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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취중진담1]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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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하고 고된 현타 속에서 하루 하루 버텨나가다보면,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술 한잔 하고 싶은 때가 있게 마련이죠.

'유유상종'이라고, 대개 어울리는 무리들이야 자기가 속한 그룹에 포함되어 있는 부류들이겠고 그러다보니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대화의 내용도 직업관련 관심분야이거나 피상적인 세간의 이슈들이 대부분이겠죠.

 

자신의 속마음을 터 놓거나 고민거리를 상담하는 건 어지간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힘든 일입니다.

더군다나 살아오면서 대개가 몇 번쯤은 크고 작은 배신을 당해봤을테니,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속내를 털어놓는다는 건 어찌보면 조금 위험한 일일수도 있겠죠.

마음을 툭 터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를 가졌거나, 삶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멘토를 가진 사람은 행복할 거예요.

 

@mimithian/unsplash

 

술 자리에서의 얘기는 역시 사람에 대한 뒷담화가 주를 이룰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 모여 사는 세상에서 사람에 대한 얘기 아니면 할 게 없긴 하죠.

하지만, 내 맘 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읍니까?

그러다보니, 결국은 뒷담화라는게 결국 누군가에 대한 험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죠.

게다가, 이야기를 하다보면 스스로도 알다시피 일정부분 부풀려지기 마련이고 상대방 또한 그럴테니 약간은 상대방 얘기를 접어 듣기도 합니다. 속으로는 '에이, 또 뻥치고 있네' 하면서도 겉으로는 동조를 뜻하는 고개를 주억거려주는 거지요...

 

 

 

 

승준이(가명)는 고등학교 동창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큰 사고 치지 않고 비교적 무난하게 살아온 이 친구는 늘상 새로운 삶을 꿈꾸는 샐러리맨이죠. 모든 샐러리맨들이 그럴테지만요. 이 친구는 주사가 거의 없고, 적당한 선에서 술자리를 마무리하기 때문에 늘 편안한 만남이어서 좋습니다.

 

승준이가 대학시절 만났던 A씨의 얘기입니다.

 

대학 동아리를 통해 우연히 가까워진 A씨는 어느 날 승준이에게 '나는 너를 보통 친구 이상으로 여기고 있다'는 뜬금없는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뭐 느닷없는 동성애 고백은 아니고, 말 그대로 정말 깊은 우정을 갖고 있다는 표현이었겠지요?

하지만, 승준이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조금 불편하면서도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고 해요.

밤 11시가 넘은 시각, 예의에 벗어나는 것 같다며 거부하던 승준이를 기어이 자기집으로 데리고 가서 같이 잠을 잤던 날 밤의 이야기에요.

하긴 그 시간에 남의 집에 쳐들어갔으니 뭐 그리 좋은 대접이야 받았겠습니까만, A씨 어머니도 거의 냉대에 가깝게 대하고... 누워 잠들기 전에 이런 말을 듣고 있자니, 별 스런 생각이 다 들더래요...

'뭐지? 이 녀석은...?'

 

@healing_photographer/unsplash

 

그때부터 조금은 색안경을 쓰고 본 면이 있겠지만, A 씨와의 여러 에피소드들을 되돌아보면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들이 적지 않았다고 해요.

승준이가 다른 친구들과 같이 있는 모습을 A 씨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어 훼방을 놓거나, 별 일도 아닌 일에 승준이를 계속 끌고 다니려 하고 말이죠. 승준이가 매몰차게 거부하지 못하는 성격이긴 하지만요...

게다가, 왠 속셈인지 당구를 칠 때면 꼭 카운트가 맞지 않았다는 거예요. 분명히 몇 개는 더 남아 있을 것 같은데 다 쳤다고 주장하는 일이 계속되니 의심이 생길수 밖에요.

 

시험을 얼마 앞두지 않은 때에도 승준이를 계속 꼬드겨 당구장이며 술집이며 카페며 계속 놀자고 하더래요. 맘 약한 승준이는 잠깐 놀아주고 나중에 열심히 공부하자 싶어 따라줬구요...

그런데, 시험결과가 나오니 A씨는 전 장학금 대상이었고, 승준이는 A씨가 날을 새가며 공부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답니다.

마치 공부 안하고 한량처럼 코스플레이를 했던 A 씨의 이중적인 모습에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그때부터 A씨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A 씨는 무서운 적으로 변해 승준이를 괴롭혔다고 합니다.

 

@mihaisurdu/unsplash

 

 

사실 괴롭혔다는 표현은 좀 그렇군요.

너무 승준이가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심정적으로 고생한 면도 있어보이기 때문이죠.

그만큼 승준이는 순진하기도 하고 맘이 여린 친구였어요.

자기를 친구 이상으로 여긴다는 A씨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속 내를 제법 많이 내 비친만큼, 소원해진 뒤로 자기 뒤에서 A씨가 다른 사람들과 히히덕 거리는 얘기는 자기 속내를 놀리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실제로 몇 번이나 승준이를 손가락질하며 얘기하는 A씨의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는 군요.

그럭저럭 멀어지면서 얼굴을 안 보려고 애쓰다가 졸업하게 되었으니 그걸로 끝난 것으로 여겼다죠.

 

 

 

 

하지만, 문제는 졸업 후 어렵사리 들어간 회사에 떡 하니 A 씨가 선임으로 있었다는 점이죠.

A씨가 자원으로 나서서 승준씨의 사수가 되겠다고 했다는 군요.

신입사원이 뭐 선택권이 있었겠습니까? 지독한 악연이라고 봐야죠.

 

이때부터 A씨의 은근한 갈굼이 승준이에게 가해졌다고 합니다. 겉 모양만 보면 참 친절한 선배처럼 보였을거라고 해요.

하지만, 그 밑에 깔려 있는 모습은 정반대의 모습들이 많았다고 하네요.

이를테면, 자기의 사적인 심부름(담배셔틀, 커피셔틀)을 티가 나지 않게 아무도 주변에 없을 때만 골라서 부탁하는 말로 위장해서 시키곤 했다지요.

승준이는 이런 피곤한 감정소모에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옮겼다고 해요.

지금은 웃으면서 뒷담화를 하고 있지만, 그때 받은 감정적 피곤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obiefemandez/unsplash

 

A씨의 입장에서 똑 같은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합니다.

승준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지배욕이 너무 강한 A씨가 승준이를 독점하려 했고 원하는 대로 잘 안되자 또 다른 사람을 찾아간 거고 이후 우연히 상하관계(?)에 놓이게 되자 옛일에 대한 복수를 한 것 처럼 보이더군요.

하지만, 드라마처럼 극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혼자 만의 착각일 수도 있어 보이구요.

 

승준이의 말만 들어서는 A씨는 참 지저분한 캐릭터가 분명하긴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사람들의 행동패턴일수도 있겠구요...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다는 유행가 가사처럼, 가장 친했던 사람은 돌아서게 되면 가장 무서운 적이 됩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니까요...

 

@naomi_august/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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