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여행

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반응형

 

출처 : 어크로스. 예스24. 2020년 6월

 

저널리스트 권석천 씨의 대담하고 날카로운 지적이 빛나는 꽤 재밌는 책이었다.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 문장에서 날카롭게 찔리는 듯한 느낌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이어지는 작가의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의 경험담...

털어놓기 민망한 '현지 가이드와 셰르파를 하대시 했던' 낯 뜨거운 기억에 대한 고백...물론 폭언을 하거나 망나니처럼 굴지는 않았지만, 현지 가이드가 셰르파를 부리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자신 또한 똑같이 행동하거나 고생하는 셰르파에 대해 감사해 하는 마음을 갖지 않았던 낯선 경험...문득 겹쳐지는 대기업 회장들과 그 2세들의 갑질사건...

나와 갑질하던 재벌들이 뭐가 다른가 하는 아픈 질책...


서울 태생의 권석천 기자는 2020년 현재 jTbc 에서 방송일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시집을 뒤적이다 도서관을 나서곤 했다니 일찌감치 법률가의 길은 포기한 셈이다.

문화부 기자를 꿈꾸었지만, 사회,정치,경제부 기자생활을 하다가 2007년 중앙일보로 옮겨 법조팀장, 사회2부장, 중앙일보 논설위원을 두루 거쳤다.

주요 일간지 논설위원 경력이 말해주듯 필력 또한 예사롭지 않다.

흔히 조중동 하면 떠오르는 보수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다른 책 내용도 낯설기는 매한가지이다.

법조팀장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경험담들을 책으로 낸 <대법원, 이의 있습니다 1,2>와 <두 얼굴의 법원 1,2>도 그의 작품이다.

 

낯선 나와 마주치는 순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 권석천

 

책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이 한 문단은 굉장히 신선한 느낌을 주는 메타포로 느껴졌다.

하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알듯 말듯 손에 잡히지 않았다.

책을 다 읽고나서도 정확한 작가의 의도는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어렴풋이 전해지는 무언가는 있다.

 

jtbc 프로그램 "아는 형님"을 즐겨보는 편이다.

풀어 놓은 듯 7 MC 들의 자유분방하면서도 경쟁적인 진행방식도 그렇지만, 게스트들의 평범하지 않은 삶과 그 경험들을 풀어놓는 입담들이 재미있어서이다.

언젠가 슬쩍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 하던 강호동의 당뇨 이야기는 듣는 입장에서 굉장히 대단하게 느껴졌다. 조절하기 쉽지 않은 당뇨를 앓으면서도, 넘치는 열정과 에너지로 각종 버라이어티 예능쇼를 이끌어가는 강호동이란 인물이 새삼 달리보이기도 했다. 코미디언 후배들이 출현한 회차에서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후배들이 강호동을 놀리면서 "많이 배웠데이~"라고 비꼬았던 장면이 있었다. 후배 입장에서는 죽을 쓴 녹화였는데, 영혼 없는 멘트를 강호동이 했다는 것...^^...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며 진정 많은 걸 배웠다.

 

권석천 기자도 우리 사회 상위그룹에 속해 살아온 사람이다.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판,검사. 기자, 잘나가는 사업가 등 등 우리사회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들이었고 또 그들과 어울려서 생활하면서 사고방식 또한 그들과 유사하게 변했을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그의 책에 펼쳐진 내용만으로 유추해보자면 그는 꽤 중용의 길을 고수한 편이다.

 

<사람은 어떻게 흑화하는가?> 라는 첫 에피스드부터 조커의 말을 빌어 심상치 않게 글을 전개하며 흥미를 돋구더니,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웰메이드 북이다. 내겐 취향저격 제대로이다.

 

“너무 바빠서 ‘생각을 못 하는’ 측면도 있지만, 생각을 하면 괴로워지기 때문에 ‘생각을 안 하게’ 된다. 생각을 하면 그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부 평가나 승진과 관련 없는 ‘쓸 데 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일을 잘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다.”

---「좀비공정」중에서

 

<좀비공정>이란 말도 생소하지만, 무얼 말하는지 듣는 순간 팍 느낌이 온다. 여태 그럭저럭 착하게 괜챦게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내게 "과연 그럴까?" 하며 뒤통수를 치는 책이다.

 

돈 몇 푼에 치사해지고, 팔은 안으로 굽고, 힘있는 자에게 비굴한 얼굴이 되기 일쑤였으면서도 소심한 성격을 착한 것으로 착각하고 무책임한 것을 너그러움으로 포장하며 무관심을 배려인양 또한 간섭을 친절로 기만한 건 아닌지 반성하는 저자에게 백퍼 동감하는 바이다.

 

무심코 흘려 보고 들었던 영화와 드라마 혹은 소설 속 한 장면들에 시선을 고정하여 이야기를 풀어내는 치밀함과 세심함이 부럽기도 하고 또 놀랍기도 하다. 주어진 명제들을 거꾸로 되새김질 할 수 있는 능력도 대단해 보인다. 게다가, 비꼬듯 흉내내는 습작같은 필체도 여간 매력적이지 않다.

 

스스로 불완전한 인간임을 고백하며, 이 책속에 풀어 넣은 여러 이야기들을 통해 권석천은 "사람에 대한 예의"에 대해 묻곤 한다. 우리가 짐승과 다른 이유가 무엇인가 하고...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