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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내 젊은날의 숲. 김훈.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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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학동네. 예스 24

 

벌써 10여년이 지난 소설이군요.

김훈 작가의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려보기에는 참 힘듭니다.

너무 너덜너덜해져, 제본이 유지되어 있는 책이 거의 없기 때문이죠.

 

도서관에서 만난 '내 젊은 날의 숲'이라는 제목의 김 훈작가 책이 왠지 관심을 잡아 끌었습니다.

책도 제본이 비교적 성한 편이었구요 ^^

개인적으로 숲이 주는 초록의 푸르름... 그 이미지와 정서를 좋아하나봅니다.

늦은 새벽, 이슬이 막 증발해갈 즈음의 숲 속의 정경을 제일 좋아하긴 하지요.

아니다 다를까 꽤나 많이 아니 거의 정기적이라 할 만큼 숲에 대한 묘사가 책 전반에 깔려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어찌되었던 정해진 시간 내에 기승전결의 서사과정을 다 거쳐야 하기 때문에 클리셰가 없을 수 없죠. 짧은 시간안에 효과적으로 많은 것을 보는 이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니까요...

또한, 이런 저런 등장인물들을 아무 의미 없이 배치할 수 가 없죠.

그러다보니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 또한 등장인물 한 사람마다 어떤 의미를 두고 볼 수 밖에 없지요.

 

@sebastian_unrau/unsplash

 

소설 또한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아무 의미없이 등장하는 인물이 없긴 마찬가지이죠.

더군다나, 이 소설처럼 등장인물이 적은 경우엔 더더욱 말이죠.

하지만, <내 젊은 날의 숲>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릅니다.

예상외로 주인공과 타 등장인물들의 뒤엉킴은 지지부진하고 미진합니다.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주변부를 맴돌며 스치듯 변죽만 울리는 듯 하지요.

게다가, 주인공이자 화자인 젊은 여성의 나레이션은 마치 교향곡처럼 테마주제를 중심에 두고 반복적으로 변주하는 느낌입니다

 

돌이켜보니, 나는 단 한번도 '사랑'이나 '희망'같은 단어들을 써본 적이 없다...다시 돌이켜보면, 그토록 덧없는 것들이 이 무인지경의 적막강산에 한 뼘의 근거지를 만들고 은신처를 파기위해서는 사랑을 거듭 말할 수 밖에 없을 터이니, 사랑이야말로 이 덧없는 것들의 중대사업이 아닐 것인가...

 

- 김 훈

 

덧 없는 것들의 중대사업이라던 "사랑"은 내 젊은 날의 숲 속에서는 그리 무게를 지니지 못합니다. 마치 시골마을의 지저분한 중식당에서 먹는 누룽지탕 처럼 밍밍하고 느리합니다.

오히려 <내 젊은날의 숲>이란 제목에서 말하듯, 명멸하는 숲의 반복되는 사계의 모습이 생생하고 투명한 언어로 잘 묘사되어 있지요.

 

 

DMZ 안의 공공 수목원에서 세밀화 제작을 위해 계약직으로 고용된 나는 그리 좋은 가정환경을 갖지 못한 상황입니다.

말단에서 시작해 5급 공무원 까지 올라간 아버지는 지역사회의 유흥가로부터 각종 청탁을 받고 비위를 감싸는 댓가를 챙겨 윗선에 상납하며 벌어들인 크지 않은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가족을 부양했었죠. 그러나 덜미가 잡혀 감옥에 갇힌 상태입니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이런 사실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하고, 삶을 부정하며 딸에게 투정하는 어린애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또한 깨끗하지 못한 돈으로 자신의 현실이 만들어졌다는 절망감에 주인공 또한 부유하는 삶을 살기는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sakulich/unsplash

 

정황상 윗선에서 약간의 강요로 했던 일임에도 독박을 쓰면서 윗선에 아부하는 노예근성을 버리지 않은 댓가로 아버지는 상사들로부터 의리를 인정(?)받고, 윗선들과 연계된 조직으로부터 콩고물을 얻어서 생활을 유지하는 듯한 모습을 어머니는 보이죠.

그런 어머니의 이중적인 모습에 주인공인 나는 진저리를 치는 듯 합니다.

늘상 새벽까지 통화를 해서 주절대는 어머니의 전화를 한번도 제대로 응대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가족에 대한 죄책감인지, 힘 없고 죄 있는 아버지는 늘상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살지요.

딸과의 면회때도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할 정도니까요...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는 출소하기 전부터 밀어내는 작업을 시작합니다.

큰 평수의 아파트를 팔아, 소형 아파트 2개를 마련해 별거 준비를 하고 일찌감치 연줄을 끊을 준비를 하는 것이지요...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시절...

상급자가 은연중에 지시하는 관행처럼 해 왔던 불법행위를 정의감을 내세워 하지 않았다면 직장내 따돌림 등으로 그 또한 쉽지 않은 직장생활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나중에 감옥에 가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늦 겨울에 한번의 우회전으로 전방 민통선 안의 수목원에 온 주인공은 일년이 채 못 된 시점에 예산 삭감을 이유로 재계약을 못하고 다시 살던 곳으로 떠납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4계절 동안의 살아 숨쉬는 숲과 나무와 꽃들을 바라보며 초세밀화를 그려내는 계약직원으로서의 삶과 차마 버리지 못하는 현실 속의 혈연관계와 자신의 삶에 못지 않은 고통스러운 타인의 삶의 모습들... 그리고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 미래를 예상하게되는 심심한 로맨스까지...

 

@outoforbit/unsplash

 

이 책은 담담하면서도 쓸쓸하게 한 젊은 여성의 삶에 돋보기를 들이밉니다.

충분히 짐작하듯이, 어떤 영웅적인 서사도 없으며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도 없습니다.

 

변주되는 주제처럼, 매번 반복되는 문장들이 한 두 단어들을 대체하며 등장합니다.

거기에 Ctrl+C/Ctrl+V 한 듯 몇 몇 구절은 반복적으로 되새김질 하지요.

책 전반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좆내논'이란 말(horse)은 비참하고도 구질구질한 삶의 대명사처럼 쓰여집니다.

 

부정한 돈으로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힘없는 소시민의 아내와 딸...

그들의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인생에 대한 비애...

드러나지 않은 처연한 더러움을 감추고자 더욱 큰 소리로 외쳐대는 허망한 헛소리들...

 

마주 쳐다보기 고통스러울까봐, 애써 사계절의 꽃과 나무들의 자생력을 빚대어 다양한 색채로 생명력을 그려내며 주인공의 감정세계에 보호막을 쳐 놓은 느낌이 듭니다.

 

@museumsvictoria/unsplash

 

너무도 강렬해서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자등령 고개는 요새로써는 너무도 좋은 길목에 있는 관계로 한국전쟁당시에 수 많은 인명피해가 났던 곳이라고 하네요. 1개 중대가 포진해 있어도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거의 1개 사단급 병력이 투입이 되어야 할 정도였다니까요...

전쟁 동안 수도 없이 아군,적군의 점령이 뒤 바뀌는 동안, 이 지역에는 피아 구분도 안될 정도 수 많은 시체들이 쌓였고 50여년 세월동안 각종 자연현상 속에 땅 아래에 묻혀 조금만 파헤쳐도 유골이 드러날 정도였다지요.

능선을 따라 아군,적군의 2개의 참호가 파였을 것이고, 이 곳을 따라 수많은 유골들이 뒤엉켜 발견되는 그 아픈 역사의 현장...

턱 밑까지 다가온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서 평소 즐겨먹던 음식이 먹고 싶다고 썼던 이름모를 젊은이의 애절한 바램...

 

국가와 이념, 삶에 대해 결코 가볍게 흘려 넘어갈 수 없는 가슴을 짓누르는 묘사들에서 김훈 작가의 의중을 조금이나마 엿볼수 있었습니다.

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랬는데, 풍경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나는 말을 거느리고 풍경과 사물 쪽으로 다가가려 했다...거기서 미수에 그친 한 줄씩의 문장을 얻을 수 있었다. 그걸 버리지 못했다. 이 책에 쓰여진 글의 대부분은 그 여행의 소산이다.

 

- 김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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