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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단상] 운동치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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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저마다의 개성과 자질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타고난 재능에 악바리같은 노력을 더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의 성과를 이루기도 하고, 그 반대편에는 지지리도 찌질하게 살다가 가는 이도 있겠죠.

 

상당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셀럽들의 화려한 겉모습을 보고 한번 쯤은 나도 저런 인간으로 태어나서 한 세상 살아봤으면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해 보았을 겁니다.

확실히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더 다양하고 멋진 삶을 살 확률이 높을 겁니다.

 

@cristian_newman/unsplash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니, 제가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이 운동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못해서 안한 건지, 안해서 못한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운동은 잼병이었죠.

못해도 더럽게 못했기 때문에, 체육시간은 늘 괴롭기 그지 없는 수업이었죠.

뭐 못하면 못하는데로 즐기면 그만이었을텐데, 그 당시엔 그런 여유를 부릴 도량도 없었거니와 친구들의 무시와 비아냥을 농담으로 받아넘길 아량도 없었기에 그냥 쭈구리가 될 수 밖에 없었죠.

단체로 하는 운동은 못하는 사람들을 추스려가며 할 여유가 없기 마련이니까요...

 

교내 체육대회 때, 반 대항 축구시합 때였죠.

늦게나마 맘을 잡고 공부를 시작한 이른바 불량청소년(?)이 이날 축구시합의 주인공이었더랬죠.

 

 

 

야물딱지게 걷어부친 팔과 다리의 옷 매무새부터 다른 친구들과 뽄새가 달랐죠.

몸 놀림도 마치 축구선수인 양 정말 환상적으로 움직이더군요.

당시 제 눈엔 그리 보였답니다.

그리고 올라온 쓰루패스를 헤딩 슛하는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어찌 인간의 목이 저렇게까지 꺾이나 싶게 확 재끼면서 헤딩 슛을 하는데, 점프도 시원챦은 제 눈에 그 모습이 어찌나 멋져보이던지요...

 

체력장은 가장 괴로운 난관 중의 하나였지요.

다른 것은 쭈구리'면 되지만, 일정 한계치를 넘겨야만 하는 체력장의 테스트는 운동치인 저에겐 정말 괴롭고 힘든 과정이었지요.

엉덩이 치기를 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윗몸 일으키기와 아무리 애를 써도 한 개를 넘기지 못하는 턱걸이, 게다가 뛰었다하면 제일 뒤에서 헉헉대며 남들보다 1~2초는 늦게 들어가는 100미터 달리기 등 자존감을 꺾어놓은 온갖 종목들은 공개적으로 제 자존감을 짓뭉개놓기 딱이었죠.

 

@Unsplash/unsplash

 

 

아마, 공부마저 그저 그렇게 했다면 지대로 왕따각이었을 겁니다.

운동이나 스포츠 관련으로 먹고 살 팔자는 아니었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운동을 못 한다하여 제 삶이 영향을 받을 일은 다행히 거의 없더군요. 물론 온갖 체육관련 행사 때마다 스폿라이트를 받는 사람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곤 했지만요.

 

남자들은 군대를 가게 되면 전투축구라 해서 또 한번의 운동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지요. 정말 군대에서는 축구만 잘 해도 군 생활이 열배는 편해질 겁니다.

 

직장인이 된 후로는 운동 못해도 별 상관이 없는 시간이 시작되었죠.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괴롭히던 운동 스트레스가 이젠 더 이상 스트레스가 아닌 일이 되니 너무 좋더군요.

물론 그에 상응하는 또 다른 종류의 온갖 스트레스가 새로 추가되기도 했지만요...^^

 

취미로 시작한 골프는 운동이라기보다는 거의 기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꾸준히 할때는 나름 싱글까지 스코어가 내려가기도 했는데, 운동 잼병의 기질은 나중에 여지없이 드러나더군요.

 

@courtneymcook/unsplash

 

잘 해야겠다는 욕심이 앞 설수록 더 악화되는 기이한 현상이었는데, 드라이브 스윙을 뒷 땅을 때리는 잘못된 습관이 생겨버린 거였어요.

동반자들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더군요.

저주받은 운동치 몸은 안 하려고 마인드콘트롤을 하면 할수록 뒷땅은 더 심해져 갔고, 결국은 골프채를 놓고 말았습니다. 사실 세미프로를 할 것도 아니고, 친구들과의 즐거운 라운딩이 다였는데...

라운딩이 오히려 괴로운 시간이 되다보니 골프와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 거죠.

 

태어나면서부터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살다가 불운하게도 이런 저런 불상사를 겪는 경우도 많죠. 자신의 부족하고 못하는 부분에만 매달려 괴로워해 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는데, 그런 생각마저도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되던 시절이 있었죠.

 

직장 초년시절에는 혼자서 하는 운동으로 웨이트 트레이딩을 시작했었죠.

지금처럼 전문적인 트레이너들이 많아져서 1:1 코치를 하던 시절이 아니어서, 중구난방으로 옆 사람 힐끔거리며 하는 방법을 따라하였답니다.

그렇게 3년 넘게 꾸준히 하다보니, 제법 근육질 몸매로 바뀌더군요.

 

@visualsbyroyalz/unsplash

 

근육량을 늘릴 목적이 아니었는데, 하다보니 거울에 비추어지는 제 모습의 변화가 제법 근사해보여 계속 욕심을 부려가며 아령의 무게도 늘리고 횟수도 늘려갔죠.

부풀어 오르는 근육들을 거울에 비춰보며 자기만족의 흐뭇한 미소를 지어가면서요...

 

그러던 어느날, 어느 회식자리에서 운동이야기가 나왔죠.

선배 한 분이 "골프가 공으로 하는 운동 중에서는 최고로 재미있는 운동이라"고 목소리를 높여 주장하시더군요.

그 당시에 전 웨이트 트레이닝에 한참 빠져 있었고, 골프는 90타 이하를 내려가기 버거워 하던 때라 선배의 의견에 동의를 표할 수가 없었죠.

전 웨이트 트레이닝이 더 재밌고, 골프는 별 매력을 못 느끼겠더라고 말했더니 선배가 정색을 하며 딱 잘라 말하더군요.

"그건 자네가 골프를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야~!"

골프채를 접은 이후로 골프를 하면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만남은 이어지지 못했죠.

다들 골프치자고 하면 잘 모이는데, 그냥 만나는 건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잘 어긋나더라구요.

하긴, 시간 좀 나면 그 시간에 골프치러 갈 녀석들이긴 하지만요.

 

골프를 포기한 뒤로, 우연한 기회에 생활체육으로 탁구를 시작했습니다.

벌써 8년 가량을 해 오다보니, 제법 구력이 쌓인 셈이죠.

역시나 운동치를 입증하듯 일정수준이상의 기량은 늘지 않더군요.

 

@wansan_99/unsplash

 

취미생활로 하기에는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이 향상되어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잘하시는 분들이나 빠른 속도로 기량이 향상되는 분들을 보면 부럽죠.

엘보우로 1년여 넘게 고생하다가, 올해 초부터 다시 탁구를 시작했는데 희한하게도 최근에는 통증이 거의 사라졌어요. 운동하면서 계속 팔꿈치를 사용했는데도 말이죠...엘보우가 시작된 것도 희한하고...

그 고통의 정도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심할 때가 있었는데... 일상활동이 힘들 정도였으니까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참 귀가 얇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이의 비아냥 정도야 콧방귀 정도로도 여기지 않는 멘탈갑인 분들에 비하면 부끄럽군요..^^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운동들도 거의 못하고 계실거예요.

일상이 이렇게까지 많이 변질된 것도 처음이지 싶네요.

유래없이 긴 장마까지 겹쳐, 올해는 힘겨운 시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다들 건강관리 잘 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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