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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당신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태호. 어떤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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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어떤 책. 예스 24

 

<올해 9번째. 술 담배 않던 20대 택배 노동자가 숨졌다.>는 안타까운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66125.html

대구 쿠팡의 택배 분류업무를 하던 일용직 노동자가 과로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건강했던 젊은이가 전날 저녁 7시부터 새벽 4시까지 날새기로 근무한 뒤, 집으로 돌아와 목욕을 하던 중에 쓰러져 사망했다고 하는데요... 부검 결과 사인은 '원인불명 내인성 급사'라고 합니다.

새벽에 날새기로 일을 많이 해 본 터라, 새벽에 일하는 것에 대한 피로도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젊은 시절에는 몸이 버텨내지만, 나이가 들수록 회복속도는 현저히 떨어지고... 일단 몸이 느낍니다. 이대로 계속가다가는 사단이 나겠구나 싶은...

 

@jramos10/unsplash

 

조사결과 코로나 19로 인해 택배물량이 급증하여 최근에 1시간 가량 연장근무를 하기 일쑤였고 쿠팡에서 일을 시작한지 1년여만에 몸무게가 15kg이나 빠졌다고 하니 그 노동강도를 충분히 짐작하고 남습니다.

 

지구촌 한쪽에서는 불로소득으로 하루에 수천만원씩 벌어들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죽기 직전까지 죽노동으로 일해도 한달에 손에 쥐는 돈은 겨우 생활을 유지할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살풍경이죠.

하지만, 조금만 더 오래전으로 생각을 옮겨가보면 이런 모습이 꼭 자본주의만의 것은 아니란 걸 금방 인식하게 됩니다.

 

태고이래로 이 세상에 사는 인간들에게 '평등한 사회'라는 유토피아는 그저 희망회로 속에서나 꿈꾸는 것일테지요.

 

누군가에게는 지옥같은 이 세상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천국같은 곳일지도 모르는 부조화의 현실세계...

 

아무 것도 모른 채 암흑같은 어둠 속에서 별다른 생각도 없이 하루 하루 근근히 살아가던 미맹의 시절은, 전 세계 곳곳의 소식을 단 몇 분안에 훓어볼 수 있는 현재의 삶 속에서는 더 이상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구석기 시대같은 전설적인 시간들일 겁니다.

한번 고기를 맛 본 강아지가 다시는 예전처럼 된장국에 말아준 밥을 맛있게 먹지 않았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올해 대학졸업생들 태반이 코로나로 인한 여파로 일자리를 잡는데 어려움을 겪을거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수 많은 시간을 졸린 눈 비벼가며 공부하였지만, 막상 졸업하고나서 변변한 일거리를 찾을 수 없는 막막한 현실... 얼마나 답답할까요...

 

@anubhav/unsplash

 

이 책의 저자, 조태호 박사도 불안하고 막연한 10여년 세월을 해외에서 좌충우돌하며 보냅니다.

그의 지나 온 짧은 인생이야기는 브런치(brunch)라는 인터넷 공간에 펼쳐 보여졌고,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을 수상하여 책으로 출간되기에 이릅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not-this-world 조태호 브런치 북

 

책을 구입하지 않고서도, 인터넷 상에서 그의 글을 모두 읽어볼 수 있습니다. 브런치라는 공간이 그런 곳이니까요.

 

현재, 인디애나 대학교 영상의학과 연구 조교수로 재직 중이라는데 책 내용은 주로 일본에서 조교로 일하던 시절에 포커싱되어 있죠. 연구하는 과정에 있는 과학자들의 어려운 삶의 단면을 들여다 볼 기회였습니다.

 

사실 재력의 뒷 받침이 없는 사람은 연구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업적과 성과를 내기 전까지는 굉장히 빈한하고 추레한 일상을 영위해야만 합니다.

연구를 위한 지원금도 확보하기 힘들고, 생계를 유지해야 할 의무까지 지면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어낸다는 것은 결코 녹녹한 일이 아니지요.

 

조태호 박사의 지난 시절 얘기는 독자들에게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할 듯 합니다.

어느 순간 과로로 사망한 택배기사님들의 뉴스기사가 떠오르기도 했지요.

그나마 조태호 박사는 위기의 순간 순간 행운의 여신이 미소지어준 덕에 현재의 위치까지 도달해 있는 것 같구요, 격랑에 난파되는 작은 어선처럼 침몰할 뻔한 절대절명의 시간들은 참 많았던 것 같아요.

그의 글들은 그런 점에서 힘든 현타를 버텨내는 이들에게 약간의 희망회로를 돌리게 하는 위로주사 역할을 하는 듯 합니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그런데 선택이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 우리는 다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매번 선택하며 살아간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내게 호의적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이 선택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전히 가벼울 수는 없다. 어떤 선택은 여전히 무겁다.

 

- P274...제5장 마지막 시험 중에서

 

그의 글은 문학적 향기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습니다. 오히려, 살벌한 삶의 현장에서 묻어나는 날것의 비릿함에 문득 문득 고개를 획 돌리게 합니다.

 

조태호 박사도 참 어지간하다 싶지만, 그의 아내 또한 평범한 인물은 아닌 듯 하더군요.

국제 NGO 기구에서 희생봉사하는 삶을 선택한 이력이 보여주듯, 그녀의 가치관은 이타심에 방점이 찍혀있지요.

 

두 부부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비슷한 것 같더군요.

신혼 시절 아내가 작성해 조태호 박사에게 선물했다는 <우리에겐 꿈과 자유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글 속에는 '더 큰 세상을 꿈꾼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합니다.

더 큰 세상을 향해 늘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자는 뜻이겠지요.

 

@marcojodoin/unsplash

 

우리는 스스로의 한계를 정해놓고, 그 울타리 안에서 편안하고 익숙한 삶에 취해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습니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가 있을지라도, 어느샌가 현실에 안주하려하고 울타리 밖으로 나갈 기회를 외면하려 하지요. 모험은 젊은 시절에나 해 봄직하다면서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모험을 해 볼 기회는 줄어들지요. 게다가 혹여 실패라도 하게되면, 회복할 기회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한계를 충분히 인식하고서도, '더 큰 세상을 꿈꾸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는 조태호 박사 부부의 모습은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그 와중에 겪게되는 비범하지 못한 인간으로써의 모습들도 공감을 자아내구요.

 

언어의 장벽을 안은 채 시작한 일본 유학과 노골적인 학내 괴롭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을 거듭 겪어야 했던 초라한 개인의 민낯들을 여과없이 드러내면서 측은지심을 자아냅니다.

 

뭔가 일이 풀릴 듯하면서 다시 꼬이고, 우연한 기회를 통해 해결책이 등장하는 일련의 과정이 십 여년 넘게 반복되면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인생서사가 책 속에 펼쳐집니다.

아내의 인간관계를 통해서 우연히도 꼬인 문제들이 풀리기도 하고, 이런 저런 학회 모임에서 안면을 튼 사람들로부터 활로가 뚫리기도 합니다.

역시, 모든 문제는 사람에게서 생기고 그 해결책도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breakfast_on_jupiter/unsplash

 

학내 졸업 작품전시회에 출품한 의상디자인을 유심히 본 영국 디자인 스쿨 관계자의 캐스팅으로 영국유학을 결행한 처제의 인생스토리도 많이 겹쳐졌구요.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의 지방대학 졸업작품까지 훓고 다니는 영국디자인 스쿨의 모습도 이채롭긴 합니다.

 

처제 또한 홀홀단신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답답했던 언어의 장벽을 맨손으로 하나씩 깨면서 참으로 힘들게 적응해 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하고 졸업했던 디자인 전공과는 한 참 거리가 먼 식당업을 하면서 살고 있지요. 고용인을 여럿 둔 사장님으로 말이죠...그 과정 중에도 참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있었더군요.

 

해외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라는 말이 있지요. 아무래도, 같은 한국인들끼리 서로 뭉치고 돕지 않으면 타국에서 살아가는 일이 몇 십배는 힘겨울테니까 한국인 서로간에 자국내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정도의 유대감을 지니고 있지요.

조태호 박사의 인생역정도 처제의 그것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더군요.

 

@benwhitephotography/unsplash

 

해외에서 1년을 살면, 자국내에서 살때 10년 정도의 에피소드들이 생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국어가 다르고 사고방식이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문화에 적응하며 산다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입니다. 여행가방 짊어지고 가이드가 안내해주는 편안한(?) 해외여행에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일들이지요.

 

좋은 책은 책들은 읽는 도중이나 다 읽고 나서 이런 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지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인생에 대해 숙고해 보는 시간을 주니까요. 유명작가들의 뛰어난 문체도 좋지만, 투박하지만 진정성 있는 삶의 편린들도 충분히 감동적이고 좋습니다.

 

팔딱거리며 뛰는 싱싱한 생선같은 삶의 현장에서 우러나오는 좋은 글들은 비록 종사하는 분야가 다르고 하고 있는 일이 천차만별일지라도 누구나 공감하고 빠져들게 만듭니다.

 

많은 암초에도 다행스럽게 침몰의 위기를 피해나가며, 미국에서의 삶을 펼쳐나가고 있는 조태호 박사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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