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7. 12:37ㆍ끄적끄적

1. 한 박자 늦은 호흡
나는 우리 집 안에서 늘 한 박자 늦은 사람이었다.
형이 숨을 내쉬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숨을 들이쉬었고, 형이 숟가락을 들어야 비로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내 말은 늘 형의 침묵 끝자락에 겨우 얹혀 나왔으며, 그마저도 말이 필요할 때는 거의 없었다. 눈치가 모든 언어를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형은 다혈질이었다. 그의 분노는 숨겨지지 않았고,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는 집 안의 기압(氣壓)이었다. 나는 그 거대한 기압에 눌려 자랐다. 돌 아래 깔린 풀처럼, 자라기는 했지만 햇빛을 향해 방향을 선택할 자유는 없었다. 나는 형이라는 기압에 적응해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물체 같았다. 유동적이고, 투명하게.
가난은 단순히 밥그릇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늘 참고 버텨야 하는 '똥구멍에 피가 날 것 같은' 고통의 연장이었다.
생부는 나를 호적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실은 단 한 번도 나에게 설명된 적 없으나, 너무나 분명해서 오히려 설명이 필요 없었다. 나는 그의 집에도, 그의 호적에도 없었고, 그의 시선에도 없었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치면,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쳤다. 그가 먼저 시선을 피할 때, 나는 그것이 내가 받은 유일한 인정임을 깨달았다. 나는 그에게 지워버려야 할 흔적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하루는 생존 그 자체에 급급했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다만, 그 사랑이 팍팍한 생활을 대신해주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삶은 늘 빠듯했고, 나는 그 빠듯함의 틈새에 끼어들어 숨 쉬는 존재였다. 아프다고 말해도, 배가 고프다고 말해도, 어머니의 대답은 늘 같았다.
"조금만 참아라. 곧 나아질 거다."
나는 아주 일찍, 그리고 아주 철저하게 나만의 생존법을 배웠다. 그건 ' 참고, 기다리고, 스스로를 지우는 것'이었다.
2. 형의 기분, 나의 식사
형은 매몰찼다. 의도적으로 나를 괴롭히기보다는, 나를 형제라고 여기지 않는 듯했다.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있어도, 우리는 서로 다른 식사를 하고 있었다. 형은 내 쪽을 보지 않았고, 나는 오로지 형의 기분만을 읽으며 식사를 했다. 형이 조용한 날은 하늘이 맑은 좋은 날이었고, 형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커지는 날은 내가 발소리까지 죽여야 하는 날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네 아이들이 나를 불러 세웠다. 그들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확인 사살을 원했다.
“야, 너 누구 아들이냐? 네 형이랑 성이 다르다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정확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있을 때였다. 형이 불쑥 튀어나왔다.
“괜히 나서지 마라. 네가 나대봐야 너만 다쳐.”
그 목소리에는 위로도, 연민도, 걱정도 없었다. 그것은 경고였고, 동시에 생존 지침이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나서지 않는 것'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규칙이 되었다.
학교에서도 힘든 생활은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이 가족 이야기를 시킬 때면, 나는 책상 밑에서 손을 꽉 쥐었다.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면 숨을 죽여 몸을 웅크렸다. 친구들이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할 때, 나는 연필을 일부러 부러뜨렸다. 이유 없이 부러진 연필에 대해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런 관심을 보여주는 사람도 없었다. 내겐 그게 다행이었다.
집에서도 나의 자리는 늘 유동적이었다. 방은 하나였고, 당연하게 형이 먼저 그 방을 차지했다. 나는 거실 구석이나 마루 끝에서 잤다. 겨울이면 발이 시려 잠을 설쳤고, 여름이면 모기들이 나를 제일 좋아했다. 그러나 불평하지 않았다. 불평은 형의 몫이었고, 나는 그 불평을 들으며 사는 쪽이었다. 나는 가장자리의 존재였다.

3. 군복과 술, 그리고 투명한 존재
한 번은 형이 술에 취해 들어왔다. 군복을 입고 있었다. 술 냄새와 함께, 그의 내면에 갇혀 있던 알 수 없는 분노가 집 안에 폭풍처럼 퍼졌다. 형은 어머니에게 소리를 질렀고, 벽을 쳤다. 나는 그 광경을 방문 뒤에 서서 숨소리마저 삼키며 지켜보았다. 형이 토해내는 말들은, 그가 겪었던 시대의 억울함과 친척들의 배신이었다.
그날 밤, 형은 나를 보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봤다해도 술에 취한 형의 눈에 나는 투명한 존재였을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데 익숙했고, 그 투명함 속에서 안전을 찾았다.
하지만 가끔, 아주 드물게 형이 나를 쳐다볼 때가 있었다. 그 눈빛에는 미움도, 단순한 연민도 아닌, 무언가 해소되지 않은 감정의 덩어리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것이 나라는 개인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 시선은 과거를 향한 것이었고, 나는 단지 그 과거의 잔해 앞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법을 완벽하게 익혔다. 말수를 줄이고, 발소리를 죽이고, 웃음을 삼켰다. 그렇게 하면 형의 분노를 사지 않았고, 집 밖으로 쫓겨나지 않았으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 집안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곧 내가 살아남는 일이었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가 늙어가면서, 나는 집 안에서 더욱 투명해졌다. 형은 여전히 형이었고, 나는 여전히 나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그래도 너는 참 착하다.”
그 말이 칭찬인지, 단순한 위로인지, 혹은 무력한 체념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말 속에 '강해지지 못했다' 혹은 '스스로를 주장할 수 없다'는 나약함의 뜻이 숨어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철이 들면서 나는 점점 집을 떠나기 시작했다. 극적으로 떠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 날부터 집에 덜 들어오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집 밖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형은 내가 떠나는 것을 묻지 않았고, 어머니도 오래 묻지 않았다. 떠나는 것을 묻지 않았듯이, 돌아오는 것 또한 묻지 않았다. 난 투명인간이었으니까. 묻지 않는 것이 이 집안의 방식이었으니까.
4. 그림자 속의 강인함
지금도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다. 먼저 말하지 않고, 먼저 요구하지 않는다. 다혈질이거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 옆에서는 몸이 자동으로 굳는다. 아직도 순간적인 눈치를 본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 눈치와 침묵은 내가 가장 험난했던 시대와 가정환경에서 살아남은 방식이며, 내 무의식의 갑옷이다.
나는 형처럼 강한 권위를 쟁취하지 못했다. 대신 부서지지 않는 법, 즉 휘어지되 꺾이지 않는 유연한 강인함을 배웠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이제는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다.
내 자리는 늘 가장자리에 있었지만, 그 그림자 속에서도 사람은 숨을 쉬고,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자랐다. 결핍과 침묵을 연료 삼아.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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