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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여행

현악 4중주곡 제 2번 D장조. 알렉산드르 보로딘.

by 차니워니 2020.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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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르 보로딘 (Alexander Borodin : 1833~ 1887)

 

러시아 5인조의 일원으로 러시아 국민악파 음악에 큰 업적을 남긴 작곡가이지요.

우리에겐 매우 생소한 이름이긴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매우 사랑받는 예술가입니다.

현악 4중주 2번은 그가 남긴 실내악곡 중에서도 아름다운 주제로 가득한 선율이 매우 아름다운 곡으로 평가받는 곡입니다.  음대생이라면 대학교 때 누구나 한번쯤은 연주할 정도로 유명한 곡이기도 하구요.

 

현악 4중주2번 D장조 중에서도 3악장 녹턴(안단테)은 특히 유명해서 따로 연주되기도 하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RKsCxvT8e8Y

Borodin: Quartet No. 2 in D major for Strings, III. Notturno: Andante

 

1악장은 고요하게 시작되는데, 듣다보면 가슴을 아리는 애잔함도 느껴질 겁니다.

이 곡은 병약했던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표현한 곡이기 때문이지요.

사생아였지만, 어머니의 지극정성 하에 자랐던 보로딘의 성장과정이 아내에 대한 사랑과 헌신으로 이어진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구 소련의 가장 유명하고 실력있는 실내악 앙상블이었던 '보로딘 4중주단'은 이 곡을 여러차례 녹음했지요.


 

유럽계 어머니와 러시아 귀족인 아버지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농노의 아들로 입적되어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납니다. 보로딘'이란 성은 농노의 성을 따른 것이라고 해요.

태생은 그리 행복하진 않았지만, 어머니 슬하에서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다고 알려져 있어요.

가족들 중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많아 여자들 속에 둘러싸여 자란 이유에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성격이 유순하고 부드러웠다고 하네요. 어머니가 재혼하여 두 형제를 낳았는데, 그들과도 특별히 친밀하게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9살 때부터 악기를 배우며 폴카를 작곡하고, 13세에는 협주곡을 쓰기도 하는 등 음악적 재능도 적지 않았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 의과대학에서 화학과 의학을 전공하고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유학을 갑니다.

독일에서 아내인 여류 피아니스트 프로토포포바를 만나 결혼하지만, 병약했던 아내를 계속 간병해야 했죠. 귀국하여 모교의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알데하이드 연구를 했다고 해요. 화학반응 중에는 그의 이름을 딴 '보로딘 반응'도 있다고 하네요.

 

교수 재직 중에 발라키레프로부터 작곡을 배우고, 일과 아내간병 외의 시간에 틈틈히 작곡에 매진합니다.

러시아 국민음악의 창조(러시아 5인조)에 전력을 다했고, 러시아 최초의 여자의학교 설립에도 관여해 여성해방운동을 실천하기도 했죠. 러시아 5인조 중에서도 보로딘은 실내악곡에 중점을 둔 편이었는데, 여러 편의 수준급 실내악을 남겼죠.

 

그의 음악가로서의 인생은 36세(1869년)에 초연했던 교향곡1번이 호평을 받으면서였지만, 대표작인 교향곡 2번 오페라 '이고르 공' 작곡에 착수할 즈음 화학자로써의 그의 논문이 표절시비에 휩쓸리면서 작곡을 중단하여 작품의 완성이 늦춰지게 되지요.

 

결국 8년여 만에 완성된 교향곡 제2번 프란츠 리스트(헝가리)에게 격찬을 받으면서, 그의 이름은 조금씩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됩니다.

 

 

유라시아 대륙의 기상을 흠뻑 느낄수 있는 보로딘의 교향곡 2번은, 리스트 뿐 아니라 지휘자인 바인가르트너에게도 찬사를 받지요.

 

" 러시아를 알고 싶다면

차이콥스키의 비창교향곡과

보로딘의 교향곡 2번을

들어보라  "

- 바인가르트너. 지휘자이자 작곡가

 

이후 바쁜 삶속에서도 계속해서 작곡을 병행했던 그는 오페라<이고르 공>과 교향곡3번은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1887년 어느 무도회에서 심장발작으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20년 넘게 투자한 <이고르 공>의 경우는 결국 후배 작곡가들이 보완하여 완성시키기도 했지요.

이 곡은 1890년 초연된 이후로, 러시아 음악사상 손꼽는 명작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지요.

 

본업인 화학교수와 아내간병에 들어가는 시간 외에 일요일이나 건강이 나빠 쉴때에만 작곡을 하다보니 남겨진 작품의 수가 매우 적습니다.

 

보로딘의 집에는 늘 그를 좋아했던 친척들과 지인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차를 마시고 놀거나 파티를 열었다고 하는데, 너무 일이 많았던 보로딘은 어느날 자신의 집에서 열린 파티인줄도 깜박 잊고 겉옷을 챙겨 입으며 집에 가겠다고 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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