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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혼자서 극장을 서성이는 당신에게. 박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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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북스토리. 예스 24. 2019년 11월 출간

 

인터넷에 ‘브런치’를 쳐서 검색해보면,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브런치>라는 웹싸이트가 뜬다.

주지하다시피 ‘브런치’ Breakfast(아침) Lunch(점심)을 합성해서 만든 단어로, 국립국어원에서는 ‘어울참’을 권장하였지만 현실에서는 ‘아점’으로 쓰고 있다.

‘브런치’는 1896년 옥스퍼드 사전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써 오던 단어이다. 신조어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순수한 ‘끼니 때우기’ 혹은 ‘점심시간을 활용한 전업주부들의 사교모임’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각종 SNS에는 이웃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생각과 세상소식들을 나누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SNS를 하는 모든 이들이 글쓰는 작가요 소식을 전하는 기자인 세상이다.

@kellysikkema/unsplash

 

신춘문예당선과 같은 바늘구멍을 통과해야만 작가 등단과 함께 글 꽤나 쓴다는 인정을 받던 시절은 옛날이야기이다.

글쓰기에 진입장벽은 거의 없어졌다.

대신, 매시간 쏟아져 나오는 어마무지한 양의 글들 속에서 자신의 글들이 생명을 얻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컨텐츠가 좋다 해도 어지간한 필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게다가, 흐르는 강물처럼 새로 생산되는 디지털문자의 격류에 쓸려 순식간에 사라지기 십상이다.

 

바야흐로 인스턴트 소비의 문화가 글자 세상에도 젖어 들어간 셈이다.

과잉생산의 자본주의가 문학계만 비껴갈 리 만무하다.

카카오에서 내놓은 블로그 플랫폼 ‘브런치’는 기존 SNS와는 조금 달랐다.

일단 진입장벽이 꽤 높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먼저 작가신청을 통해 에디터팀의 승인 심사에 합격해야 한다.

Blog 형식이지만, Naver나 Daum의 블로그와 같은 일기형식이라기 보다는 칼럼, 소설, 시, 수필과 같은 글을 위주로 한다. 시기별로 승인된 작가들에 한해서 <브런치북>이라는 책을 발간해주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런 기준으로 인해, 독특한 관점과 깊이 있는 사유가 묻어나는 글들이 많았던 ‘브런치’도 육아, 여행, 맛집 탐방, 자기계발 등의 요즘 트렌드로 글의 경향이 기울면서 글 솜씨 좋은 일반인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타 블로그와 거의 유사해진 상황이다.

실제로, 서점에 가보면 순수문학보다는 생활문학(?)의 비중이 훨씬 커졌고 시대의 주류를 이뤘음을 알아볼 수 있다.

 

@hannahllinger/unsplash

 

<우리 각자 1인분의 시간> 브런치 출판 프로젝트 특별상을 수상한 박민진의 브런치북 중 하나이다.

도시 홀로족의 문화생활 에세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어마어마한 군중이 밀집해 살고 있는 서울이란 대도시에서 영화와 책을 벗삼아 고독력(?)을 취득한 독거남의 에세이를 모아 출간한 책이다.

 

‘브런치’ 웹 싸이트에 올라와 있는 그의 글은 350여 편으로 구독자 수만 4천여 명에 이른다.

브런치북의 형태로 10개, 매거진의 형태로 3개가 만들어져 있다.

제 한 몸 건사할 비좁은 공간 하나를 확보하여 직장과 극장, 서점, 휘트니스 센터를 뱅뱅 도는 어찌 보면 평범한 일상일 수도 있지만, 매사를 각도를 달리하여 바라보면 또 제각각 나름의 특색이 있다.

일상 속에서도 주옥과 같은 글들을 뽑아 낼 수 있는 생활밀착형 작가가 되기 위해서 이런 관점은 꼭 필요한 자질이기도 하다.

라문숙 씨의 <깊이에 눈 뜨는 시간>이란 책도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모아서 발간한 책인데, 어찌 보면 박민진의 이 책과 유사한 경로를 통해 탄생한 것이다.

https://blog.naver.com/windownine/221799961394

 

깊이에 눈 뜨는 시간. 라문숙

​​엄마, 아내, 딸, 주부, 며느리...겹겹의 존재를 안고 살다보니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이전과는 확연하...

blog.naver.com

 

자신의 일상을 일기처럼 써서 올리는 블로그의 특성상 그리 잘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이웃들의 범사가 글쓴이의 자판기 필터를 거쳐 메이크업을 마치면 연예인 급은 못 되더라도 나름 괜찮은 비쥬얼이 된다.

감히 도달하지 못할 것 같은 비범함보다는 친근하지만 색다른 매력에 더 끌리듯, 어쩌면 나도 해볼 만 한 일들을 예쁘게 포장해 선물 받은 느낌의 책이다.

3포 세대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 해 씁쓸한 맛도 들지만, 예상되는 빈약한 미래에도 불구하고 치열하게 사유하고 애써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에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도 든다.

맛깔나게 써 내려간 삶의 편린들은 모양만 달리했지, 우리 모두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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