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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가슴이야기. 플로렌스 윌리엄스 저/강석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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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MID. 예스 24>. 2016년 출간

 

책의 원제는 Breast, A natural and Unnatural history 이다. Breast 를 인터넷 어학사전에 쳐 보면 유방, 젖, 가슴 등의 번역이 나오고 옹색하리만큼 적은 예시 몇 개만 나온다. 제목과는 달리 책의 목차에서는 '젖가슴'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같은 신체부위를 지칭하지만, '가슴'과 '젖가슴'이란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는 다르다. 가슴이라는 단어는 섹슈얼리티에 연관된 느낌이고, 젖가슴이라는 단어는 수유가 연상되며 모성의 순수함을 드러내는 것 같다.

Daum에서 '젖가슴'으로 검색하면 청소년에게 적합하지 않은 검색결과를 뺀다면 한 페이지를 다 채우지 못한다. 게다가 첫 검색결과물이 '젖가슴이란 단어를 써서 비유한 문구 때문에 구설수에 휘말린 소설가'에 대한 기사이다.

작은 글씨로 ‘내 딸과 딸의 딸들을 위한’이란 부제를 붙어 있다. <가슴이야기>란 책 제목을 정하기까지 적잖은 고민이 있었을 듯하다. 책은 제법 두꺼운 편이다. 가슴에 대해 무슨 할 얘기가 그렇게 많을까?

14장으로 나누어서 기술된 내용은 하나하나가 꽤나 생소하고 때론 충격적인 정보들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경파괴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극심해진 상황에서는 어느 누구도 환경파괴의 결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나라를 떠나 살지 않는 한 미세먼지를 마시며 살아야 한다. 우리 몸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호르몬들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연구되어 알려져 있긴 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들도 많을 것이다.

화학공업의 발달로 인해 생활의 편리함은 눈에 띄게 증가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독성화학물질의 체내 누적으로 인한 폐해들도 조금씩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관한 연구는 놀라울만큼 적다. 왠지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이다. 마치 중년을 넘어가면 무슨 중병이라도 걸렸을 까봐 병원에 가기 두려워 하는 마음이듯...

여성의 몸은 대표적으로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라는 난소에서 분비되는 여성호르몬의 작용에 크게 의존한다. 여성의 생리주기는 임신을 위해 계획된 난소호르몬의 작용에 의한 것이며, 생각보다 미세한 외부의 충격에도 쉽게 리듬이 망가질 수 있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플라스틱이나 영수증 종이위에 처리된 화학물질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활용품들로부터 배출되는 환경호르몬이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유사한 작용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 여간 불편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입덧 개선제로 쓰였던 탈리도마이드 복용에 의한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지결손 기형아 출산이나 유산 방지제로 쓰였던 DES에 노출되었던 여태아가 나중에 질암과 자궁기형이 발생하였던 사례들은 화학물질의 무서움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독성 화학물의 피해상황을 전후 맥락을 추적하여 분명히 밝힐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서서히 축적되어 인과관계를 거의 밝혀내기 힘든 독성화합물들은 어쩔 것인가? 또한 개개의 화학물질은 별 이상이 없어도 체내에서 두 화합물이 시너지 작용을 일으키며 건강을 위협한다면 그런 문제는 또 어떻게 밝혀낼 것인가?

저자는 직접 자신의 혈액에서 몇 가지 독성 화학물질에 대한 검사를 시행해보는데, 예상대로 기준치를 훨씬 넘는 양이 검출된다. 이러한 화학물질들이 수유를 통해 2세에게 전달되었음도 확인되었다.

굉장히 두렵고 끔찍한 일이다.

생수를 담고 있는 플라스틱 용기에서 빠져나오는 환경호르몬도 무시 못 할 위험 요소라는 얘기를 읽은 적이 있다.

겉 포장지에는 온갖 화려한 광고문구로 깨끗한 물인 것처럼 화장을 하고 있지만, 결국은 그 물을 담고 있는 플라스틱 병에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화학물질들에 오염된 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찌는 듯 더운 여름철에는 또 오죽 많이 녹아나올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오염된 이세상에서는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못 마실 것 같다.

뾰족한 해결책 없이 답답한 팩트 폭격만 나열되어 있어, 책을 덮고 나서도 찝찝함을 벗을 수 없었다.

아는 게 병이다.

하지만, 이 책의 부제목처럼 딸과 딸의 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 봐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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