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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간들. 최지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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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례출판사. 예스 24>

 

     43년을 함께 살았던 배우자가 죽었을 때, 남겨진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정상일까? 당연히,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실감의 무게는 당사자들에겐 일상적인 것에서 많이 벗어난것임에는 틀림없다.

이 책은 둘째 딸의 시각에서 바라본 엄마의 장례와 그 후의 일들을 일기 형식으로 담담히 묘사한 책이다. 아니, 담담한 척 한 것일뿐 매우 격정적인 얘기인지도 모른다. 제 19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가족구성원의 상실이 발생했을때, 평범한 가정내에서 이와 관련된 현실적인 문제들이 공감할 만한 소재로써 소설을 채우고 있다. 읽는 동안 가슴이 뻐근해질 때가 많았다. 때론 고통스러웠다. 인간에게 있어 죽음이라는 상실은 결코 녹녹한 주제가 아니다.

 

 

     관혼상제의 유교 전통의식 중 아직도 전 국민적으로 중시되고 유지되는 풍습은 혼례와 상례이지만, 그 형식은 빠른 시대변화만큼 많이 변했다. 형식은 변했을지라도 얼굴도장이라도 찍지 않으면 의절할 각오를 해야 하는 점에서는 불변의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임에는 틀림없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는 시대이다 보니 장례식장에서 대성통곡하는 경우가 많이 줄었음에도, 죽음이라는 껄끄러운 명제 앞에서 몸이 쭈뼛거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  이 작품은 초고령사회에 접어드는 한국이 머지않은 시간 내에 맞이하게 될 여러 문제들에 대해서 가감 없이 민낯을 드러내 보인다.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해 내야하는 난제들도 제법 많다.

갈수록 살벌해지는 신자유주의 한국사회에서 핏줄만큼 끈끈한 관계가 어디 있겠는가? 망자가 천수를 누려 호상을 치렀다 한들, 가족을 잃는 슬픔은 결코 작아 질 수 없다. 하지만, 핏줄이라 해도 가족들 각자의 입장에서 장례를 겪게 되는 감정선은 제각각 다를 것이고 장례이후의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작가가 작가의 아빠와 자매들과 얘기하는 것을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충분히 공감되기도 하지만, 과도기적인 가치관을 지닌 세대로서 받아들이기 힘든 면도 있었다. 이 또한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문제이다.

 

 

     두 번의 가족상례를 치렀는데 부조로써 집에서 치룬 첫 번째와 달리, 장례식장에서 치러졌던 두 번째 상례에서는 일정부분 정례화 된 부분 덕인지 상주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었다. 대신 스스로 전문 인력이라 자처하는 분들에게 상당한 양의 돈이 지급되어져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의 바가지요금을 뒷담화로 욕했지만, 그 누구도 그들에게 따져 묻지 않았다. 망자 가시는 길에 돈을 따져 묻는 건 심한 결례로 생각하는 탓이었고, 그 점을 악용한 업주의 탐욕이 빚어낸 일이었다. 오래전 일이었고, 지금은 자세히 모르지만 어느 정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정착된 걸로 안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장례절차란 가신 분의 추도뿐만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의 사회적 평판을 중간 평가하는 행사 같은 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작가의 말처럼 "시대변화에 맞춰 장례는 좀 더 간소화해질 필요가 있다."

 

     지난달에만 여섯 번 장례식장을 들러야 했다. 조문객들과 상조화환의 수가 극과 극이었다. 어떤 장례식장은 단촐했던 반면, 어떤 장례식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대개 후손들의 사회적 성공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듯 했다. 복도에 두 줄로 길게 늘어선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보낸 화환들에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글귀가 마치 한군데 인쇄소에서 찍어낸 것처럼 똑 같은 글씨체로 박혀 있었다.

상조화환들의 숲속을 지나오면서 남겨진 사람들이 겪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또한 언젠가는 내가 치러야 할 일들임을 생각하며 심란해졌지만, 운전하며 돌아오는 길 중 어느 샌가 일상의 기분으로 돌아와 있었다. 마치 내게는 그런 일이 안 일어날 것 처럼.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한다. 지금은 오래 되어서 장례 전후의 기억이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이렇게도 세세하게 느끼고 생각한다는 게 작가여서 가능한 일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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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일기를 쓰듯 담담하고 솔직하게 묘사했다. 언젠가부터 우리 삶에서 격리시켜 금기어로 만들어버린 죽음에 대해 장례라는 형식을 통해 접근하여 쏟아내는 작가의 말들이 뇌리에 깊숙이 자리 잡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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