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23. 11:33ㆍ시사 관련

1. 화려한 외벽 뒤로 무너지는 '피크 코리아'의 역설
우리는 지금껏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고점에 서 있습니다. 전 세계가 K-팝과 K-푸드에 열광하고, 반도체와 자동차가 세계 시장을 호령하며, 한때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거듭난 유일한 국가. 강준만 교수가 강추한 책 '피크 코리아(Peak Korea)'는 바로 이 찬란한 절정의 순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강 교수의 시선은 화려한 외벽이 아니라, 그 기초 아래에서 발생 중인 치명적인 균열을 향합니다. 절정에 도달했다는 말은 곧 내려갈 길만 남았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초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소멸,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지방의 고사, 그리고 유례없는 양극화. 대한민국이라는 배는 엔진은 뜨겁게 돌아가고 있지만, 선체 곳곳에 물이 차오르고 있는 형국입니다. 문제는 이 위기를 해결해야 할 '정치'라는 관제탑이 완전히 고장 났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2. 증오를 먹고 사는 이들, '정치군수업자'의 등장
왜 정치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까요? 강준만 교수는 그 원인으로 '정치군수업자(政治軍需業者)'라는 서늘한 단어를 제시합니다. 과거의 정치가 '타협의 기술'이었다면, 지금의 정치는 상대를 섬멸해야 할 적군으로 상정하는 '내전'으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터에서 막대한 부와 권력을 챙기는 이들이 바로 정치군수업자들입니다.
이들은 정치를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갈등 비즈니스'의 장으로 변모시켰습니다.
- 극단적 유튜버들은 자극적인 썸네일과 가짜 뉴스로 지지자들의 분노를 유발하며 후원금과 조회수를 챙깁니다.
- 팬덤 정치에 기생하는 정치인들은 합리적인 정책 대결 대신 상대 진영에 대한 '사이다 발언'을 쏟아내며 공천권과 당권을 거머챘습니다.
- 진영 논리에 매몰된 논객들은 이 싸움에 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공고히 합니다.
군수업자에게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는 '평화'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무기를 팔 곳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정치군수업자들에게 '협치'나 '사회적 합의'는 곧 실업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끊임없이 혐오의 언어를 생산하고, 상대 진영을 악마화하는 이유는 국가의 미래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3. '팬크라시'가 무너뜨린 민주주의의 기초
이러한 정치군수업자들이 활개 치는 배경에는 '팬크라시(Fancracy)'가 있습니다. 팬덤(Fandom)과 민주주의(Democracy)의 합성어인 이 용어는, 이성적인 시민이 아닌 맹목적인 팬들이 정치를 주도하는 현상을 꼬집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은 무조건 선(善)이고, 상대는 무조건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정치군수업자들이 활동하기 가장 좋은 토양입니다.
이제 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누구를 죽일 것인가'에만 몰두합니다. 연금 개혁, 노동 개혁, 지방 소멸 대응 같은 해묵은 난제들은 토론 테이블 위에 오르기도 전에 진영 논리의 불길 속에서 재가 되어버립니다. 국민은 정치군수업자들이 정교하게 설계한 '증오의 극장'에서 관객이자 자발적인 보급병이 되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4. 내리막길의 시작, 우리는 멈출 수 있는가
<피크 코리아>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이 증오의 연쇄 고리를 끊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절정'에서 '추락'으로 직행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강 교수는 그 해법 중 하나로 '지방 분권'과 '승자 독식 구조의 타파'를 주장해 왔습니다. 모든 자원과 권력이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중앙 정치권에 쏠려 있는 한, 이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군수업자들이 공급하는 '증오라는 독약'을 거부해야 합니다. 정치적 반대자를 '틀린 적'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동료'로 인식하는 평범한 상식의 회복이 절실합니다. 우리가 유튜브의 자극적인 확증 편향에 열광하고, 정치인의 혐오 발언에 박수를 보내는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유통기한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관객이 극장을 떠날 때 전쟁은 끝난다
결국 전쟁을 끝내는 힘은 군수업자가 아니라 관객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증오의 비즈니스에 지갑을 닫고, 갈등을 부추기는 목소리에 등을 돌릴 때, 정치군수업자들은 설 자리를 잃을 것입니다.
'피크 코리아'의 찬란한 풍경이 훗날 "그때가 좋았지"라는 공허한 회상으로 남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정치를 '전쟁'에서 '삶의 현장'으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정치가 우리를 갈라치기 할 때, 우리는 오히려 서로의 손을 잡고 이 내리막길의 경사를 완만하게 만들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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