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고층 빌딩들이 무수히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그 곳에서 이른 저녁 벌어진 끔찍한 범죄를 무수히 많은 눈들이 목격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과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nbb_photos/unsplash

 

놀랍게도, 보는 사람이 많을 수록 어떤 일에 대한 책임 혹은 의무감은 N분의 일로 희석되고 무뎌진다고 한다.

이런 비 상식적인 일들은 이후 사회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반복적으로 확인이 되었다.

 

"내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가 신고를 했겠지?"

"괜히 복잡한 일에 얽혀서 고생만 할꺼야..."

"저 사람이 나를 알아내어 보복할지도 모르잖아."

 

범죄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마다 별의 별 생각들이 점멸했겠지만, 결론은 그 많은 사람 누구하나 전화기를 들어 선뜻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건 돌고 도는 법...똑같은 일을 내가 당하고 있을 때,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는 이 없을거라는 생각을 한다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이다.

 

<순교자 베드로의 암살>에서도 숲 속에서 나무를 하는 이들은 바로 옆에서 곤경에 빠져 있는 이들을 모른척하며 외면한다.

당시로서는 공권력이라 할 만한 무장군인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기에, 괜히 나서서 칼침 맞을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의 인권 정도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일이다.

 

요즘 시대라고 인간의 본성이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군사정권시대에 너무도 많이 보았던 모습이기도 하다.

 

@kaip/unsplash

 

물리적인 위협 대신, 금전적인 협박과 각종 고소고발로 변형되긴 했지만 우리 사는 세상에는 여전히 이런 모습들이 진행형이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이 난장판에 끼어드는 순간 온갖 구설수와 심하면 송사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세상의 힘있는 자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마다 않고 뻔뻔하게 버티고 빠져나가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아수라장에 휘말리는 순간 그들의 인생마저 빠져나가기 힘든 모래지옥 수렁에 발을 디디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용감한 시민들이 나서서 위험을 무릎쓰고 사투를 벌이는 일도 적지 않다. 이 세상이 반드시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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