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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여행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Artemisia Gentiles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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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화와 종교화에서 선구적이었던 이탈리아의 바로크 여성화가입니다.

그 당시는 여성이 화가로써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시기였답니다.

더군다나, 여성화가에게 역사화나 종교화 주제는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까지 지배적인 시대였기에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이 여인의 영혼에서 카이사르의 정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듣게 될 정도였지요.

요즘말로 멘탈갑이었다는 얘기죠.

여기에는, 그럴만한 개인적인 어두운 과거사가 있지요.

 

Artemisia Gentileschi

 

1593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태어난 그녀는 7살때 밑으로 세 동생을 둔 채 엄마가 세상을 등져 불행히도 홀아버지 밑에서 자랍니다.

화가였던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는 당대 대가였던 카라바조의 화풍을 따르고 있었고, 아르테미시아는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도우면서 그림을 배우게 됩니다.

 

그녀의 비범한 화풍은 17살 때 겪은 성폭행으로부터 기인합니다.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라는 화가는 아버지의 동료화가였는데, 여성 편력이 심한 사람이었죠.

딸의 그림 지도를 부탁했던 아버지는 그런 점을 잘 몰랐던가 봅니다.

 

일설에 의하면, 타시는 부인도 강간으로 임신이 되자 어쩔수 없이 결혼을 했고 이후 처제마저 강간을 했다고 하네요.

처제가 임신을 하자, 이번엔 사람을 시켜 아내를 죽이려고까지 하구요.

 

이런 패륜아가 어떻게 처벌을 받지 않고 버젓이 화가로써 활동하고 지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지금같은 세상에서는 드문 일이겠지만 그 당시 사회분위기에서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던가 봅니다.

 

<자화상. 아르테미시아>. 런던 로열아트 콜렉션 소장. 출처 : 네이버 이미지

 

타시로부터 미술공부를 배우던 시기에 아르테미시아에게는 연인이 있었다고 해요.

질투심에 불탄 타시는 둘 사이를 방해하다가 결국 아르테미시아를 범하고 맙니다.

이 사건으로 아르테미시아는 길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재판과정을 거쳐야 했고, 크나 큰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강간피해를 입은 여성이 재판을 받으면서 처녀상태에서 성폭력을 당했는지에 대한 산부인과 검증을 거쳐야 했고 우습게도 자신의 주장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모진 고문을 견뎌내야 했다고 해요. 마녀재판도 억지스럽긴 매한가지지만...

 

두 손을 묶고 손가락 사이사이를 줄로 잡아매 옭아매어 엄청난 고통을 주고, 이 고통을 이겨낼 정도이면 피해자의 주장을 인정해주는 괴이한 제도때문이었지요.

그 때문에 고문이 끝난 뒤 아르테미시아의 손가락은 피멍이 들고 퉁퉁 부어버렸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자신을 범한 타시에 대한 증오감은 이루 말할수 없이 커졌겠죠?

그녀의 이런 분노는 <수산나와 두 늙은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란 작품에 고스란히 표현됩니다.

<수산나와 두 늙은이>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를 주제로 그린 거지요.

 

먼저, 같은 주제를 다룬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을 보시죠. 수산나의 모습이 때로는 남자들을 유혹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기도 합니다. 스토리를 왜곡한 거의 포르노죠.

<수산나와 두 노인. 귀도 레니(Guido Reni) 등>.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여성의 누드를 함부로 그릴 수 없었던 당대 화풍 속에서 비교적 조심스럽게라도 성경의 교훈을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여성의 누드를 화폭에 펼쳐 낼수 있었으니, 당시 화가들로써는 상당히 매력을 느낄만한 주제였죠.

 

욕정에 휘둘린 두 노인들이 작당하여 목욕을 하고 있던 수산나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고 응하지 않으면 자신들을 유혹했다고 거짓으로 꾸며대겠다고 협박하지만 차라리 자결하겠다며 수산나가 완강히 거부합니다.

두 노인들의 모함으로 결국 법정으로 가게 되는데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수산나의 결백을 밝혀준다는 내용이지요.

 

아르테미시아는 <수산나와 두 늙은이>에서 한 사람의 노인을 검은 머리의 젊은이로 그려냅니다.

검은 머리는 당연 타시였죠.

<수산나와 두 노인. 아르테미시아>. 출처 : 상동

 

다른 화가의 그림에서보면 애매한 스탠스를 취하던 수산나의 모습은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에서는 확실하게 거부의 몸짓으로 보여줍니다. 마치 자신의 끔찍했던 과거의 상처를 증거로 남기기나 한 것처럼 말이죠.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란 그림 또한 마찬가지로 여러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던 역사상의 실제 에피소드이지만,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은 확연히 다른 화가들과 다릅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카라바조 등> 출처 : 상동

 

여성성을 너무 부각 시킨 나머지, 말도 안 되는 그림들이 양산된 거죠. 대가라고 칭송받는 카라바조 마저도 너무 주제에 심취한 나머지 개연성이 떨어지는 그림을 그렸었죠...

 

하지만,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을 보면 그녀의 타시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절실하게 드러납니다.

목을 베는 유디트의 모습은 아르테미시아 본인이고, 홀로페르네스 또한 타시의 모습이니까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아르테미시아>. 출처 : 상동

 

하녀에 의해 강하게 찍혀 눌린 타시의 목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칼로 베고 있는 아르테미시아의 결연한 모습...

분수처럼 치솟는 피를 통해 아마도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 작품을 통해 아르테미시아의 상처도 아주 조금은 치유되었을거라 생각됩니다.

 

아쉽게도, 아르테미시아의 작품 중 전해져 오는 것은 자화상을 포함해 이 두 작품 이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shyshkina/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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