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1. 15:38ㆍ끄적끄적

나만 빼고 모두가 웃고 있었다.
교실 뒷문이 잠기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했다. 1교시 시작 전, 선생들이 교무실에 모여 회의를 하는 그 찰나의 10분. 내게는 그 시간이 하루 중 가장 긴 영겁의 시간이었다.
"야, 김민수. 오늘도 출석 체크해야지?"
박진호가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녀석의 손 등에 새겨진 흉터가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뒤에서는 녀석의 패거리들이 낄낄거리며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익숙한 풍경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이겠지만, 내게는 매일 반복되는 학교폭력의 현장이었다.
"표정 풀어라? 분위기 다 망치네."
진호의 손바닥이 내 뺨을 툭툭 쳤다. 아프진 않았다. 하지만 수치심은 칼날처럼 가슴을 후벼팠다. 이 지독한 집단따돌림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바닥의 먼지 개수를 세는 것뿐이었다.
"진호야, 오늘은 좀 살살 해. 얘 어제 울더라."
"울었어? 야, 민수야. 우리가 친구니까 놀아주는 거지. 안 그래?"
친구. 그 단어가 진호의 입바닥을 구를 때마다 역겨움이 치밀었다. 주변의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못 본 척 책장을 넘겼다. 방관자들. 그들 또한 가해자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야, 이거 봐. 얘 떨고 있다."
진호가 내 주머니에서 낡은 스마트폰을 가로챘다.
"이거 뭐야? 아직도 이런 걸 써? 하긴, 너희 집 형편에 이게 어디냐."
패거리들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진호는 내 폰을 바닥에 던지고 발로 짓밟으려 했다. 그때였다. 내가 처음으로 녀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 것은.
"그거, 건드리지 마."
교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다. 진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뭐라고 했냐, 지금?"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내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했다.
지난 6개월간 매일 밤마다 시뮬레이션했던 순간이었으니까. 진호의 얼굴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녀석이 주먹을 치켜드는 순간, 나는 품 안에서 접혀있던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거, 네가 어제 보낸 메시지들 다 뽑아둔 거야. 그리고..."
나는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을 주워 올렸다. 액정은 깨졌지만, 상단바에는 붉은색 '녹화 중' 표시가 깜빡이고 있었다.
"너희가 아까 내뱉은 말들, 지금 이 방 전체에 깔린 내 태블릿이랑 연동돼서 클라우드로 바로 올라갔어. 지워도 소용없어."
진호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패거리들도 당황한 듯 서로 눈치를 보았다.
"야, 이 새끼가... 너 미쳤어?"
"미친 건 너희지. 이게 단순한 장난인 줄 알았어? 법적으로는 집단폭력이고, 특수협박이야. 내가 너희 생기부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네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에 이 영상들이 퍼지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봤어?"
나는 한 걸음 다가갔다. 진호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제 먹잇감과 포식자의 위치가 바뀌었다.
"너희는 내가 죽기를 바랐겠지. 그래야 이 게임이 끝날 테니까. 그런데 어쩌나? 난 죽을 생각이 전혀 없거든."
나는 녀석의 귓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이제부터 진짜 게임 시작이야. 내가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돌려줄게. 기대해."
교실 문이 열렸다. 선생이 들어왔고, 아이들은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평소와 다름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가 달라져 있었다.
진호의 등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나는 생전 처음으로 교탁 너머 창밖의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내 가슴속에 새겨진 흉터들이 비로소 아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고통은 내 것이 아니라 너희의 몫이다.
"수업 시작하자."
나는 펜을 잡았다. 오늘따라 글씨가 아주 선명하게 써질 것 같았다.
[작가 후기]
가장 무서운 복수는 폭력이 아니라, 가해자가 쌓아 올린 가짜 평화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민수의 본격적인 '반격'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이 통쾌한 복수극의 다음 단계가 궁금하시다면, 여러분의 응원을 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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