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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죽음의 에티켓. 롤란트 슐츠/노선정. 스노우폭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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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노우폭스북스. 예스 24>. 2019년 9월 출간

 

시립 도서관에서 빌려온 이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죽음'이란 단어가 내 풍기는 무거운 분위기도 그렇지만, 죽음과 연관되는 모든 장면들에 대한 연상이 자동으로 떠오르며 무의식을 흔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유전자 속에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그래서 최대한 피하려고 하는 본능이 얼마나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겠는가...

사실 죽음의 그림자는 늘 우리 주변을 서성거린다.

우리는 지금까지 운 좋게 그 그림자들을 요리조리 피해나가고 있을 뿐이다. 매일 뉴스 기사에 올라오는 우리들의 이웃들은 그렇지 못했고...

아침에 출근 할때부터 운전대을 잡은 순간, 우리는 크고 작은 교통사고의 위험에 노출된다.

대중교통을 타더라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그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이유로 우리는 별 다른 생각이나 위협을 느끼지 않고 무심코 그 시간대를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출처 : unsplash.com/@matthew_f_rader>

 

개인적으로, 고속도로에서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큰 사고를 겪을 뻔 한 적이 있었다.

시속 100 km 고속도로에서 앞으로 10여대의 차량과 이어서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오른쪽으로 심하게 기우는 게 아닌가? 엄청난 굉음과 함께 운전대가 조정이 되지 않았고 브레이크 또한 듣지 않았다.

끔찍한 순간이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말을 듣지 않는 차를 세우기 위해 중앙분리대로 핸들을 틀었다. 차를 분리대와 마찰시켜서라도 멈춰 세워야겠다는 순간의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그 순간부터 내 기억은 슬로우비디오처럼 촬영되어 기록되어졌다.

내 머리속은 명징해졌고, 여러가지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이렇게 죽을수도 있겠구나'싶은 생각도 언뜻 스쳤다...

온 힘을 다해 핸들과 브레이크 페달을 조작했지만 차는 속절없이 내 의지를 무시하고 밀려갔다.

몇 초쯤 지났을까?

중앙분리대가 거의 다가 올 즈음에 조금씩 차의 속도가 많이 줄어서인지 핸들링이 되기 시작했다. 또 그순간에 퍼뜩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차를 망가뜨리지 말자'였다...지금 생각하면 참... 얇팍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도로 갓길로 차를 세우고 나서 차에서 내리고 보니 내 차를 뒤따라 오던 차량들도 펑 펑 타이어가 터지며 도로 위를 휘청거렸다. 다섯 번째 차량에 의해 도로 위에서 뭔가가 튕겨져 나가더니, 사고 차량은 더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고속도로가 노후화되어 깨진 부분이 90도로 세워진 바람에 생긴 일이었다.

도로 파편에 타이어가 터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다섯 대의 차량이 고속도로 위에 새겨 놓은 스키드마크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만일 똑 같은 일이 발생한다면, 그 때는 꼭 차량안에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는 주의를 들은 것은 한참 뒤였다.

<출처 : unsplash.com/alschim>

 

가장 가까운 휴게소까지 견인차로 끌어 갔는데, 사고 차량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은 죄다 택시기사분들이었다. 망가진 내 차를 보며, 전복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 이라고들 입을 모은다.

앞바퀴가 터지면서 휠 부분의 금속 일부가 깨지면서 바로 뒷 바퀴를 같이 찢어버렸는데 한쪽이 모두 주저 앉아서 그나마 전복이 안 됐다고 하였다...

다행히도 난 멀쩡했다.

차량은 수리를 거쳐 다시 타고 다녔지만, 원래의 상태를 회복하지 못했다.

정비를 맡겨도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내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이후 고속도로를 운전해서 가다보면, 노후된 도로라서 그런지 정말 많은 땜방자국들이 눈에 띄였다.

아무 생각없이 운전하고 다닐때가 맘은 편했다.

저 땜방자국 하나 하나마다 사고의 위험과 부상과 사망의 가능성들이 같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을 생각을 하니 모골이 송연했다.

한 달여 지워지지 않은 내 차 타이어의 스키드마크도 끊임없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상기시켰다.

결국 이런 저런 잦은 고장 끝에 새 차로 갈아타고 말았다.

스쳐지나갔던 죽음의 그림자가 언제 다시 덮칠지 모를 두려움 때문이었다.

 

<출처 : unsplash.com/@20164rhodi>

 

살아오면서, 할머님과 부모님의 죽음을 지켜보았다.

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게 언제일지는 모른다.

하지만, 죽음은 역시 두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지나야 맞을 수 있는 과정인 듯 했다.

잠을 자듯이 편안하게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는 죽음은 축복이라고 한다.

의료기술이 요즘처럼 발달한 시대에는, 자칫 잘못 판단하면 본인의 의지대로 죽음을 선택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본인의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 후 결론으로 연명치료를 하지 않을 의향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을 작성해 놓을 수도 있다.

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응급상황으로 병원에 들어가게 되면, 의사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환자를 살려 놓으려 하기 때문에 원치 않는 연명치료를 무한정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상에 머물고 싶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상관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현실적으로 복잡한 여러 문제들이 꼬여들게 마련이다.

장기간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발생하는 욕창이나 심한 변비, 면역력 감소로 인한 각종 감염 위험성 등으로 끊임없이 의료시술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이는 인간적인 마지막과는 거리가 먼 모습일 수도 있다.

나 자신과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 대한 모든 것이란 부제가 의미하듯, <죽음의 에티켓>은 죽음이란 과정을 거쳐갈때 고려해 볼 여러가지 상황들에 대한 일종의 리뷰이다.

무신론자들은 믿지 않겠지만,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죽음으로부터 이승으로 되돌아 온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죽음이란, 미지의 세계이니 두려울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지긋지긋한 세상살이보다 천국에서의 생활이 어디 비교가 되겠는가? 그런데도 사후 천국을 믿는 종교인들이라도 대부분 죽음은 두려워한다.

이 책에는 광고 문구가 엄청나게 붙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피해왔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당신은 죽게 될 것입니다.

그때 남겨진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해주길 바라나요?

...

이건 당신의 죽음입니다.

당신이 반드시 준비해야 할 단 한번뿐인 죽음

이 모든 건 당신이 직접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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