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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단상]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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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실은 다행히도 창문을 끼고 있어서, 간접적으로 빛을 받을 수는 있지만 건물의 각도상 일년내내 직사광선이 한번도 들지 않는 서북향의 공간이다.

덕분에 여름철에는 방 안이 그다지 덥지 않은 편이고, 비교적 따스한 남쪽지역이라 겨울도 그럭저럭 지낼만 하여 당직실은 일년 내내 생활하기에는 적당한 편이다.

하지만, 식물들에겐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몇 몇 식물들을 키우면서 보니, 잘 들지도 않은 햇볕을 찾아 넓은 잎사귀들을 처연하게 유리창에 붙이면서 몸부림 치는 모습을 늘상 보곤 했다.

 


 

바위산을 깎아 만들다보니, 건물의 뒷쪽은 천혜의 요새처럼 깎아지른 바위돌벽이다.

 

 

높이만 해도 30 여 미터는 훌쩍 넘을 것 같은 두꺼운 바위를 깨 부순(?) 인간들의 능력도 새삼 감탄스럽지만, 그 깨어진 틈새귀마다 낑겨붙은 식물들의 그 놀랍고도 질긴 생명력에는 뭐라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할 지경이다.

식물은 기본적으로 태양빛과 이산화탄소, 그리고 물이 있으면 광합성을 통해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일부 수경식물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식물들은 땅을 기본으로 삼아 자란다. 땅 속의 박테리아가 돕기도 하고, 땅 속의 미네랄을 포함한 질소 등 각종 요소들이 식물의 성장에 관여 한다고는 하나 그런 전문적인 것을 잘 모르는 일반인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던 땅에 어느 순간 초록빛의 식물이 떡 하니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깎아지른 암벽면을 찬찬이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암벽 틈 사이로 상당히 많은 수의 식물들이 들러 붙어 있음을 알게된다. 지금은 겨울철이라 모두 숨을 죽이고 있지만, 날이 풀리면 이내 초록의 빛들이 돌아올 터이다.

 


저 바윗돌 사이 어디에서 물을 구하는 것일까?

저 단단한 바윗돌을 상대적으로 연약한 식물의 뿌리가 어떻게 뚫고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있는 걸까?

이런 궁금증이 들어, 바라보는 시선에 감탄이 실린다.

심심풀이 삼아 실내에 자그마한 화분을 들여 놓았더니, 방 천정에 닿을 정도로 키가 커졌다.

키가 커질수록 아랫부분의 잎새는 저절도 다 떨구더니, 이젠 천정에서 휘어져 아래로 내려오고 있다.

어느 해인가 부터, 콩알 몇 개를 말라 비틀어진 나무를 뽑아내고 심었었다.

그로부터 수확물을 내던 콩들은 한 개를 심으면 대략 3~6개까지 콩을 냈다.

직사광선 한번 쐬지 않고도 콩은 참 잘 자랐다.

그런데 계속 계속 수확을 거듭하다보니, 그 조그만 흙 속에서 양분이 다했는지 콩알의 크기가 잘아진다.

게다가 눈에 보일락 말락한 작은 벌레들까지 생겼는데, 좀 처럼 잡을 수 가 없었다.

그리하여 모두 수확을 거두어 정리를 해 버렸다. 작년 11월쯤의 일이다.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더니, 커다란 플라스틱 용기가 생겼다.

갑자기 콩 생각이 나서 기존에 짜실짜실하게 키웠던 작은 화분들을 통합하여 커다란 플라스틱 용기에 모두 흙을 옮겨 담고 콩을 심었다. 콩알들이 비실비실하게 크기가 적어서 제대로 크려나 싶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째그마한 콩 알 속에 차곡 차곡 쟁여져 있던 유전정보는 주변 땅의 에너지와 물을 받아들여 여지없이 그리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새로운 생명을 깨어나게 했다. 갈색의 말라비틀어졌던 작은 콩알에서 저렇게나 탐스럽고 예쁜 녹색의 식물이 피어난다는게 신비롭고 애틋하다...특히나, 머리를 쳐들고 흙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은 마치 알에서 깨어나는 어린 새들의 몸부림처럼 처연하다.

 

원래 자기 몸의 2배는 커진 듯 한 머리에서, 올챙이 꼬리처럼 뿌리가 길게 자라나고 머리 사이에서는 태양에너지를 받아들일 잎새귀들을 만들어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치 우주로 쏘아 올린 우주선의 태양광 에너지 판 처럼 펼쳐질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10여개 정도 뿌린 콩알에서 다섯 개 정도가 꿈틀거린다.

땅에 뿌려졌으되, 모두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날 한시에 심었지만, 크는 속도는 제각각이다.

어쩌면 생명이란 게 모두 엇 비슷하지 않나 싶다. 먼저 싹을 틔웠어도 더디게 성장하는 것도 있고, 아예 싹을 틔우지 못하는 것들도 있고... 조금 늦었지만 오히려 제일 빠르게 크는 것들까지...

흙속에서 벌어지는 무궁무진한 생명의 속삭임을 들을 재간이 없다...

주말이 지나면 어떻게 변해 있을지 내심 궁금했었다.

 

 

모두 9개의 콩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왼편의 것들은 지난 금요일날은 작은 기미조차 보이지 않던 것들인데, 주말 사이에 훌쩍 커 있었다.

제일 먼저 고개를 쳐 들었던 오른쪽의 콩은 여전히 가장 커서, 그 무리중에서는 대장인 셈이다.

이미, 자신을 담고 있던 작은 콩알 크기의 30배도 넘게 성장한 콩들을 보고 있자니 많은 상념이 든다.

물을 머금으면 몇 배로 커지는 넵킨처럼, 작은 콩알에서부터 부쩍부쩍 그 몸집을 불리고 있는 게 보인다.

그 작은 한 톨의 콩 안에 차곡차곡 담겨져 있었던 유전정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제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겠지...

 

 

왼쪽 가운데 있는 콩나무는 마치 비상하려는 듯 날개를 펴는 모습이 자못 신기해 보인다.

정말 너무 크기가 작아서 미처 싹을 틔우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촘촘히 심어 놓은 게 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편견이었을 뿐, 크기가 작다하여 제 역할을 못 할 바는 아니었던 것이다.

유난히도 생명력이 강한 콩과 식물들은 이제 바야흐로 자기들 끼리 좁은 공간속에서 지지고 볶고 할 것이 틀림없다. 이미 뿌리들도 단단히 내렸을 터 ... 수확이 목적이 아닌 한에야, 굳이 내가 이 녀석들의 생존여부를 결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적자생존의 경쟁터에 너무 아무 생각없이 콩들을 밀어 넣은 걸까?

입이 달려 있다면, 뭐라 뭐라 원성이 자자할 것 같다...^^

사진 오른편에 여물다 만 작은 콩깍지가 보인다... 최근에는 저런식으로 제대로 콩알을 만들지 못해서 정리를 했었던 것이다...

콩들아...식물재배는 1도 모르는 도시촌놈을 만나서 고생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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