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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영화. 늑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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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쿼터제'란 제도가 있었습니다. 한때 헐리웃 영화가 전세계 영화관을 휘어잡고 있던 시절, 한국의 영화를 보호하기 위해 스크린당 기준에 의한 일정일수 이상 강제로 한국영화를 상영해야만 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였지요.

지금이야 세계시장에서도 우뚝서 있는 기량이 출중한 감독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영화의 소재도 거칠것 없이 자유스럽게 다룰수 있지만, 불과 수십년 전만해도 전혀 그렇지 못했죠. 영화를 만드는 기술력도 훨씬 뒤쳐지는데다, 쏟아부을수 있는 제작비 또한 전혀 헐리웃을 상대할 수가 없다보니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외화와의 경쟁에서 한국영화가 살아남을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보릿고개가 뭔지도 모르는 세대들이 주류를 이루는 지금에서는 스크린 쿼터제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드물테지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홍콩느와르도 어느 틈엔가 빛을 바래고, 영원할 거 같던 헐리웃 영화들도 맥을 놓기 시작하더니... 이젠 극장을 가득 메우던 영화팬들이 집안에서 편히 쉬며 OTT를 즐기기 시작합니다. 그 계기에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한 몫을 했구요.

대형스크린에서 압도적인 사운드로 즐기는 영화 한편이 삶의 커다란 즐거움을 차지했던 중년이후의 세대들과는 달리, 컨텐츠의 다양함과 창의적인 표현을 중시하며 화면의 크기는 별 개의치 않는 젊은 세대들에겐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식상한 주제들을 변주해대는 건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요즘 극장가는 마치 코로나팬데믹 시절과 맞먹을 정도로 관객수가 줄어들었다고 하지요. 그도 그럴것이 관객을 끌어들일만한 재미있는 영화가 극장가엔 우연히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어차피 킬링타임용으로 볼거라면 집에서 편안하게 OTT나 보겠다는 사람이 늘 수 밖에 없겠지요. 상당수의 영화제작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 OTT를 다루는 플랫폼에서 이뤄지는 현상에서도 예견이 된 일이었구요.

<기생충>으로 한국영화의 퀄리티를 전 세계에 알린 뒤, <오징어게임>으로 한국드라마 제작능력의 우수성을 확인한 요즘... 안타깝게도 정점을 찍고 하향길을 걸었던 홍콩느와르나 헐리웃 영화들처럼 한국영화나 드라마도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더군요.

 

 

첫 20여분 약간의 기대감을 유발하던 <늑대사냥>... 온통 피범벅의 난장판을 만들고서 끝까지 자리를 사수하던 관객을 조롱하며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합니다. 잔인하지만 아무 의미없는 고어물을 좋아하는 독특한 취향의 관객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좋아할 수 없는 이런 내용의 영화를 찍는 감독의 두뇌 속이 심히 궁금해지더군요.

개연성이 있기를 하나, 긴장김이 있기를 하나... 요것만큼은 그래도 좋았지...할만한 게 하나가 없더군요. 영화를 보는 내내, '저 공간안에서 카메라워킹을 어떻게 했을거 같고... 분장하느라 시간 굉장히 소모 많이 했겠네...저기에서는 피가 어떻게 뿜어져나오도록 장치를 달았겠구나...' 등등의 쓰잘데 없는 생각만 계속 들게끔 끔찍하게 재미없고 잔인한 영화더군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입니다만...

 

 

그러면서, 이제 한국영화도 세계영화계에서 정점을 찍더니 너무 서둘러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확 들더군요. 그간 정말 기발한 소재와 아이디어로 K-컬쳐를 세계만방에 떨쳤지만, 위세를 펼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른 번아웃과 소재 고갈등으로 위기에 직면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잘 알지만, 또 그런것을 해 내는게 예술가의 숙명 아니겠습니까?... 매 작품마다 홈런을 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실망스런 작품을 계속해서 쏟아내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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