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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삼국유사. 일연 저/고은수 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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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풀빛. 예스24>. 2016년 출간

우리 역사로 되살아난 신화와 전설.

과거의 일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은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도 있듯이, 어떤 식으로든 기록하는 사람의 생각과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 보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다양한 소통 수단이 발달되어 있지 않고 기록으로 남겨진 역사적 사료도 충분치 않았던 시대에 대한 역사를 기술하는 거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진출한 지 수 십년이 지난 지금, <삼국유사>하면 <삼국사기>와 비교하던 점들과 일연 스님이 썼다는 점 외에 기억나는 게 별로 없었다. 8년째 도서관을 드나들며 독서마라톤을 이어가고 있는 점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여기던 나는, 문득 이 책을 접하며 너무 편향된 독서를 해왔던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간 대출해서 읽었던 책들 목록을 쭉 훑어보니 역사관련 책이 단 한권도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북 부여로부터 뛰쳐나와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역사를 당시만 해도 풋풋했던 두 배우 송일국과 한혜진이 연기한 드라마<주몽>으로 배웠으니, 시청률에 목매는 드라마의 속성상 얼마나 왜곡시켜 알게 되었을까 싶다. 고증을 통해 최대한 그 시대의 모습으로 재현한다 해도 시청자를 사로잡아야 하는 드라마이기에 자극적이고 임팩트 있는 요소를 배치할 것이고, 시청자들은 화면에 보이는 것을 은연중에 믿게 되는 점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출처 : unsplash.com/@giamboscaro>

학창시절, 개인 취향이야 각양각색이어서 역사과목을 좋아해 연도까지 줄줄 외우던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게 역사 과목이란 시험에 나올 만한 것들만 주구장창 외워야 하는 지겨웠던 기억밖엔 없다. 의미도 모른 채 나열되는 복잡한 제도의 명칭들과 사건들... 역사과목에 대한 이런 인식이 나도 모르게 역사에 관한 책들에 등 돌리게 했던 무의식의 발로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삼국유사> 이 책은 역사에 대한 내 고정관념을 싹 씻게 해주는 책이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젊었을 때는 코웃음 쳤을 황당무계하게 들리는 신화들까지 참 소박한 상상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자들이 인간세계에서 연을 맺어 보통의 혈통이 아닌 건국시조가 태어났음을 강조하고 싶었을 터인데, 그 정도가 그리스나 북유럽 신화에 비하면 참 아기자기 하다. 그래서 더 정감 있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삼국유사>란 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읽고 생각나는 대로 또 읽었을 텐데...시청률 대박 난 재미있는 드라마처럼 틈만 생기면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삼국유사>  1권에 실려 있는, 웅녀가 오랜 인고의 시간 끝에 사람이 된다는 단군신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건국신화이다. 지금 세대의 이성적 시각에서 보자면 참 우스운 얘기겠지만, 세계 어느 나라의 건국신화치고 현실성 있는 얘기는 별로 없는 걸로 안다. 원시 시대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들에, 살에 살을 붙여 상상의 날개를 펼쳤을 테니까 말이다.

                                               <출처 : unsplash.com/@tannermardis>

문득, 불자이셨던 일연선사께서는왜 삼국유사를 집필하려는 생각을 하셨을까?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80 평생을 부처님의 말씀을 대중들에게 설파하시고 수차례 왕들의 부름에 응하시어 국사를 도우셨던 그 바쁘셨을 와중에 말이다.

<삼국유사>는 선사께서 고려 충렬왕 때 신라, 고구려, 백제 3국의 유사를 모아서 지은 5 2책으로 구성된 역사서로, 1999 11월에 부산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학창 시절 달달 외운 바대로 인종의 명에 따라 김부식이 주도하여 편찬한 <삼국사기> 11인의 사관들에 의해 쓰여 진 정제된 문장의 정사(正史)였다면, <삼국유사>는 일연선사 혼자서 쓰신 이른바 야사(野史)위주의 책이다. <삼국사기>의 편찬은 고려의 문벌 귀족문화가 절정에 달했을 12세기 전반에 거란을 격퇴한 뒤의 국가적 자신감과 계속되는 주변 국가들의 위협에 대응해 강렬한 민족의식을 고취하려는 정치성을 띤 이벤트라고 보여 진다. 게다가, <삼국사기> 편찬 당시 고려사회는 귀족 들 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어서, 분열과 갈등이 국가멸망의 원인이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주기 위해 편찬한 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9 11월 공개된 <친일인명사전>처럼 후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한 목적으로 말이다.

<친일인명사전> 제작을 두고 형평성 문제 뿐 아니라 당시 사정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등 많은 논란이 있었고, 후손들까지 영향을 받는 민감한 사안이었던 만큼 인물선정 과정에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삼국사기> 또한 전문을 읽어 보지 않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유사한 문제점들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이 된다. 또한 이런 책은 같은 부류의 책들이 대개 그렇듯이 참 뻑뻑하고 무미건조할 것이다. 전공자이거나 지대한 관심의 소유자가 아니면 통독하기 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출처 : unsplash.com/@cbouji>

<삼국유사>의 편찬 연도를 1281년에서 1283년 사이로 추정하는 것이 학계 통설이라고 하니, 백 년도 훨씬 전에 쓰여 진 50권의 <삼국사기>를 일연선사께서 읽어 보지 않았을 리 없다. 일연선사가 <삼국사기>를 읽으시고 나서, 신조어인 낄끼빠빠가 제대로 안되어 있고(의역하자면, 들어갈 내용은 빠지고 쓸데없는 것들이 들어간) 불교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지 않은 점을 몹시 안타까워하시고 당신만의 역사책을 기술하시지 않았을까 싶다. 삼국은 불교라는 호국신앙을 바탕으로 부처와 국왕을 동일시 해 왕권 강화를 했었다. 불교가 대중들에게 확산되는 것도 적극적으로 지원했었다. 이런 실정인데도, <삼국사기>가 불교를 제대로 다루지 않은 점은 위대했던 고승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삼국유사>의 후반부인 3~5권은 불교 신앙과 관련된 내용이 주가 된다.

비록 문체나 문장이 사관들의 것만 못 할지라도, 일연선사의 삼국유사는 <삼국사기>가 담을 수 없었던 많은 역사 자료를 담고 있어 아주 소중한 보물이라는 평가이다. <삼국사기>를 집필한 사관들이 유교의 사대주의 사상으로 누락시켰던 많은 전설과 신화들을 <삼국유사>에서는 집대성하여 수록했으니 설화문학서이기도 하며, 한국 고대의 정치, 사회, 문화와 관련된 일화들을 수록한 독특한 개성을 지닌 책이라 할 만하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14수의 신라 향가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고대 문학사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 한다.

                                             <출처 : unsplash.com/@alifouahegazy>

그런 연유인지,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사람이었던 문인이자 사학자인 최남선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중 하나를 고르라면 삼국유사를 택하겠다고 했다 한다.

영국의 역사학자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윈스턴 처칠의 명언과 함께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각인시켜주는 촌철살인의 말이다.

우리민족은 과연 끊임없이 과거역사를 되돌아보고 성찰하여 미래를 위한 기틀을 다져왔던가? 역사적으로 돌아보면 한민족만큼 생명력 강하고 출중한 민족도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흠결이 있다면, 너무 대내적으로만 그 역량을 발휘했을 뿐 드넓은 세계로 뻗어나가려는 시도가 적었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패망했던 일본이 한국전쟁이라는 천운에 기대어 기사회생한 것과는 달리, 우리민족은 말 그대로 폐허 속에서 맨 주먹으로 일어선 강인한 혈통의 사람들 아닌가.

근 현대에 들어서도 몇 몇 흠 잡을 만한 오류의 역사가 있지만, 오늘날의 한국은 세계 속에 우뚝 선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역사의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아 어리석은 과거사는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고 훌륭했던 선조들의 발자취는 계승 발전하여 더 나은 미래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게 오늘날 우리들의 할 일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연선사가 <삼국유사>를 집필하시면서 희망하고 염원하셨던 일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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