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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빅터 프랭클. 로고테라피. Logotherapy. 내 삶의 의미는?

 

 

우리네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마 이런 질문을 수시로 던지며 살아가는 생명체는 이 지구 상에 인간밖에는 없을 겁니다.

아니, 그런 질문을 던진다는 자체가 다른 동물과 인간을 구별짓는 바로 그 지점일지도 모르지요.

 

빅터 프랭클 박사는 처참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활 속에서, 인간은 삶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고 그 의미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깨달음을 로고테라피라는 정신치료 방법으로 연결시켰지요.

정신과 의사였던 자신의 직업의식에서 비롯된 훌륭한 결말입니다.

 

그가 쓴 <죽음의 수용소에서>란 회고록에는 정말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이 짧게 짧게 그려집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정책이었던 죽음의 수용소는 정말 유대인의 씨를 말리기라도 할 작정이었는지 거의 인간을 짐승처럼 부리며 노동을 착취하다가 노동가치가 사라지면 가스실로 보내 죽입니다.

그 와중에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은 병에 걸려 영양실조에 걸려 혹은 사고로 죽습니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의식주의 환경을 짐승우리에서 짐승사육할 때 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환경을 조성하지요. 수시로 가해지는 구타와 욕설,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가스실행 결정 등으로 상당수의 수용자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습니다. 그 결과는 죽음이었지요.

 

득시글거리는 빈대와 이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수면시간의 절반을 설치고, 같은 수용자이면서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들을 골라 뽑은 감시인들의 습관적인 폭행과 짐승만도 못한 대우로 인해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은 이미 상실된 상태였던 거지요. 게다가, 먹을 것은 죽지 않을 만큼만 줘서 수용자들은 하루종일 먹을 것 생각 뿐입니다. 짐승이나 진배없는 상태를 만드는 거지요.

 

 

하지만, 이렇게 열악한 환경 임에도 피골이 상접하고 비실거려 보이는 사람인데도 끝까지 살아 버텨낸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의 공통점이 바로 "자신이 살아야 할 의미"를 찾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지요.

나는 꼭 살아서 아내를 다시 만나야 한다,

내 아이들과 다시 만나야 한다,

내 연구결과를 꼭 책으로 집대성해야 한다

작을수도 클수도 있는 각양각색의 희망들을 자신의 삶이 지닌 의미로써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끝까지 살아남더라는 얘기였지요.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잔학행위가 독일인 전체의 책임이 아니라고 반대했는데요, 사람 나름이라는 거지요.

극렬단체들이 빅터 프랭클을 맹비난했겠지요.

 

나치 당원이었던 한 교수가 눈물을 흘리며 빅터프랭클에게 "어떻게 당신은 그럴 수 있느냐"고 물었답니다.

"당신은 못하고 나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에 내 말은 설득력이 있지만,

당신 말은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겁니다.

나는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게 내 의무요 책임입니다."

- 빅터 프랭클

 

자기가 겪었던 어떤 수용소 소장은 자비로 수용소 환자들의 약을 몰래 사다 먹이기도 했답니다.

반면, 수용소 내에서는 꽤나 권력을 휘둘렀던 같은 수용인들 중에서 뽑힌 감시인들은 정말 세상 그런 악독한 인간이 없을 정도였다지요. 이런 인간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나 있는 모양입니다. 퉤~~

 

언젠가 티비에서 봤던 다큐멘터인데요, 피골이 상접한 유대인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고 그 곳에 또 다른 시체를 들것으로 실어다 던지는 충격적인 장면이 생생하게 기억나네요.

아마 유튜브에도 올라와 있지 않을까 싶네요. 너무 충격적이고 잔인한 역사의 기록이라 두 번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검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만...

조류독감으로 모자이크 처리는 되었지만 수백 수천 마리의 닭을 폐사시키는 장면이 공중파를 타자 뭇매를 맞은 일이 있었는데, 똑 같은 짓거리를 인간에게 고스란히 한 것이었지요.

그때 받았던 충격은 정말 어마어마했던 것 같습니다. 인간의 잔인성에 대해 몸서리 쳐지기도 하구요.

 

 

프랭클은 책 속에서 이런 얘기들을 들려줍니다.

하루 종일 먹을 것에 대한 갈급과 육체적 고통으로 시달리는 와중에도, 끊어진 신발끈을 조여맬 철사를 어디서 구할지 혹은 저녁 식사로 형편없이 부족하겠지만 뭐가 나올지 혹은 조금 더 편한 작업조로 편성되기를 기대하거나 좀 더 나은 평가를 받는 나치병사에게 걸리면 좋겠다는... 지극히 사소하면서도 현실적인 그러면서도 너무도 처절한 몸부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말이죠.

또 한편으로는,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지옥같은 환경 속에서도 인간다움과 배려를 보여주는 놀라운 인간승리의 모습을 말하기도 하구요.

 

엄혹했던 수용소 생활이 나치의 항복과 함께 마무리된 후에도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하긴, 그렇게 인간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수 년을 학대받고 산다면 금방 제 정신으로 돌아온다는게 기적같은 일이겠지요.

극소수이긴 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지고한 정신 세계의 성취를 이룬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들 대부분이 '삶의 의미'를 찾고, 그 희망의 끈으로 지옥의 벼랑같은 세월을 버텨낸 것이라고 합니다.

 

 

운동을 잘 했으면, 끼가 많았으면, 공부를 잘 했으면, 좋은 직장을 잡았으면, 좋은 사람을 사귀었으면, 친구가 많았으면,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은 집과 차를 가졌으면,예쁜 아이들이 생겼으면, 건강했으면, 해외여행 갔으면....

살아가는 매 순간마다 우리들은 희망사항이 계속 변하고 또 새로이 생기지요...

 

잇님들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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