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일드 백만번 말할걸 그랬어

2026. 1. 2. 13:07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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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닿지 못한 목소리의 잔향 ― 드라마 〈백만 번 말할 걸 그랬어〉가 남긴 것

최근 대중문화의 흐름이 자극과 속도에 매몰될수록, 역설적으로 우리는 담백한 일상의 결을 찾게 됩니다. 화려한 미장센이나 숨 가쁜 전개 대신, 조금은 느릿하더라도 인물의 숨소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일본 드라마 특유의 정서가 때론 친근한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백만 번 말할 걸 그랬어>는 화려한 성찬은 아니지만, 한 번쯤 마음 한구석을 내어줄 만한 '기다림의 이야기'였습니다.

익숙한 변주,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기시감

이 작품의 뼈대는 사실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남자, 영혼이 된 그를 유일하게 보는 형사, 그리고 남겨진 연인. 이 삼각 구도는 90년대 멜로의 고전인 영화〈사랑과 영혼>의 향수를 강하게 불러일으킵니다. '죽은 자와의 교감'이라는 판타지적 설정과 '살인 사건의 진실'이라는 미스터리 구조는 장르물로서 안전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독창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양날의 검이 됩니다.

초반부, 갑작스러운 이별이 주는 충격과 영혼의 존재가 드러나는 과정은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며 극은 익숙한 서사의 관성에 몸을 맡깁니다. 전개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되면서 긴장감의 밀도는 서서히 낮아지고, 시청자는 서스펜스의 쾌감보다는 인물의 감정선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게 됩니다.

 

 

감정의 과잉과 연출의 성긴 틈새

가장 아쉬운 지점은 감정을 다루는 '방식'에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시청자가 인물의 슬픔에 충분히 젖어 들기도 전에, 애절한 음악과 직접적인 대사로 감동을 '지시'하곤 합니다. 배우들의 눈빛이 쌓아 올린 섬세한 기류를 과한 연출이 앞질러 가버리는 형국입니다. 감정은 여백 속에서 피어날 때 가장 아름다운 법인데, 때로는 지나치게 친절한 설명이 몰입의 방해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기술적인 완성도 역시 못내 아쉬움을 남깁니다.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사를 지탱해야 할 긴박감은 다소 느슨합니다. 특히 극의 현실감을 뒷받침해야 할 CG와 일부 어설픈 연출은 극의 몰입도를 깨뜨리는 아킬레스건이 됩니다. 최근 장르물에서 눈부신 성취를 거둔 한국 드라마들의 연출력과 비교한다면, 기술적 투박함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를 붙잡는 '배우의 눈빛'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끝까지 보게 만드는 동력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옵니다. 서사의 빈틈을 메우는 것은 정교한 플롯이 아니라, 세 주인공이 서로를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입니다. 사건의 개연성을 따지기보다 인물들의 관계성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 그것은 전적으로 배우들의 호연에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극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매력이 서사를 견인한다"는 표현이 이보다 적절할 수 없을 것입니다.

특히 효율과 계산이 앞서는 시대에, 이토록 무모할 정도로 투명하고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지켜보는 일은 기묘한 위안을 줍니다. 비록 그것이 드라마적 판타지일지라도, 타인을 위해 흘리는 눈물과 끝내 전하지 못한 진심이 주는 먹먹함은 우리의 메마른 '연애 세포'를 조심스럽게 일깨웁니다.

 

 

맺음말: 늦게 도착한 후회들의 자리

<백만 번 말할 걸 그랬어〉는 완벽한 걸작이라 칭하기엔 분명한 허점이 존재하는 작품입니다. 장르적 쾌감은 얕고, 연출의 세련미는 부족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제목 그 자체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합니다.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 말하지 못해 마음 속에 고여버린 고백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한 '백만 번의 말'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드라마가 남긴 아련한 잔상은 꽤 오래도록 가슴에 머뭅니다. 세련된 킬링타임 그 이상의 무언가를 원했던 이들에게, 이 작품은 늦게 도착한 편지처럼 조용한 울림을 전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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