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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나를 없애버리고 싶을 때. 우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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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책엔. 예스24>. 2019년 10월 출간 ​

 

에이펠 타워가 어디있는 줄 아세요?


혹시 에이펠 타워에 가보셨나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고요? 그럴수도 있겠네요...

 


 

흔히 책에서 고전이라 하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사에 대한 촌철살인의 문장들로 쓰여진 교훈적인 서사들을 일컫습니다.

누구나 한번쯤을 들어 봤음직한 책이지만, 실제로 끝까지 읽어 본 사람은 드물다는 고전...

사실 어떤 고전책들은 눈 밝은 이들이 아니면, '뭔 *소리여' 할지도 모르죠.

그동안 제가 읽어왔던 책들에서 꽤나 많이 언급되곤 했던 <그리스인 조르바>를 드디어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요약된 내용을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마치 <그리스인 조르바>는 이미 전에 읽었던 책인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문화적인 차이에서인지, 책을 읽는 내내 낯선 지역에 와 있는 듯 불편한 느낌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중반까지는 그럭저럭 재미가 있었는데, 뭐 그리 수월하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번역의 매끄럽지 못함도 일조하는 것 같긴 하더군요.

@electerious/unsplash

책을 번역하시는 분들의 노가다성 작업량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소설가 '한강'씨의 <채식주의자>가 좋은 번역가를 만나 "맨부커상"을 수상했듯이... 힘들더라도 단순 번역이 아닌 작가의 의중을 파악한 충실한 의역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번역가들의 그런 노력을 익히 알기에, '맨 부커상'에서도 총 상금의 절반을 번역가에게 주는 거겠죠.

각설하고, <그리스인 조르바>는 야생마처럼 거침 없는 삶을 사는 조르바와의 시시껄렁해 보이는 대화속에서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중 하나 '자유'에 대해 얘기합니다. 또, 자유를 얻기위해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용감함과 멋스러운 여유까지도요...

그러한 과정은 그리 쉽게 눈에 뜨이지는 않습니다.

어떤이의 눈에는 조르바라는 그저 술주정뱅이의 넋두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요.

자기 자신과 대화하면서,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고 가장 나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소 실천하는 삶이야 말로 진실로 충만한 삶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는 눈 밝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것일 테지요...

제 눈에는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는 그저 그런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오랜시간 꽤 많은 양의 독서를 해 왔지만 <그리스인 조르바>로부터 가슴 뭉클한 감동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독후소감이 궁금하여 검색을 해보니 저와는 달리 감동적이었다는 평이 꽤 많더군요.

눈 밝은 이들이 많더라구요.

경소단박의 시대.

눈 뜨면 조금씩 세상이 바뀌어 있는 스피디한 시대에도 고전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합니다.

학자연 하시는 분들의 얘기라, 저 같은 문외한에게는 버거운 얘기지요.

 

@jamiehowardtaylor/unsplash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때도 짜실한 재미는 있었습니다만, 사실 전 '자유'에 대한 담론을 제 그릇에 담기가 힘들더군요. 하지만, 강요되다시피 '고전을 읽고 세상을 보는 눈을 띄워야 한다.'는 고정관념들이 책을 읽을 때마다 무의식중에 부담을 주곤 하더군요.

그리하여 <죄와 벌> <까라마조프의 형제들> 같은 여러 고전책들에도 관심을 두고 틈틈히 읽어보았죠.

역시나 고전은 무겁습니다. 경소단박의 시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다고 봅니다.

마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테크노바에 들어간 어르신처럼 말이죠...

'꼰대' 소리를 듣지 않고 훈계를 할 정도의 내공을 지닌 작가가 아니라면, 솔직히 고전작품처럼 관통하는 주제를 일관성 있게 설득시키는 작업도 수월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작가입네'하고 행세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겠죠.


<나를 없애버리고 싶을 때>

우선 책 제목이 굉장히 자극적이지 않습니까?

제 눈을 확 잡아끌었던 이유이기도 했지만, 어느덧 여러번의 눈길을 둔 끝에 무뎌져 버렸습니다만....

소파 위에 놓여있던 책을 본 아내가 " 무슨 책 제목이 이렇게...."하는 반응을 보여, 새삼 처음 책을 접했을때의 느낌이 되살아 나더군요...

본문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과연 이런 글들이 책으로 나가도 될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라는 고민을 했던 것 같네요. 사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담론 같은거? 그런 거 없습니다.

어찌보면 마르셀 프루스트<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의식의 흐름을 좇아 기술한다는 면에서는 유사합니다. 프루스트처럼 복잡다단하게 문장을 엮어내거나, 잘 다듬어진 우아한 문체는 아니지만요.

오히려, 솔직담백하고 때론 돌직구 같은 적나라한 표현들이 간접적인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합니다.

어르신들이나 바른생활을 하는 분들의 시각에서 보면, 때론 작가의 생각들이 너무 모나 보이고 때론 편협해보이고 혹은 못된 심성의 소유자로 비추어질 법도 합니다.

책 내용으로 유추해 보건데, 대학 졸업후 동네 단위에서 작은 영어학원을 운영하다가 철학공부를 위해 만학도가 된 가정주부의 가벼운 철학적 사유의 과정들을 SNS 에 올렸고 이를 본 출판사에서 책 내기를 권유한 것으로 보입니다.

여성으로서 한국사회에서 겪었던 경험들, 영국에 한달간 연수를 나갔을때 겪었던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 글로 시각화 시켜 놓은 것.

 

솔직한 게 탈이라면 탈일까요?

역시 세상을 살아나가다 보면 가장 힘든 게 인간관계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더군요.

백퍼 동감이구요.

'나는 왜 사는 걸까?' 내지는 '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거대담론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삶은 동물의 삶과 진배없다던 어느 유명인의 말 처럼, 그렇게 철학적인 사고를 하는 과정을 담담히 글로 전개해 나갔더라구요.

다른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이 언어라는 형태로 내게 말로 건네 주지 않는 한 절대 알 수가 없잖아요.

가끔씩은 상대방이 도데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죠?

이 작가분은 어떤 순간에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떠한 느낌이었는지 당황스러울 정도로 민낯을 드러냅니다.

솔직히, 저런 부분까지 고스란히 글로 노출시켜도 될까? 싶은 것 까지도요...

그런 글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덧 책의 말미 부분에 도달하면, 이 작가의 솔직함에 반하고 또 때로는 너무도 나와 유사한 면을 지닌 한 인간의 내면과 소통했다는 느낌에 상당히 힐링된 느낌이 들더군요.

@louishanesel/unsplash

 

지구상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생각과 느낌을 가진 인간이 존재한다는 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라는 일종의 면죄부같은 선물이랄까?...

이런 생각을 가진 작가가 있고 이를 책으로 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 편집자가 있다면, 비슷한 생각을 지닌 더 많은 사람들이 필시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유추가 되는 것일까요?^^

시대가 변하여, 책으로 낼 만한 소재들도 따라 변하는 것일 테지요.

어쨋든 저는 공감하며 재밌게 읽었습니다.

 


 

처음 했던 질문, 에이펠타워로 되돌아 갑니다.

에이펠 타워(Eiffel Tower)는 우리나라에서는 에펠탑으로 부르는 그 곳입니다.

스펠링은 누가 봐도 에이펠이라 쓰여 있죠?

실제로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물어보시면 파리지엥들은 잘 모릅니다.

물론 눈치껏 에펠 타워를 물어보는 것일테지 짐작하는 파리지앵도 드물게 있겠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것을 잘못된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대해 절대 반응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깁니다.

과연 누가 멀쩡한 에이펠 타워에펠타워로 바꿔 불렀을까요? 그리고 그런 이름을 전파하여 전 국민들로 하여금 에펠탑으로 부르게 만들었을까요?

어려운 사람이름처럼 복잡하다면야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도저히 헷갈릴 수가 없는 단순 발음인데 말이죠... 미스테리입니다.

우리가 사실이라 믿는 것들 중 이와 같은 사례가 없을까요? 당연히 많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 경험마저도 불완전한 오감에 의해 잘못 인식한 것일지도 모르니까요...더군다나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얘기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수많은 에펠탑들이 마치 진실인양 우리사회 속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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