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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리뷰] 찬실이는 복도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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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네이버 영화. 이 포스팅의 사진들의 모든 출처는 동일합니다.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렸던 시기에 개봉했던 한국영화더군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란 제목에서부터 뭔가 시니컬한 뉘앙스가 풍기더군요.

저에겐 비교적 낯선 주연여배우를 기용한 영화라서, 인디영화인가 싶었는데...

오히려 조연급 배우들이 윤여정, 김영민 등 눈에 익은 연기자들이었고, 최화정씨도 까메오로 출연했더군요.

 

 

젊은 시절에는 아무 생각없이 때려부수는 블록버스터 영화를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철저히 소비자 입장에서 소비재 이용하듯 영화라는 것을 스트레스 해소용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죠.

영화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영화 하나를 만들 때 어떤 노력들이 들어가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는 문외한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죠.

 

TV드라마 같은 영화를 뭐하러 비싼 돈을 주고 영화관에서 보느냐는 생각도 있었구요. 한마디로 내 주머니를 털어 볼 영화는 시청료만 내면 무한으로 볼 수 있는 TV드라마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주의였죠.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생각들에 변화가 생기더군요. 블록버스터들이 자극수준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우주에서 괴상한 짓을 남발하면서 망가져가기 시작하면서부터이죠.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져 허황하기 그지없는 말도 통하지 않는 외화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우리네 이야기들을 잘 풀어낸 한국영화들에 대해 더 호감이 가기 시작한거죠.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꿈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봤습니다.

 

영화판에 미쳐 젊은 청춘시기를 보냈지만, 손 안에 아무것도 쥐지 못한 노처녀 PD 를 스크린에 올려 놓음으로써 관객들에게 "당신이 간절히 원하던 것이 무엇인가요? 당신의 꿈은 이루어졌나요?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저예산 영화들의 장점이라면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거겠죠. 많은 제작비가 들어가는 영화라면 아무래도 관객들 취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다보면 감독의 의도가 흥행여부에 관련되어 비틀어지기 쉬운 면이 있으니까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찬실이는 복도 많다며 여러 가지 찬실이의 상황을 비꼬는 노래가 마치 창(唱)처럼 흘러나옵니다. 싱글 세대주가 5명에 1명꼴이라는 현 시대에, 굳이 미혼을 결격사유인 듯 들먹이는 건 좀 아닌 듯 했지만 어찌됐든 결혼도 못하고 애도 없고 집도 없고 돈도 없고(자세한 노래가사는 기억나지 않네요...^^) 등등 운운하며 계속 찬실이는 복도 많다고 노래합니다.

 

친한 동생으로 나오는 여배우의 연기가 조금 거슬르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훌륭했습니다. 이찬실 역 강말금씨의 연기는 스토리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더군요. 저로써는 처음 보는 연기자였지만 영화 속 연기에 박수를 보내게 됐습니다. 김영 역 배유람 씨와의 짝사랑 에피소드는 보는 내내 짠하기 그지 없었죠.

 

 

영화는 영화판에서 한 감독을 주구장창 따라다니며 젊은 시절을 바친 40세의 여성 PD로 주인공을 설정합니다. 그러다 감독이 비명횡사하면서 끈 떨어진 여 주인공은 졸지에 실직자 신세가 되지요.

유명영화감독의 그늘에 있으면서 자신의 가치를 시장 안에서 한정시킴으로써 그 그늘이 사라졌을 때를 대비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미쳐 돈 버는 것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왔던 거지요. "영원히 좋아하는 사람들과 영화만들면서 살 줄 알았다."는 한탄이야 들어주는 사람도 거의 없지요.

 

마치 40대 중반에 직장에서 짤리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역할이었어요.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에서 보호받으며 생활하던 부속품 같던 샐러리맨들은, 보호막이 걷히고 조직에서 방출되면 먹고 살만한 능력이 별로 없음을 실감하게 되지요. 거대한 조직 속에 작은 소모 부품으로 해 오던 일들은 너무 한정적이고 부분적인 일로써 오직 조직안에서만 유용한 능력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그렇게 조직에서 방출된 사람들이 많지 않은 퇴직금을 자영업을 시도하다 날리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야기들은 주변에서도 흔히들 듣는 스토리입니다.

물론 피나는 노력과 의외의 재능으로 제2의 삶을 성공적으로 일구어낸 사람도 있기는 할 겁니다만, 대부분의 명퇴자들의 결과는 그리 좋지 못한 듯 합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이죠.

 

젊은 시절의 꿈들은 세월 속에서 흔적도 없이 스러지고 그저 회사가 이끄는 대로 흐르는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정신이 들어 보니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문득 의구심이 들겠죠... SNS 에는 온갖 잘 나가는 사람들의 자기 자랑이 넘쳐나는데 난 무얼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거지?... 뭐 그런 회한 같은 것 말예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돈 벌이를 못하고 가난한 사람이 겪을 만한 비루함이나 무위감에 대해서는 비교적 가볍게 터치만 하고 맙니다.

화면도 비교적 깔끔하게 처리하여 가난함의 비참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고통스럽게 무력한 현실상황을 헤집기보다는 짝사랑 이야기와 젊은 시절 꿈에 대한 몽상으로 관객들에게 현실에는 눈 감게 만들죠.

게다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그닥 유능해보이지 않는 PD에게 의리를 내세우며 다가오는 후배들의 모습을 오버랩하며 아직 꿈이 완전히 사라진게 아니라는 자위까지 들이댑니다. 과연 현실에서 이런 일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싶더군요. 재상집 개가 죽으면 바글거리며 사람들이 들락거리지만, 막상 재상이 죽으면 콧빼기도 안 비친다는 옛말도 있는데 말이죠...

 

여주인공의 5살 연하남에 대한 짝사랑 에피소드는 사실 굉장히 마음아픈 얘기입니다.

연애세포가 이미 시들어버린 탓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좋은 감정이 싹트는 그 지난한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힘들게만 느껴져서일까요? 한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남은 생을 끝까지 함께 하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일 말이죠.

 

 

블로그에 올라온 영화리뷰들을 읽어보니, 정말 다양한 의견과 감상들이 있네요...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으신 분들도 많구요..^^

 

영화란 게 다른 예술작품과 마찬가지로 보든 사람의 감정 상태나 개인적인 경험과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면면이 제각각일수 밖에 없지요.

전 개인적으로 깔끔하면서도 뭔가 마음에 남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게 하는 제법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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