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여행

감정의 분자. 캔더스 퍼트 저/김미선 역

반응형

   영국 캠브리지대학은 1400년대에 설립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대학의 명성을 드 높인 많은 걸출한 과학자들이 배출되어 왔고, 현재도 세계 명문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캠브리지 대학 정문 맞은 편 골목으로 몇 발짝 들어가면 빨간 출입문 위에 독수리가 그려진 '이글스'라는 펍이 나온다. 생명의 비밀인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여 노벨상을 수상했던 왓슨크릭이 죽치고(?) 지내던 곳이라고 하여, 과학자들에게는 일종의 성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요즘 우리나라도 카페에서 공부하고 토론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는 듯 하다.

 

   1953년 <네이처>에 발표했던 1,000 단어에 못 미치는 짧은 논문으로 밝힌 DNA의 구조는 실은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라는 여 과학자의 X선 회절 사진을 통해 영감을 얻어 밝혀낸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프랭클린의 X선 회절 이미지가 그녀의 허가 없이 왓슨크릭에게 보여 졌고, 그녀의 발견은 과학자로써 평생 한번 거머쥘까 말까한 기회였지만 거의 강탈당한 거나 다름없는 일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드러나지 않은 과학사의 비밀아닌 비밀이어서, DNA 구조와 관련해 아직도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DNA 구조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 그녀의 X선 회절이미지의 발견... 이런 일이 현재까지도 제대로 조명이 되지 않고 바로 잡지 않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다. 이 때문이었는지(얼마나 억울하고 분하겠는가....) 프랭클린은 37세의 젊은 나이에 난소암으로 사망하고 만다.

   저자 캔더스 퍼트는 대학원생 시절 (그녀를 과학계의 치열한 전투 속으로 이끌며 지도해주었던 사람이었다.)의 실험실에서 아편제수용체를 발견하여 새로운 약학 분야를 열었다. 졸업 후 그녀가 ‘궁전’이라 여겼던 미국 국립정신건강연구소에 재직하게 되던 시절(국립건강연구소는 솔이 추천하여 자리 잡게 된 곳이었다. ), 그녀 또한 아편수용체를 발견해놓고도 예비노벨상이라 불리는 래스커상 수상자(인원수가 제한되어 있었다.)에서 제외 당하였다. 수 십년전 프랭클린이 당했던 것처럼....

​  래스커상에서 제외됐을 때 캔더스 퍼트는 함구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한동안의 노력에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자 솔은 캔더스 퍼트에게 아편제수용체를 찾는 실험을 포기하도록 종용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솔 몰래 계속 실험을 진행하여 극적으로 결과를 얻어냈었다. 그런 정황이었기에 자신을 배제하고 솔과 그 동료가 아편제수용체 발견의 공로로 래스커 상에 지목되었다는 것은 그녀로써는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이로 인한 불화에 대한 입소문 때문이었는지 솔과 그 동료는 노벨상을 타지 못하였고, 그녀는 막강한 학내 파워를 가진 솔의 눈 밖에 나서 과학계에서 일종의 왕따를 경험해야만 했다.

   저자는 이후, 200여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하며 뇌와 몸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네트워크라는 심신의학을 자신의 연구결과에 따라 추론하여 수용하였고 활발한 저작활동과 대중강연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세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이자 여성 과학자로서 알파수컷들의 세계에서 전전긍긍하고 때론 승승장구 했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몸과 마음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자신의 과학적 발견으로부터 추론해가는 과정의 기술이기도 하다. 비물질인 감정물질인 분자사이의 경계를 집요하게 파고 든 기록인 셈이다.

​  데카르트의 이원론이 지배적인 패러다임이던 과학계에 반발하여 주장한 것이었기에, 모든 선구적인 것들이 그렇듯이 그녀의 주장은 처음엔 과학계 주류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최고 과학자들 간 명예와 권력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는 그녀가 과학계 한 가운데에서 수십 년 간 온몸으로 부딪혀 경험했기에 알 수 있었던 메디컬 스릴러 같은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종신재직권을 포기하고, 현재 기업체로 가서 자신이 발견한 최초의 에이즈 치료제인 '펩타이드 T' 개발의 상용화 연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출처 : 시스테마, 예스 24>. 2009년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