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 잔혹한 광기 속에 피어난 서정적 엇박자, 《체인소맨: 레제 편》

2025. 12. 30. 09:40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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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처음 마주한 〈체인소맨〉 TV 시리즈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게 ‘불쾌한 골짜기’와 같았습니다. 난해한 세계관은 차치하더라도, 거칠고 이질적인 작화와 선을 넘나드는 고수위 노출, 그리고 비릿한 혈흔이 낭자한 폭력성은 성인용 콘텐츠에 익숙한 관객조차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죠. 가슴에서 튀어나온 줄로 체인소를 돌리는 주인공의 설정은 파격을 넘어 기괴함마저 느껴졌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시리즈를 넷플릭스에서 끝까지 완주한 이유는 명확한 매력 때문이라기보다, 끊임없이 뇌를 자극하는 연출의 ‘중독성’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극장판〈체인소맨: 레제 편〉을 관람하게 된 계기 역시 호감보다는 의구심에 가까웠습니다. “도대체 이 광기 어린 작품에 대중이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1. 실사의 질감을 담아낸 집요한 미장센

놀랍게도 극장판은 도입부부터 TV 시리즈와는 궤를 달리하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정제된 작화와 유려해진 액션입니다. 특히 배경으로 흘려보낼 법한 일상적인 장면에서도 인물의 미세한 근육 움직임이나 표정의 변화를 세밀하게 포착해낸 점이 경이로웠습니다.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 ‘실사 영화적 문법’에 가까운 제작진의 집요한 연출력은 작품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렸습니다.

2. 폭풍 전야의 고요, 로맨틱한 긴장감

이번 에피소드의 백미는 단연 레제와 덴지(체인소맨)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이었습니다. 무자비한 파괴와 광기가 몰아치는 세계관 속에서, 두 남녀가 주고받는 ‘밀당’은 관객에게 기분 좋은 숨 고르기를 선사합니다. 난장판 같은 전투보다 오히려 이들의 서정적인 긴장감이 더 강렬한 잔상을 남겼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 비극적인 세계관에서 보기 드문 온도의 마무리는 이 작품이 단순한 고어물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3. 압도적 스케일과 그 속에 가려진 서사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중반부 거대 악마와의 전투는 스케일 면에서는 압도적이었으나, 전개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한 번의 관람만으로는 그 인과관계를 완벽히 이해하기 벅찼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액션의 결은 TV 시리즈의 지저분함(?)을 벗어던지고 훨씬 깔끔해졌습니다. 단순히 TV판의 연장선에 머물렀던 여타 극장판(예를 들어 〈귀멸의 칼날〉 등)과 비교했을 때, 영화라는 매체에 최적화된 차별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총평: 불호(不好)의 장벽을 허무는 연출의 힘

여전히 체인소맨이라는 캐릭터의 불사신 같은 능력치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묘사들이 서사의 몰입을 방해하는 지점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폭력과 광기가 잠시 멈춘 순간, 이 작품이 보여주는 탐미적 연출은 만화적 표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극장을 나오며 든 생각은 의외였습니다. “이 작품을 VOD로 다시 한번 천천히 곱씹어보고 싶다”는 것이었죠.〈체인소맨: 레제 편〉은 호불호가 극명히 갈릴지언정, 왜 사람들이 이 기괴한 세계관에 매료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제작진이 내놓은 가장 우아하고 강력한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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