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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헤매도 좋을 만큼 . 홍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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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착한책방. 예스24> 2019년 11월 출간

왠지 느낌이 블로그 포스팅들을 모아서 낸 책인 듯 하다.

블로그를 시작한지 2개월 정도 지났을때, 어떤 분이 작은 출판사를 운영한다며 '책을 낼 생각이 없느냐'고 댓글을 달아놓았다. 개인 출판을 주로 하시는 분이라는데...

이웃님들과 검색을 통해 들러주시는 분들이 내 포스팅에 머물다가 가는 것이 좋아, 많은 시간을 투자해 포스팅을 해 온것들이었는데... 누군가에게는 책으로 낼 만큼 매력적일까? 싶은 착각도 잠시... 이 세상에 나와 있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들에다 또 한권의 책을 더 만들어 얹는 것이 과연 현명한 처사인가 생각해보았다. 비싼 종이 소비해가며 굳이 활자화해야 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들인가에 대해서...

책은 확실히 인터넷 상의 영상물과는 또 다른 매력의 소유자이다.

사각거리는 책 넘김의 느낌 뿐 만 아니라, 종이 위에 인쇄되어 있는 글자들은 스크린 화면위의 기계화된 글자와는 색다른 무언가가 있다.

게다가, 내 것이라는... 온전히 내 것이라는 느낌이 좋다. 물론 책 한권에 해당되는 이야기이지, 창작물이 내것이란 얘기는 아니지만...

                                                         <출처 : Unsplash. com/@heyum>

오늘 내 손에 들린 이 작은 책 한권을 읽다보니, 이런 저런 상념들이 스쳐지난다.

확실히 시대는 끊임없이 변해간다.

예전같으면, 이런 내용의 글들이 책의 형태로 출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도 아니요 수필도 아니요...사진첩도 아닌...

하지만, 책을 통해 새로운 상상/상념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책의 내용이나 두께와는 상관없이 그 책은 나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잘 읽히지도 않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낑낑대며 몇 시간씩 머리 싸매고 읽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고 무슨 행복한 순간을 경험하게 만들 것인가...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분도 있을 터이지만...

나로써는 가볍더라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이런 책들이 더 좋다. 책 제목처럼 헤매도 좋을 만큼...

                                                        <출처 : unsplash.com/@anniespratt>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눠 17~19개의 짧달막한 글들여행사진들을 실어, 따뜻한 감성이 느껴지는 책으로 만들었다.

짧지만 긴 인연들과 매일 이별하며 산다... 일상에 불편을 끼치지만 금방 지나갈 사소한 인연들...한번 스쳐가면 다신 못 볼 그 인연들이 그리운 나이가 되었다....

- p19

여행을 업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보통 사람들은 잘 해야 일년에 한 두번의 해외여행만을 할 수 있을 터이다. 여행을 떠나는 건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다.

일상에서 조금만 비껴 서 있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자잘한 일에 목을 매고 사는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사람을 만날수록 대화를 할 수록 점점 굳어가는 나를 바꾸기 위해 배낭을 짊어지고...

우리 사이의 침묵이 공간을 꽉 채웠지만 여유롭게 만들었거든..."

이 책은 전형적인 여행기는 아니다.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는 그 과정에서의 상념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순간포착하였다.

그리하여 영원히 남을 기억으로 시각화하였다.

순간의 기억을 잡아낸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생각들을 활자화할때의 쾌감이란 또 어떻고...

모두가 잠든 시간에 조용히 밖으로 나와 빛을 사냥하듯 포획하고 담는 작업을 좋아한다...

의미없는 찰나는 없으니까...

여정은 떠날때 두려움을 염려하고 돌아올때 아쉬움을 토로하는 행위의 연속이다...

- P37

'혼자하는 여행'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은 근본적으로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인간은 고독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우리 DNA 속에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간 개인이 어떤 종말을 맞게 되는지에 대한 확실한 기억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보면 혼자서 여행하는 수 많은 고독자들을 스쳐지나게 된다.

그들의 모습에는 문자로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가 표식처럼 새겨져 있다. 인종과 국적을 떠나서 이들 '노마드'들은 그들만의 정체성과 배타성을 지니고 있다.

 

                                         <출처 : unsplash.com/@guilhermestecanella>

일상에서 쌓인 케케묵은 껍질을 벗겨내고 돌아오면

또 한 번 성장시킬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그렇게 또 파편을 쌓아간다.

-- P 54

우리 삶은 변신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끊임없이 빨려들어가는 모래지옥 같은 것일까?

누군가 행복은 불행하지 않은 소소한 일상의 반복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반복을 지겨워하지 않고 견뎌낼 재간이 우리에겐 없는 것일까?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가는 석양의 하늘,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뭉게 구름, 만년설로 뒤 덮인 산정과 그림같은 호수가 어우러진 산골마을 오막집.... 비내리는 음습한 도시의 거리풍경마저...

여행지에서 우리를 스쳐가는 장면들은 우리 안에 스며들어 있는 억눌린 감성의 뚜껑을 열어젖힌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전에

타인에게 시선을 준 적은 없는 지 생각한다.

나에게서 겨우 벗어났으나

타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악행이 실행되고 있겠지만

그와 반대로 선행도 계속 실행되고 있다...

내가 행하는 모든 것들이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고민한다.

--P87

수 많은 관계에 엮인 복잡한 시간을

싫어하면서도 잠시라도 외로워지려 하면

폰을 들고 세상과 연결한다.

--P97

 

 

                                                    <출처 : unsplash.com@dankapeter>

나이들어감에 따라 주변에 은퇴자들의 삶이 자주 눈에 띈다.

한때는 천하를 호령하던 사람이 권력을 놓은 후 쪼그라들어가는 모습과 그에 따르는 차가운 주변인들의 반응... 애시당초 쥐고 있지 않았다면, 알지도 못했을 굴욕감...

힘 있는 사람에게 달라 붙어 콩코물이라도 주워먹을까 싶은게 힘없고 능력없는 소시민들의 처세술일까?

정승집 개가 죽을때만도 못한...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세상인심인데도 씁쓸함이 진하게 남는다.

언젠가 우리 모두가 반드시 거치게 될 내리막길.

우리 삶의 끝자락에서 지나온 길을 돌이켜 볼때 과연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잠자듯 편안하게 이승을 떠나는 건, 전생에 업보를 다 치른 행복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라는데...

인간으로써의 존엄을 지키면서 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늘 부족해 왔기 때문에 여전히 모자라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울 생각에 심심하진 않다.

이미 모든 게 채워져 있었다면

그것만큼 지루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p149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담은 사진이건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꾸려 놓은 도시의 모습이건, 이색적인 사진들을 한장 한장 보다보면 어느 새 내 뇌리속에 저장되어 있는 풍경들까지 하나씩 불러내고 있다.

그 풍경들에 얽혀 있는 미세한 감정들의 소용돌이와 소소한 에피소드들까지 줄줄이 되살아난다.

어디에 그 많은 추억들이 나도 모르게 차곡차곡 쟁여져 있었을까?

아련하게 남아 있는 이 감정의 찌꺼기는 무엇때문이었을까?

그때는 무척이나 심각했을지도 모를 어떤 감정이었겠지...

그래도 심심챦은 많은 추억이 있으니 다행이다.

되돌아보니,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도 좋지만 가끔은 탈탈 털고 여행을 떠나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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