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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이야기

죽음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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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Death)이란 무엇일까요?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용어이지요.  '우리들 모두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장 궁극적인 답인지도 모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와 철학, 그리고 온갖 지식의 시작점이 죽음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지요.

일반인들은 상상도 하기 어려울만큼 과학적 지식들이 극대화되어 있는 현재는, 분초를 다투어 세계 각국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생명과학 정보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은 아직도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지요.

 

물론 죽음의 가시적인 모습은 어떤 방식으로든 한번 쯤은 목도했기에, 모두 죽음에 대해서는 나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 겁니다. 대부분 불행하고 가슴아픈 그런 것으로 말이죠.

살아서 용솟음치는 생명들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정 반대의 이미지들일 겁니다.

@leorivas/unsplash

 

사실 죽음 뒤에 무엇이 따라오는지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는 데, 죽음의 가시적인 현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본능이 마치 죽음 뒤에는 무언가 좋지 못한 일들이 있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인지, 세계각국에서는 죽음 뒤에 있을법 한 무언가에 대한 온갖 설화와 가설들이 중구난방으로 널려 있지요. 종교나 철학 세계에서도 마찬가지구요.

각설하고, 죽음의 세계란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영역 혹은 차원의 문제이기때문에 그 본체를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죽음이 관련되어 있지 않다면 이렇게까지 불안에 떨지는 않을 겁니다.

최근들어 그간의 누적된 경험치들이 있어 건강한 젊은이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되더라도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일부 젊은 세대들에게서 그닥 코로나19를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말을 많이 듣습니다.  공동체에로의 전파위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지, 코로나19에 대한 두려움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렇듯,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해 갈수록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는 점점 줄어듭니다.

아마 우리들이 그렇게나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결국은 죽음이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의 사전적 정의인 '생물의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에 대해 다시 들여다 보시죠.

또 다시 '정의해야 할' 단어들이 있네요... 생물 생명...

생물은 비생물에 반대되는 말로 생장, 생식, 진화 자극반응성을 갖는 것이라 정의되어 있습니다.

요즘처럼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과거시대의 철학자들에게, 생물과 비생물(=무생물)의 구분은 오히려 칼로 자르듯 그 경계가 분명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생물이라 칭하고, 바위처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오랜 세월을 지나도 변치 않을 것들은 무생물로 정의하면 그만이었을 테니까요.

 

그리하여, 생물과 무생물을 가르는 척도로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간단한 개념을 내 세웠을거구요.

이런 가르침에 대해 어느 누구도 더 깊이 따져 물을 필요가 없었겠지요.  마치 흰색과 검은색을 두고 고민할 필요가 없듯이 말이죠...

@palk/unsplash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과학기술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어 발전해 있습니다.

흰색과 검은색 사이의 그 광활하게 넓은 스펙트럼 속의 모든 회색들이 끊임없이 발견되면서, 더 이상 칼로 무 자르듯 흰색과 검은색의 경계를 설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읍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역병이 돌아 사람들이 죽어나갈 때, '천벌을 받았다'거나 '하느님이 노했다'는 말로 설명하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죠.

 

전자현미경으로 수 천배 확대해야 겨우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초 미립생명체가 사람 몸으로 파고들어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온다는 것을 밝혀내는 시대를 살고 있지요.  온갖 매스컴을 통해 그 실체를 직접 보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실제로 어느 누구도 본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오직 기계를 통해 이미지화 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딘가에 누군가에게 있을 지 몰라 마스크를 통해 우리 몸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틀어막고 있지요.  보이지 않으니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비록 교과서적인 정의일지라도 이런 미생물은 생명현상을 수행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밤나무는 밤이 열리는 나무이고, 밤은 밤나무에서 나오는 열매이다.

틀림없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터무니 없이 엉터리같은 정의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정의해온 생물, 생명, 죽음들의 개념 또한 일정 부분 이런 혼돈의 개념을 되풀이하고 있d었는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그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robbie36/unsplash

 

이런 한계점을 안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생물 살아 숨을 쉬고, 영양분을 섭취하며, 자손을 퍼뜨리는 생명체입니다.

과학계에서 생물을 크게 나누어 단세포생물 다세포생물로 구분하고 있지요.

개인과 단체가 그 생존방식이 다르듯, 단세포생물과 다세포생물은 그 살아가는 모습이 현저히 다릅니다.

단세포생물은 복제활동을 통해 말 그대로 무한 증식을 합니다.  복제라는 생명활동은 그 실체가 100%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일반인들이 평생을 투자해 공부해도 다 알 수 없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정보들이 쌓여 있습니다.  그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지요.

그래서 약간의 오류를 감안하고 단순화시키자면, 붕어빵기계로 찍어내듯 자신의 복사본을 만들어 내는 생명활동이 복제입니다.

이 복제과정의 한 가운데 DNA, RNA 라는 구조물이 있고 그들을 도와주는 수 없이 많은 효소라는 단백질이 있습니다. 이 단백질들은 DNA, RNA 로 이루어진 유전정보에 의해 생산되는 아미노산들이 이리저리 조합되어 만들어지고,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들이 또 다시 DNA, RNA 를 도와 여러가지 단백질들을 만들어냅니다.

닭이 계란을 낳고,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와 닭이 되는 과정이 반복되는 거지요.

 

@nci/unsplash

 

그리하여, 1개의 세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확히 똑 같은 2개의 세포로 복제되지요.

이 2개의 세포는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 복제하여 4개의 세포가 되구요...

실제로, 단세포인 세균(박테리아) 한 마리가 환경 요건만 주어지면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1억마리를 훌쩍 넘는 수로 복제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가공할 만한 생명력이지요...

이런 개념으로 단세포를 생각해보면, '불로장생'이란 인간의 소망을 이미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단세포들은 무슨 이유에서였든지 서로 연합하기 시작합니다.  아마 단세포 단독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환경적 요인을 극복하기 위함이지 않았을까요? 지극히 인간적인 발상이기는 합니다만...

그리하여, 다세포 생물들은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갖은 종류의 동식물로써 진화를 해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과학계에서는, 바닷 속에서 단세포가 다세포로... 그리고 다세포가 각종 장기를 가진 유기체로 진화하여 종국에는 물고기가 되고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와 온갖 동물로 진화했다고 가설을 세웁니다.

실제로 인간에게는 그런 진화의 과정에서 남아 있을 법한 흔적들이 꽤나 많이 발견됩니다.  인체의 구성물 중 물이 절반 넘게 차지하는 것도 그 흔적 중 하나라고 하지요.

동물과는 달리 식물들은 육지에서 자체적으로 단세포에서 다세포생물체로 진화를 했겠지요...

 

이전에 포스팅했었던, 단세포의 일종인 미생물에 대해서 또 다른 각도로 바라본 글입니다.

https://windownine.tistory.com/370

 

[미생물 이야기] 미생물. 병원균.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염증성질환. 미생물감염증.

인간은 수 조개의 세포로 구성된 다세포 생물체입니다. 학자에 따라 수 십조개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수 조이던 수 십조이던, 일단 하나 둘 셋 넷 하고 셀 수 있는 단계를 넘어

windownine.tistory.com

 

 

어찌됐든, 불로장생이라는 단세포의 중대한 특질을 포기하고 다세포들은 서로 뭉쳐 다양한 생명체로 진화합니다.

수도 없이 많이 늘어난 세포들은 각자 역할분담을 하여 장기를 형성해 가지요.

다세포 생명체들이 장기를 만들어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노화는 거의 필수적으로 따라붙는 핸디캡입니다. 단세포생명체들은 수 없이 복제를 반복해도 노화현상이 없는데, 왜 다세포생명체들은 복제를 반복할수록 서서히 노화가 진행이 되는지는 아직까지 미스테리입니다.

 

끊임없이 복제를 거듭하며 생명현상을 유지하려 몸부림치던 다세포생명체들이 결국은 스스로 소멸해가는 이치는 언뜻 이해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조금 각도를 달리하면 자신의 후손들에게 DNA를 고스란히 넘겨준 후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불멸일지도 모릅니다. DNA 의 입장에서 본다면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후손을 남기기 위해 안달복달하고 그 후손들이 잘 살아남을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몸부림치는 지도 모릅니다.

이는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인간의 본성에 깊숙히 각인되어 있는 것이지요...

요즘엔, 이런 본능마저 거스르며 싱글라이프를 영위하는 사람들도 늘어간다고 하지만 환경요인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지 본능을 일부러 거슬러서 그런 선택을 하는 경우는 드물겁니다. 예외가 없지는 않겠지만요.

 

@jule_42/unsplash

 

다세포생명체...

그 중에서도 특히 인간이란, 수 조개의 세포들의 연합체입니다. 억겁의 세월동안 진화를 거듭하여 참으로 정교한 각종 장기들을 만들어 지구라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왔습니다.

다른 생명체들과는 달리, 라는 장기를 특화시켜 개발함으로써 자연을 이용하여 온갖 것들을 새로이 만들어 왔습니다. 마치 창조주라도 된 것 처럼 느낄 법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했어도 다세포생물의 핸디캡인 노화현상은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다세포생명체가 왜 스스로 불멸을 버리는 선택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각종 장기들의 노화로 기능이 떨어지고 궁극에는 그 기능이 정지함으로써 인간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과정만큼은 분명히 밝혀져 있지요.

 

발전된 의료기술 덕에 각종 장기의 대체가 가능하지만, 그래봤자 잠깐의 시간 연장에 불과할 뿐입니다.

결국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올 장기의 노화는 자연스런 시간의 흐름 뒤에 발생하기도 하고, 온갖 예기치 못한 일들에 의해 초래되기도 합니다.

각종 전염병에 의해 갑작스럽게 장기들이 파괴되기도 하고, 사고로 인해 비교적 건강했던 장기들이 손상받기도 하고, 암이 발병하여 체내에서 장기들이 망가지기도 합니다.

 

@blavon/unsplash

 

그리하여, 신체를 유지하던 각종 장기들의 시스템이 붕괴되어 인간은 영면에 빠지게 되지요.

그로부터 머지 않아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원소들로 분해되어 소멸하구요. 우리의 개념분류에 의하면 생물에서 무생물로 분해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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