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국은 문화예술의 본산지답게 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로 개방되어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공원 산책하듯 예술품들의 숲속을 공짜로 거닐 수가 있어서, 인문학적 감성이 한층 풍부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있는 셈이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들렀을 때, 노부부가 두 손을 지긋이 잡고 그림 한 점을 오랫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모습이 내게는 참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저렇게 여유로운 모습으로 삶의 끝자락을 보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스쳐 지나며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부러워서였다.
여행자가 되어 유럽의 미술관에 들렀을 때, 사람들은 그 어마어마한 콜렉션의 양에 지레 질리고 만다. 미인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듯, 언뜻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작품들이 끝도 없이 화랑에 전시되어 저마다의 기량을 뽐내고 있으니 주마간산식으로 훑어보기에도 버거울 지경이다.
자주 와 볼 수 있는 공간이 아니기에, 한 번 왔을 때 최대한 많이 감상하고 싶은 욕심은 당연지사이지만, 이런 과욕이야말로 어찌 보면 작품 감상을 망치는 최대의 적이다.
그래서, 혹자는 어떤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에 따른 감상을 추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술 사조 어느 한둘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감상한다거나 화가 한두 사람을 정해 그들의 작품에만 몰두해서 감상하는 방법 등이다. 하지만, 미술학도가 아닌 한 예술작품은 느끼고 공감하는 것이지 감상법에 정답이 따로 있을 리 만무하다.
미술관에 걸린 작품들이 시대 최고의 히트작이 되던 시대는 이미 물 건너갔다.
온갖 현란한 동영상들이 시각적 우위를 점령하고 쏟아져 나오는 판국에, 그림이 경쟁력을 지니기에는 쉽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게다가 시각적 표현 면에서도, 사진에 비해 그림은 그 정확도가 심하게 떨어진다. 물론, 예술적인 면에서는 또 다른 평가가 이뤄질 수도 있지만...
어찌됐든 사진기술이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내던 풍경화와 정물화는 많이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현대미술은 추상적이고 기호적인 쪽으로 선회하여 일반대중으로부터 더욱 멀어지는 선택을 하였고 그 희소성을 담보로 경매시장에서 고가에 낙찰되는 등의 가십거리를 통해 대중들에게 소식을 잠깐씩 비치곤 하는 처치가 되었다. 그의 그림 한 점이 수십억에 경매되는 것을 고흐가 보았다면, 살아생전 가난에 찌들어 살았던 그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난해하기 그지없는 현대미술보다는 비전문가인 일반인들에겐 아무래도 미술관에 걸려 있는 작품들이 훨씬 감상하기 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미술관에 걸려 있는 작품들을 그려낸 옛 화가들 대부분은 가난하고 그리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예술가란 배고픈 직업이란 이미지가 강하게 들러붙어 있다. 그런 편견과는 달리, 최근에는 천문학적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화가들도 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그림으로 읽는 의학과 인문학'이란 부제가 이 책의 내용을 잘 대변해 주는데, 진료실과 미술관을 오가며 그림에 얽혀있는 비하인드 의학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과의사 박광혁의 책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러시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미국, 일본 등 전 세계 미술관을 순례하며 ‘의학관련 에피소드’를 담은 그림들을 관찰하고 기록한 내용을 책으로 냈기 때문이다.
의학관련 에피소드라 했지만, 시작점이 그러했을 뿐 결국은 신화에서 문학, 예술, 역사 그리고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문학의 영역에 닿지 않을 수 없다.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은 책 속에 15가지 갤러리로 재분류하여 다양한 이야기보따리를 전시해 놓았다. 그의 전작 <미술관에 간 의학자>가 의학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히포크라테스 미술관>은 문학, 역사, 예술, 신화와 종교 등 다양한 분야로 외연을 확장하였다.
대부분의 것들이 그러하듯, 보이는 만큼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아는 만큼 보인다. 의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여지는 명화들의 색다른 아름다움을 즐겨보실 수 있을 것이다.
'책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적게 벌고 행복할 수 있을까1,2. 이보람 (14) | 2021.01.05 |
---|---|
독서 마라톤 2021. 올해도 쭈욱~~ 계속합니다. (11) | 2021.01.03 |
인간 없는 세상. 앨런 와이즈먼/이한중. RHK (35) | 2020.11.24 |
나는 이제 좀 행복해져야 겠다. 정현제(페리테일).넥서스 BOOKS. (21) | 2020.11.20 |
어쩌다 정신과 의사. 김지용 저. 출판사 심심. (10) | 2020.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