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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우리의 저물어가는 생을 축복합니다. 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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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엘리. 예스 24. 2019년 10월

 

솔직 담백한 필체의 일기 같은 내용으로 이루어진 얇은 책이다.

나이들어 노쇠한 부모님과 함께 한 3년간의 기록으로, 특히나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딸의 병수발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딸은 아마도 미국 이민자로 외국인 남편을 둔 듯 하다. 자식들도 장성하여 분가한 상태로 보이고, 부모님이 미국에 들렀다가 다치시면서 한국으로 돌아갈 형편이 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목차

1부 죽는다는 것

중환자실에서 맞이한 결혼기념일 · 11

마지막 신음 소리 · 13

아버지, 안녕 · 21

 

2부 산다는 것

누룽지의 시간 · 27

선택 1 · 30

선택 2 · 37

아버지의 몸 · 42

제임스와 샌드라와 미치코 · 48

나의 손 · 54

우리들의 뽀뽀식 · 57

우리는 탱고를 춘다 · 61

면도 · 67

함께 걷기 · 72

엄마의 걸음마 · 76

엄마, 아버지보다 엄마가 먼저예요 · 81

아버지의 기저귀 · 87

나는 시간을 훔친다 · 94

돈, 현실적인 문제 · 101

세상의 모든 요양보호사에게 감사 · 107

셀레나의 시 낭송 ·

113 큰 인연 · 119

다시 찾은 이름 · 128

 

3부 죽음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유품 정리 · 135

나의 장례식을 너의 결혼식처럼 해다오 · 145

사진 두 장 · 152

90세 노인이 그리워한 어머니 · 157

고마운 사람 · 160

진정한 위로 · 170

아버지에게 · 178

좋은 아버지 · 183

 

에필로그

우리, 만난 적은 없지만 · 189

http://www.yes24.com/Product/Goods/80777565?Acode=101


 

약간의 소설적인 구성을 제외하고는 거의 시간 순으로 나열한 이 책의 글들은 낯선 타국에서 임종을 맞이하는 아버지를 병들어 노쇠한 어머니와 함께 간호하는 딸의 지극 정성 간병일지이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삶의 끝자락에서 부딪히게 되는 문제들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딸의 모습이 참 의연해 보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아버지는 참 행복한 끝맺음을 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내용에도 그런 부분이 있다.

오랜만에 주치의를 찾은 딸에게 주치의는 이것 저것 근황을 물어보다가, 아버지를 떠나보냈다는 얘기를 듣고 딸의 심경을 묻는다.

 

딸은 아버지 "삶의 마무리에 함께 할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답한다.

이 대답을 들은 주치의는 만사를 제쳐놓고 정신없이 딸에게 묻는다.

과연 어떤 면에서 그 힘든 병수발을 들면서 영광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무척 궁금했던 것이다.

주치의 자신도 두 딸과의 좋은 관계형성에 무진 애를 쓰고 있지만, 어떻게 하면 자식들로부터 존경을 받을수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그 비결을 알고 싶다는 거였다.

 

딸은 주치의에게 말한다.

"아시다시피, 어떻게 한 두 마디로 말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하지만, 늘 아버지는 매사에 감사해 하셨어요.

내가 너희들을 키웠으니 내 병수발을 당연히 들어야 한다는 게 아니었어요.

간호해 드릴 때 마다 늘 감사해 하셨죠."

 

책에 적혀 있지 않은 수 많은 어려움과 갈등에 관한 이야기들도 충분히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들 부녀는 서로에게 감사하며 사랑과 이해로 이 모든 난관을 이겨나간다.

 

아무리 딸이라해도 자신의 똥오줌을 받아내게 한다는 건 아버지로써는 말못할 고통이었을 것이다.

어느 시간이 지나, 딸과 아내만으로는 간병이 힘들어져 타인의 손길을 필요로 할 때의 비참함 또한 늙고 병들어 노쇠한 아버지에게는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딸은 그 동안 참 잘 살아왔던지 주변사람들에게서 많은 도움을 얻는다.

미국이라는 타국에서 이민자의 삶을 살면서 같은 이방인인 멕시코나 다른 나라 이민자들과 도움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얻게 된 인간관계 속에서 아버지의 병 간호를 도와주는 손길마저 참으로 복되게 되갚음 받는다.

 

딸이 겪으며 실감했던, 간병인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간병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고된 노동에 비해 형편 없는 보수도 그렇고, 각 간병인 마다의 인간성에 따라 간호의 질이 천차만별이라는 점도 그랬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비용문제이다.

딸과 아내가 거들면서도 간병비용이 한달에 600만원이 넘게 들었다고 하니, 제대로 된 간병서비스에 의존한다면 그 액수가 얼마가 들지 알 수 없다. 돈이 없다면 말년에 존엄성을 잃기 십상이다.

 

딸은 3년여 아버지의 병수발을 들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을 수 없는 것에 대해 무척 힘들어했다. 자식을 낳아 키우다보면 대략 첫 몇 년간의 삶이 오로지 애들에게 바쳐지고 정작 부모의 시간을 사라지듯이...

 

@bigmck56/unsplash

 

제3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버지는 그나마 행복한 죽음을 맞이한 듯 보인다.

지극 정성인 자식들의 보살핌하에 생을 정리하며 마감했으니 말이다.

 

노년빈곤율이 OECD 꼴찌에 가깝다는 한국에서의 임종모습은 과연 어떨까?

미국에서도 요양시설에 맡겨놓고 잘 들여다 보지 않거나 연락을 끊어버린 자식들이 있다는 내용이 책에 있지만,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을것 같다.

 

대소변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는 일은 애기 때나 극노인 때나 똑 같지만, 힘들기는 극노인 때가 훨씬 더 하다. 게다가, 계속 커가며 생글생글 웃는 아기와는 달리 늘상 고통속에 신음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간호하는 사람마저 우울증에 빠지게 하기 십상이다.

 

길어지는 간병기간으로 인한 남편과의 불화문제도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딸의 남편은 참 착한 심성의 소유자인듯 싶다.

부부관계를 일정부분 포기하면서 처가 부모들을 집에 들여서 간호하게 하고 남편 스스로도 간호를 돕기도 하는 등... 남편 또한 보통 수준은 넘는 포용력의 소유자인듯 하다.

 

죽음을 놓고 유산 상속 싸움으로 진흙탕 속을 설쳐대는 자식들이 있는 가 하면, 이렇듯 평온하게 준비하며 부모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참 아름다워 보였다.

 

아버지가 타계한 후 통상적인 절차대로 바로 장례식을 치르지 않고 가족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몇 달 뒤에 장례절차를 밟은 것도 참 이례적이다.

사촌오빠가 전화로 대노하여 쏟아 붓고 난 다음날 다시 사과 전화를 했다고 했듯이, 관혼상제에 대해서는 참 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부고를 듣고 일찍 들른 집안의 어른이 아직 상복이 준비되지 않아 옷을 차려입지 않은 상주에게 불호령을 내렸다는 얘기도 있는데, 참으로 주객이 전도된 희극적인 상황이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음을 배려치 못하는 허례허식들은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은 우리 삶의 마지막 길에 대해서 많은 고민과 사회적 합의들이 없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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