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절, 써 놓았던 글이나 일기 등을 다시 읽어보면 참 희한한 감상에 젖어들게 됩니다. 어떤 호르몬이 분비되어 내 몸을 흐르고 있는지 알수 없지만, 참으로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의 물결이 잔잔하게 적셔져 옴을 느끼죠. 고즈넉한 저녁 시간이면, 더욱 아련하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계기가 있어서 저런 글을 쓰고 있었는지 지금은 가물가물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 당시에는 제법 큰 정서적 요동을 겪고 있지 않았을까 추측이 되긴 하네요...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노트에 볼펜 글씨로 적혀진 문장들에서 퍼져 나오는 파편화된 기억들은 유행지난 패션처럼 쑥스럽고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끊임없이 자연스레 휘발되어 스러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양의 생각들 중에서 극히 일부분만을 억지로 그러모아 놓은 기록들은, 이제와 다시보면 과연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하긴 했었나 싶은 내것임에도 내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 또한 되게 생경합니다.
글을 쓴다는 건 참 쉬운 일은 아닌 듯 해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작문실력에 조금은 뻘쭘해지기도 하구요. 하긴, 뭐 글쓰기를 열심히 노력했다고 할 수도 없는데 실력이 얼마나 좋아졌겠습니까만...^^
기억나지 않는 한참 오래 전 어느날의 기록...
학창시절 미션스쿨을 다녔었다. 학교 교과과정에 종교시간이 편성되어 있었다.외국인 신부님이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종교적인 문제는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시고 삶에 관한 조언등을 해주시며 학생들과의 대화시간으로 활용하셨던 기억이 난다. 일종의 단체 청소년 상담과 같은 시간이었다. 신부님이 관심을 두셨던 학생들은 늘 그늘져 있거나 일종의 문제아로 분류된 아이들 쪽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았을 때, 신부님이 관심을 줌으로써 포기하지 않고 학창시절을 견뎌낸 학생들도 꽤 많은 것 같다.
신부님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계시던 오래된 영화필름들을 수업시간에 틀어주곤 하셨는데, 희한하게도 그렇게 수업시간에 졸던 애들도 그닥 재미있지도 않은 내용의 영화들을 졸지도 않고 키득거리며 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영사기에 직접 필름을 걸어서 보여주는 그 모습이 되게 신기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큰 공간이었던 종교실에서 책걸상을 구석으로 밀어버리고 바닥에 앉아서 보던 그 단편영화들... 챨리채플린을 그때 처음 보았었다.
지금까지도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떠 오르는 건, 15분 짜리 단편 영화였다. 주인공은 자신이 예쁘게 가꾼 화원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기쁜 마음으로 보여주고 즐거워했었다.
어느날, 조금은 무례한 사람들이 집으로 놀러와서는 집안을 어지럽히고 정원을 조금 망가뜨렸다. 맘이 상하긴 했지만, 치우고 고친 후 또 다시 사람들을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엔 더 무례한 사람들이 아예 엉망진창을 만들어 버린다. 너무 속상한 주인공은 집 주변에 펜스를 둘러치고 정원을 보호한다. 하지만, 외부에서 날라들어온 투기물로 꽃들이 다치자 더 높게 벽을 쌓아올리게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조금씩 올라가던 담벼락이 어느덧 거대한 감옥처럼 자신의 공간을 뒤 덮어버리게 된다. 주인공은 이제 더이상 외부로부터의 어떤 상처도 입을 일이 없다. 그저 자신만의 공간 안에서 꽃들을 가꾸고 집안을 깨끗하게 유지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을 만큼 쌓아올린 감옥과 같은 공간 속에서 서서히 병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뒤 늦게 깨닫게 된다. 결국 스스로 쌓아올린 벽을 허물고 따스한 햇살을 다시 받아들임으로서 피폐하게 말라가던 자신의 모습을 건강하게 회복하게 된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많은 상처를 받고 스스로도 은연 중에 타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살아간다. 그 와중에 어떤 이들은 돌이킬 수 없이 심한 상처를 받기도 한다. 교통사고처럼 회복할 수 없는 상흔이 남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사람은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사회 구성원들은 그런 사람을 비정상으로 낙인찍어 공동체원으로써의 자격을 박탈해 버린다. 현대인들은 자기의 속내를 투명하게 내 보이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런 순진한 모습으로는 정글과 같은 세상속에서 얼마 오래되지 않아 스러지고 말것이다. 삶을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타인들과의 적정거리두기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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