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거대한 '기술적 폭력', 우리는 왜 자발적 인질이 되는가

2026. 1. 18. 23:49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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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시간의 고문, 혹은 자발적 감금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지칩니다. 3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러닝타임은 관객에게 '영화 감상'이 아니라 '인내심 테스트'를 요구하죠. 방광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이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가 굳이 비싼 아이맥스 3D 티켓을 끊고 극장으로 들어 가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제임스 카메론이라는 노련한 사기꾼(?)이 파놓은 '시각적 함정'에 빠지기 위해서죠.

중년세대라면 소싯적 보셨던 그 3D 무협 영화들이 기억나실지도 모르겠네요. 관객 눈앞으로 칼날이 날아오고 바윗돌이 쏟아지면,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옆 사람과 민망한 눈 인사를 나누던 그 '촌스러운 쾌감' 말입니다. 사실 그때의 3D는 "나 3D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유치한 유혹이었죠.

하지만 카메론은 다릅니다. 그는 칼날을 우리 눈앞에 들이미는 대신, 우리를 아예 판도라 행성 한복판에 떨어뜨려 놓고 "자, 이제 여기서 살아봐"라고 속삭입니다. 훨씬 부드럽고 디테일한 입체감은 자극적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무섭습니다.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질 때 느껴지는 그 기괴한 몰입감, 그것이 <아바타 3>가 가진 가장 잔인한 무기니까요.

2. 시나리오는 거들 뿐, 본체는 그래픽이다

독설 좀 뱉어볼까요? <아바타 3>의 시나리오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파란 고양이 가족의 지겨운 생존 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가족은 보물이다", "자연을 지키자" 같은 도덕 교과서적인 메시지는 사실 억만장자 카메론 감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껌값 같은 서비스에 불과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스토리라인이 빈약하다는 평가는 이제 비판이 아니라 이 영화의 정체성입니다.

카메론은 이번 3편을 위해 실제로 '판도라 언어 사전'을 수천 단어로 확장했고, 등장하는 모든 동식물의 생태계 보고서를 수백 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했습니다. 정작 시나리오의 개연성을 챙길 시간에 나비족이 먹는 열매의 질감을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했다는 거죠.

이건 영화라기보다 거대한 '디지털 수족관'이나 '생태 전시관'에 가깝습니다. 관객이 스토리에 신경 쓰지 않게 만들 정도로 화면을 화려하게 칠해버리는 것, 그것이 카메론이 비평가들의 펜대를 꺾어버리는 방식입니다.

3. '천조국'의 위엄 앞에 기죽은 일개 관람객의 비애

많은 관객들이 느끼셨을 그 '기가 죽는 기분', 저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이건 단순히 한 감독의 예술적 성취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제국이 가진 자본과 기술의 총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K-콘텐츠'로 세계를 제패했다고 자부하며 어깨에 힘을 줄 때, 미국은 판도라라는 행성 하나를 통째로 창조해서 우리 코앞에 들이밉니다.

"이런 걸 너희가 만들 수 있겠어?"라고 비웃는 듯한 그 압도적인 스케일 앞에서 우리는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수천 조 원의 국방비를 쏟아붓는 미국의 군사력이 실제 전장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의 렌더링 팜(Rendering Farm) 안에서도 불을 뿜고 있는 셈이죠. 영화 속 메시지는 평화와 공존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 영화를 만드는 방식은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가장 파괴적인 '힘의 논리'를 따르고 있다는 이 아이러니. 약소국 관객으로서 우리는 그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며 감동하는 동시에,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을 체감하며 씁쓸한 뒷맛을 다시게 됩니다.

4. 우리가 몰랐던 비밀: 4편과 5편은 이미 '잉태'되었다

여기서 잘 알려지지 않은 정보를 하나 더 드리자면, 사실 카메론은 3편을 편집하면서 이미 4편의 초반부 촬영을 마친 상태입니다. 심지어 아역 배우들이 나이 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5편의 대본 작업까지 끝내놓았죠. 그에게 영화는 일회성 작품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완성해야 할 하나의 '제국'인 셈입니다.

특히 이번 3편에서 보여준 그 웅장한 사운드와 진일보한 HFR(High Frame Rate) 기술은 사실 4편에서 보여줄 '진짜 전쟁'을 위한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번에 보신 그 '불과 재'의 이미지는 시작일 뿐, 다음 시리즈에서는 판도라 전체가 화염에 휩싸이는 더 잔혹한 비주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메론은 관객을 감동시키려 하기보다, 기술로 관객을 '제압'하려 드는 감독입니다.

5. 총평: 압도당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결국 <아바타 3>는 영화라는 매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이정표인 동시에, 우리가 거대 자본의 기술력에 얼마나 쉽게 굴복하는지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스토리가 빈약하다고 욕하면서도, 아이맥스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광클을 하는 우리의 모습은 영화 속 RDA(인류)가 언옵테늄에 집착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습니다.

미국이라는 거대 제국의 힘에 조금 기가 죽을지 모르지만, 역설적으로 그 '압도되는 경험' 자체가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릅니다. 일상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야만적인 힘의 맛'을 안전한 극장 의자에 앉아 체험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3시간의 고문을 자처하는 진짜 이유일지 모르니까요.

한줄평: 시나리오는 8비트인데 그래픽은 8K, 이 지독한 불균형이 주는 쾌감에 무릎을 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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