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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단상] 책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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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예스 24

 

 

요즘 읽고 있는 책들입니다.

시립도서관에 책 빌리러 가는 일은 벌써 10여년째 마라톤 처럼 쉼 없이 이어지는 습관입니다. 요리 조리 따져보고 고른 대 여섯권의 책들을 품안에 안고 도서관을 나서다보면, 나름 잘 들인 습관이다 싶어 내심 흐뭇하기도 합니다.

습관이란 게 안 하면 뭔가 허전하고 심심해져 결국은 하게 되는 것인데, 정독을 하던 속독을 하던 읽다 중도포기를 하던 어찌됐든 선택해서 가져온 책들은 제 손을 거쳐가게 마련이니 멍하니 TV 쳐다보며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는 나은 일이라 여기기 때문이죠.

 

어떤 이는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앞뒤 안가리고 열정적으로 뛰어들어 미친 듯이 파고든다고 하는데... 전 그런 것과는 거리가 꽤 먼 편입니다.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 내지는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소리소문 없이 빠져들어서는 맺고 끊는 맛도 없이 습관처럼 반복하는 그런 기질이니까요.

 

학창시절에도 너무 몰두해서 공부하고 나면, 그 다음날은 몸이 아프거나 집중이 전혀 되지를 않아서 나중엔 몰두도 어느 정도 깊이까지만 하던 기억이 나네요. 너무 열심히 하면 오히려 그 다음날 통째로 날리게 되니깐 결론적으로는 손해라는 계산에서요...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하란 말을 들으면 항상 마음이 불편하고 거북했던 이유이기도 하죠. '난 최선을 다하면 오히려 손해를 봐요'라고 하소연해봤자 공부하기 싫어 핑계 댄다고 뭐라 할 것 같았죠. 그런데, 알고보니 제 형님(10년 넘게 나이 차이가 나서...)도 같은 기질을 가지고 계셨더라구요. 하루 미친 듯 공부하고 나면, 그 다음날은 빈둥 빈둥 하셨다고 하더군요.

 

어찌되었든,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독특한 특성과 기질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그러니 나와 다름을 인정해주어야만 이 공동체가 무난하게 굴러가겠죠?

 

이 두 권의 책들을 읽다보니 문득 서로 다름에 대한 잡념들이 스쳐지나가더군요.

<영양의 비밀>은 프레드 프로벤자 교수가 평생 연구한 영양과 건강에 관한 자료들을 집대성한 책으로 분량도 방대하지만 거의 논문에 가까운 내용으로 참고문헌의 숫자만도 어마어마합니다.

반면,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는 흔들리고 아픈 중년을 위한 위로와 처방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쓴 연재칼럼들을 엮어 책으로 낸 것으로 한 두시간이면 완독할 수 있는 책입니다.

 

@craftedbygc/unsplash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는 어찌보면 제 모습과도 거의 비슷해서 참 공감하며 재밌게 읽었다면, <영양의 비밀>은 새로운 지식들을 마구 마구 접할 수 있는 지식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재미에 흠뻑 빠질 수는 있지만 읽어내기가 그리 녹녹치는 않은 책이었습니다.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의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소녀를 꿈꾸었던 중년의 여성분이신데, 영화와 클래식 음악, 미술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더군요(저와 유사한 점). 영화는 주로 예술영화쪽을 선호하시구요(저와 다른 점).

대부분의 단편들이 글의 주제와 연관된 영화를 소개하는 식으로 전개가 많이 되는데(제 포스팅도 그런 것들이 꽤 있죠...), 여성의 섬세한 감성이 녹아 있는 글들이 많아 가끔은 가슴이 찡해질 때가 있었네요.

한국적인 정서가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제 주변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중년 여성의 모습이 여과되지 않은 채 글로 옮겨져 생활밀착형 수필들로 탄생해 있더군요.

그런만큼 어떤 면에서는 그리 무겁지 않게 책을 읽을 수 있고, 정서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기도 해요.

 

그렇게 따지자면, <영양의 비밀>은 상당히 무미건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성들은 감성적인 면이 발달해 있고, 남성들은 합리적인 면이 더 발달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두권의 책만 두고 보자면 딱 들어맞은 얘기이지요.

 

상당수의 외국 학술서적들이 그렇듯이, 자그마한 사실 하나를 얘기하려고 해도 거기에 달라붛는 관련자료들이 꼭 있습니다. [그러려니] 나 [아님말고] 식의 잡담과는 거리를 한 참 둔 거죠.

무엇 하나 얘기를 하려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부터 소상하게 설명이 들어가고 그런 생각을 입증할 방법을 고안해서 실험하고 결과를 분석해서 결론을 내는 과정들에 대해 꼼꼼히 기술합니다.

이때 참고했던 기존 논문이나 책들의 근거를 꼭 같이 기록해 놓지요.

이런 과정을 고스란히 읽다보면, 사실 이 분야에 대해 지식이 별로 없는 일반 독자들은 반박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저자의 주장에 고스란히 동의를 하게 됩니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추론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때문에, 독자의 공감 내지는 동감이 필요없게 되지요.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 같은 책을 읽을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어요.

 

@kaitlynbaker/unsplash

 

요즘 시립도서관에 가면 출판시장이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경소단박(輕小短薄)의 시대를 반영하듯, 무겁고 복잡한 주제의 책들보다도 우리 주변의 일상을 다룬 가벼운 주제의 책들이 훨씬 더 많이 신간코너에 올려져 있다는 거지요.

책 크기도 문고판보다 살짝 큰 정도여서, 들고 다니기에도 부담이 없습니다.

 

<명랑한 중년, 웃긴데 왜 찡하지?>의 작가도 제 마음과 같은 점들을 정말 많이 책에 써 놓았더군요. 베스트셀러 작가들과 같은 역량을 못 갖춘 초보 글쟁이들의 심리상태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구요.

고기를 좋아한다고 매일 스테이크 썰면서 와인을 홀짝거릴수만은 없겠지요?

때로는 급 라면이 땡기기도 하고, 파전이 생각나기도 하고 그런거지요.

 

글을 쓰는 사람들이야 늘 마음 한 구석에 세대를 통해 전해지는 고전과 같은 명저를 꿈꾸겠지만, 대통령을 꿈꾸는 모든 정치인들처럼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꿈은 아니겠죠.

 

끊임없이 휘발되어 날아가버리는 생각들을 채집하여 활자화시키는 글을 쓴다는 작업은 생각해보면 보통 매력적인 일이 아닙니다.

음악, 미술과 같은 창작예술활동이 그렇듯이, 요즘 세상같으면 영구히 남을 흔적이니까요.

 

@thoughtcatalog/unsplash

 

두 책들을 읽어나가면서 이런 저런 상념들이 스쳐지났지만, 막상 글로 옮기려니 십프로도 생각이 나질 않네요.

그 십프로마저 기억이 나는 게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구요.

 

도데체, 어떤 생각은 기억에 남아 있고 어떤 생각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까요?

또 형체가 없는 생각이란 것이 어떻게 기억 속에 각인되어 남게 되는 걸까요?

점점 기억이 희미해져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도 애매한 일들이 생겨나는 요즘, 별 쓸데 없는 생각들이 뇌리에 머물다 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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