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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퀴즈쇼. 김영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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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학동네. 예스 24

 

요즘 다시 <도서정가제> 문제가 출판업계를 중심에 두고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죠. 3년마다 할인율을 조정하도록 했는데, 올해 11월이 재조정하는 시기이기 때문이죠.

영세 출판업체를 살리고 도서출판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취지로 시행된 '도서정가제'란 제도 자체의 실효성에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 제도에 대한 찬반 의견이 만만치 않게 부딪히는 걸 봅니다.

 

철 지난 책이나 약간 손 때가 묻은 책들이라면 좀 더 싼 가격이라면 구입해 읽을 마음이 훨씬 더 드는게 인지상정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현물들의 가격이 막 출시된 것들보다 철 지난 물건일수록 시간에 따라 계속 떨어지는게 일반적이죠.

하지만, 팔리지 않았던 책마저도 '도서정가제'란 제도에 묶여 가격을 일정이하로는 할인판매 할수가 없으니 재고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출판사나 좋은 기회로 책을 구입하고 싶어하는 독자들은 당연히 '도서정가제'를 싫어할 거구요...

이 제도를 통해 어부지리로 독과점 비슷하게 도서출판계를 장악하게 된 몇 몇 대형서점을 위주로 한 반대측 그룹은 이 제도가 현재처럼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라겠죠...그 덕에 팔리지 않은 책들은 폐지로 조각조각 찢겨나간다는군요...얼마나 큰 자원 낭비인가요.

 

@blazphoto/unsplash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시작된 제도라도 현실에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내거나 예상했던 것과 큰 괴리를 보인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교정을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겁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양한 목소리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쏟아져 나와서 무엇이 진정 옳은 것인지 해당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들로써는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결국은 한국사회의 적폐 중 하나였던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 십상입니다.

잘 모르는 분야의 논쟁에 관한 너튜브의 여러 동영상들을 들어보면 양극단의 주장 모두 그럴싸합니다.

물론 어느쪽 주장이 더 합리적인지 개인적으로는 확연히 구분이 가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만...

 

예전에도 뉴스보도가 백퍼 공정하고 진실했다고 보기는 어렵죠.

정권 입맛에 맞추기도 하고, 언론사들이 수익면이나 정치역학적인 면에 의해 많이 변질되고 왜곡된 보도를 해 온 것 또한 부인 못할 사실이구요.

 

하지만, 요즘 처럼 가짜뉴스들이 예쁘게 각색되어 SNS 를 돌아다니는 세상에서는 결국 모든 이들의 이성을 마비시켜 버리는 것 같아요.

개인의 한계를 극복하기 힘든 소시민으로서, 본인의 생각과 결을 같이 하는 주장의 뉴스나 동영상보도는 큰 의문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반면 반대성향의 것들은 '저거 가짜뉴스아냐?'하며 색안경을 쓰고 보곤 하니까요.

 

게다가, 무한 복사가 가능한 인터넷의 속성상 기레기들마저 책상에 앉아 Ctrl +C/Ctrl+V 만 두들겨 대는 것 같은 건 토시 하나 안 변한 기사들이 웹싸이트와 기자이름만 바꾸어 버젓이 검색창에 올라오는 것만 봐도 합리적으로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구요.

 

@lenin33/unsplash

 

모 전직기자의 책에, 내전 현장에는 가보지도 않고 인근 도시에서 현장에 목숨걸고 취재를 다녀온 다른 나라 특파원이 하는 철 지난 얘기를 짜집기해서 본국으로 기사를 송고한 적이 있었다는 글이 쓰여 있었죠.

어찌보면, 그게 한국 언론의 현주소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현대인들은 각자가 전부 다른 개인의 능력치로 쓰레기더미처럼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에서 진실을 알리는 진짜뉴스를 찾아내는 시험을 치르는 것 같아요.

문제는 자기가 찾아낸 정보만이 옳다고 굳게 믿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죠.

한마디로 "너무 적은 정보로 너무 많은 판단을 너무 쉽게 한다"는 누군가의 평가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한국사회가 이렇게까지 망가진데는, 역시나 청산하지 못하고 지나온 과거가 발목을 잡는 것이라는 얘기가 있더군요.

일제치하와 전쟁을 치르면서 국민들이 피폐해지고 넋이 빠져 있을 때, 그나마 좀 빠릿빠릿한 인간들이 사회지도자가 되어 공동체를 올바른 방향으로 잘 이끌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그 시절의 지도자라는 인간들은 대부분 사리사욕이 그득했던 것들이라는 얘기지요.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던 투사들을 고문하던 친일파 경찰들이 해방된 후 미군정에 의해 다시 경찰관료가 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려진 예이지요.

어디 경찰 분야 뿐이겠습니까?

한 줌도 안되는 각 분야의 고위직 관료들 중에는 이런 인간들이 없을까요?

 

아마도 고구마같은 정책들이 자꾸 나오는 것도,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카멜레온 처럼 색을 바꾸며 자리보존을 하면서 자기 잇속을 챙기려는 그런 인간들이 아직도 청산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너무 억지스러운 음모론일까요?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계의 모습을 보면 교사들이 교육에 신경쓰는 시간보다 공문 처리하는데 더 시간을 많이 쓴다는...애들 교육을 망치는 교육행정관료들의 무지막지한 횡포를 보면서 그리 허황된 추측은 아닐꺼라는 생각입니다.

 

@benwhitephotography/unsplash

 

선진국 교육체계를 취재하는 프로그램에서 "행정업무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가?"라는 리포터의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인터뷰 교사의 표정을 보면서 깨달아지는 바가 있더군요. 우리나라 교육행정은 뭔가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는...이렇게 된데는, 무지몽매한 공동체 일원들의 선구안도 큰 비중으로 책임이 있다고 하지요.

 

선구안 얘기가 나와서 생각나는 건데, <퀴즈쇼>라는 책 제목의 표지에 왠회전목마?

한참을 생각해 봅니다.

아무 의미 없이 책 표지의 사진을 선정하지는 않았을텐데 말이죠... 책 내용과 과연 어떤 연관성을 갖길래 저런 사진을 책 표지로 삼았던 걸까요? 잘 모르겠더군요. ^^

 

지금은 너무도 흔한 모습이 되어 있는 청년실업...

2007년의 한국 풍경을 담아낸 이 작품의 모습에서 2020년 현재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너무도 세밀하게 연기지시를 하고 있는 듯한, <퀴즈쇼>안에 시나리오처럼 쓰여진 문장들은 읽는 내내 생생하게 상상이 펼쳐집니다. 상상을 벗어나는 장면들마다 '어쩜 이렇게 맛깔나게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되는군요.

 

최근 읽었던 김영하 작가의 책들이 대부분 단편들을 엮어낸 책들이었고, <퀴즈쇼>는 제가 읽은 어찌보면 김영하 작가의 제대로 된 장편 소설로는 처음인 셈이었죠.

 

이외수 작가의 책도 재미있게 읽던 때가 있었습니다.

톡톡 쏘는 듯한 비유와 촌철살인의 경구같은 글들이 참 좋았었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장편 소설을 읽으면서 크게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100미터 스프린터와 마라톤 주자의 결이 다른 건 어찌보면 당연한 거지요.

 

@jmuniz/unsplash

 

김영하 작가의 <퀴즈쇼>는 그런 면에서 대단히 만족스러운 작품이더군요.

그가 지어낸 여러 단편들에서 경험했던 수 많은 재미와 경탄들이 장편에서도 쉼 없이 그대로 이어졌으니까요... 이런 작품을 써 내기 위해, 몇 달 아니 몇 년을 소비했을 고통의 시간들이 느껴집니다.

아니,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창조의 기쁨을 누린 시간들이었을까요?

 

남들이 하는 건 대부분 쉬어 보인다고 합니다만, 책을 읽으면서도 이렇게 디테일한 묘사와 생각의 전개는 그리 쉬이 따라하기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답니다.

김영하 작가의 또 다른 장편들을 책상 위에 쟁여 놓고서도 <퀴즈쇼>는 아껴가며 읽었네요.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돌이켜보면, 온갖 유희물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뭐 그닥 충격적이지도 새로울 것도 없는 에피소드들이었음에도 어찌 그리 맛깔나게 잘 썼을까 싶네요.

마치 주변에 널린 식재료로 뚝딱 요리하는데도, 기가 막힌 맛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요리사처럼 말이죠.

 

일주일 간격으로 태풍이 올라와, 가뜩이나 힘든 시간들을 더욱 애 먹이게 만드는 요즘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겠죠. 부디 큰 피해 없이 스러져 가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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