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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네가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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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미륵산에서 바라본 다도해 풍경

 

김 부장과 악녀는 꽤나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김 부장이 평사원일때부터 악녀는 친절하게도 김부장을 챙겨온 이력이 있죠.

악녀도 처음부터 악녀스럽지는 않았다고 해요.

 

회사가 한창 커 나갈때, 식사시간도 없이 야근을 밥먹듯이 하던 때

악녀는 김부장을 포함해 동료직원들을 마치 엄마가 아이들 돌보듯 했다고 합니다.

뭐 지금으로써는 주 42시간 근무가 법제화되어 있어 상상도 하기 힘든 작업환경 속에서

정말 뼈를 갈아넣으며 일들을 했던 시절 얘기지요.

 

세월이 흘러,

회사의 규모가 커지고 김 부장과 악녀는 회사내에서 나름의 위치를 잡았지요.

김 부장은 회사에서 3인자의 위치에 올라,

그의 말이나 행동은 회사 내에서 꽤나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그런 김 부장이 스스럼 없이 악녀와 친분을 보여주니,

회사 내에서 악녀의 위상 또한 상당히 쎄질 수 밖에 없었지요.

 

통영 앞 바다

 

상명하복의 군대식 문화가 너무도 자연스러웠던 시절의 회사생활에서는

당연하게 보이기도 했던 상사의 갑질같은 행위가,

시대가 바뀌니 더 이상 용인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비쳐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해 오던 관행을 쉬이 바꾸는 건 이미 몸에 밴 습관이라 매우 어려웠죠.

 

악녀는 갑질상사 중에서도 원 톱이었고,

기존 직원들 뿐 아니라 인턴사원들에게서도 원성이 자자했지요.

 

회사에서는 갑질문화를 없애고, 효율적인 운영방식을 도입한다고 여러가지 시도를 합니다.

그 와중에도 악녀는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지 못했지요.

 

급기야, 김 부장의 귀에도 악녀의 갑질얘기가 들어가게 됩니다.

처음에 김 부장은 얘기를 듣고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지요.

 

자신이 겪어왔던 지난 시절,

악녀의 모습은 헌신적이고 다정다감한 그런 것이었기 때문이죠.

몇 차례 악녀와 만나서 대화를 해 보아도

예전 모습과 크게 달라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던 탓에,

그저 악녀를 시기질투하는 누군가가 만들어 낸 루머정도로 치부해버렸다고 해요.

 

통영 바닷가 주상절리

 

하지만, 반복되어서 들려오는 악녀에 대한 좋지 못한 얘기들에 의해

조금씩 의구심이 생기던 차에

한장의 투서가 김 부장에게 들어가게 되지요.

 

악녀에게 제대로 갑질을 당한 인턴사원이 회사를 때려치면서 쓴 것이었지요.

투서의 내용은 김 부장을 아연실색하게 만들기 충분했지요.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그 누군가의 실상이

전혀 반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애정이 깊었던 만큼, 배신감도 컸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악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김 부장의 입에서

악녀에 대한 비난의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으니까요.

 

"네가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

 

김 부장이 악녀에게 한 말이라고

현장에 있었던 이가 그러더군요.

 

통영 <바람의 언덕>

 

결국 악녀는 생소한 한직 부서로 좌천되었고,

그 부서에서마저 제대로 일을 수행하지 못해

김 부장에게 미운 털이 제대로 박히고 말지요.

 

악녀 입장에서는 믿었던 연줄에게 손절당해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을 겁니다.

 

악녀가 한직으로 물러난 뒤에도

갑질문화가 깨끗하게 정리되지는 않았습니다.

 

한 참 뒤에 만나게 된 악녀의 모습은 참 안쓰러울 정도더군요.

주눅이 든 다는게 바로 그런거겠죠.

자신이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저질러왔던 행위가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고스란히 되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김 부장의 노여움이 풀리도록 애를 쓴다고 쓴 것이

오히려 화를 부추기는 꼴이 된 일이 몇 번 있었다고 하더군요...

 

통영 앞 바다 풍경

 

사람들은 뒷담화를 좋아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면전에서 대 놓고 흉을 본다는 건

어떤 불이익이 돌아올 지 감수하기 힘들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과감하게도 면전에서 욕을 하고 갑질을 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습니다.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손에 쥐게 되면,

그것을 맘껏 휘두르는 인간들이죠.

 

약자의 아쉬운 사정을 이용해,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고 노예처럼 부리는 인간들도 있죠.

 

자신의 말 한마디에 굽실굽실하며 복종하는 모습을 보는 건

사실 굉장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동물의 본성 중 하나입니다.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되어 있지만,

그 근본적인 형태는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죠.

 

미륵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려수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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