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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슬기로운 언어생활. 김윤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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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카시오페아. 예스 24>.

<말 많은 세상에서 말 너머를 보는 법>이란 부제가 책 내용을 잘 요약하고 있는것 같다. 책 속엔 깔끔하고 예쁜 글들로 가득하다. 읽다보면 어느샌가 빙그레 미소가 생기며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이다. 맘을 터 놓을 수 있는 벗과 함께 하는 소중한 순간들처럼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작은 선물같다. 번잡하고 혼돈스런 세상사를 살다보면, 가끔씩은 상상일지라도 이런 노스텔지아의 세계에 빠져 보는 것도 괜챦을 것 같다.

앞으로 몇 주간 바쁜 시간들로 채워질 듯 하여, 머리손질하기엔 조금 이른 김이 있는데도 짬을 내어 미용실을 찾았다. 어린 시절, 투박하게 머리를 손질하던 이발사 가 운영하던 이용실들은 늦가을 나무에서 나뭇잎 사라지듯 거리에서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고 더러 대형 사우나 시설 속으로 밀려나서 겨우 명맥만을 이어가고 있다.

이젠 거리에서 빨간색과 파란색의 줄이 번갈아 그려진 원형광고물이 돌아가는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용실을 뜻하는 이 광고물의 색들은 동맥과 정맥을 나타낸다고 했다. 오래 전엔 이발사들이 외과수술까지 했었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초기 비용이 적게 들어서인지, 집 앞 건물들에만도 수도 없이 많은 헤어샾들이 들어서 있다. 여기저기 새로 생겨나는 커피숍 처럼, 헤어샵들도 말 그대로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요즘 보면, 중년층 이하의 남자들은 머리를 손질하기 위해 거의 대부분 헤어샾을 찾는 것 같다. 미용실들의 이름들도 온갖 화려찬란한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세련됨을 뽐내보려 하지만, 들어가 보면 오십보 백보이다.

부드러운 머리손질과 상냥하게 손님 접대를 해주는 여성 헤어디자이너에게 마초같은 남성 이용사들은 애시당초 경쟁력이 없었다. 거친 가위질 끝에 시골 구석지의 목욕탕 같은 곳에서 식물에 물을 주는 주전자같이 생긴 것에 담은 물로 머리를 비누칠 해 행구던 이용실은 미용실이 야금 야금 자신의 영역을 차지해 나갈때에도 전혀 변화할 줄을 몰랐다. 퇴폐영업이나 면도, 마사지 등으로 특화성을 주장하며 버텨보기도 했었지만, 철 지난 헛발질이었다.

그렇게 시대의 변화에 동승하길 거부했던 이용사들은 모두 도태되어 스러졌다. 그 많던 이용사들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이용기술 또한 한때는 선배로부터 타박을 받으며 고생스레 배우고 익혀야 했던 기술이었을 터이다. 배워놓으면 평생 밥 벌어먹고 살 수는 있을거라 생각했을텐데, 시대와 유행이 바뀌면서 사진기 필름처럼 불필요한 존재들이 되어버렸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에도 이발사에게 기술을 배우기 위해 눈치밥 먹으며 고생하는 인물이 나온다.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다른 것들도 대개 비슷하지만, 헤어샵도 한번 가는 곳이 정해진 뒤에는 새로운 장소로 옮기기가 정말 싫다. 예전에 이런 일도 있었다. 처음 갔을때 넘 맘에 들게 커트를 해서 아들까지 대동하고 찾아갔던 곳인데...어서 오시라는 기본멘트를 안 한다 싶었는데, 아뿔사...돈 안되는 남자커트여서 그런지 들어간 지 20분이 넘게 쳐다보지 않았다. 엿 맥이는 방법도 가지 가지... 설마 손님을 거부할 줄 어찌 알았겠는가. 차라리 대 놓고 얘길 하지... 여자 손님의 머리를 매만지며 우리에겐 일언반구를 안 했다. 몹시 괘씸했다.

기분이 상한 아들과 나는 그 헤어샾을 빠져 나와 다른 헤어샾으로 가서 친절한 응대를 받으며 머리를 잘랐다. 우리를 박대했던 헤어샾 원장은 나중에 알고 보니 막내와 같은 학교 같은 반 학부형이었다. 학교행사에서 마추쳤는데,나를 기억은 하고 있었는지 참 시선처리 민망하게 하더이다...

그뒤 다시 몇 군데 헤어샵을 전전하며 머리를 자르다가 지금 다니는 곳이 마음에 들어 수년 째 단골이 되어 있다. 땅 사고 건물을 올려서 1층에 헤어샵을 오픈하고 2층은 타 업종에 세를 내주고 있었다. 거의 3주에 한번 꼴로 커트를 하거나 2달에 한번 펌을 하기위해 정기적으로 헤어샵을 들르고 있다. 어쨌거나, 거의 2시간에 육박하는 펌 시간 동안, 이 한권의 책은 내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책 얘기하려다 참 멀리도 돌아왔다...^^

읽을수록 말이 예뻐지는 일상언어 사용법에 대한 강좌였다.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대화의 순간을 포착하여, 서로를 배려하고 마음 다치치 않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요령을 부드럽게 설명하고 있었다. 한 번 엇 나가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이 감정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인 잘못된 대화방법에 대해서 조근조근 지적하며 또한 재미있는 예화를 통해 알기 쉽게 따져 간다.

지난 날을 돌이켜 보았다. 욱 하는 감정으로 뱉어냈던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는 말들로 난감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조금만 냉정해진 후에 차분히 얘기해도 될 껄...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쏟아내던 날선 말들은 또 얼마나 독했던지... 또 상대방이 내게 쏟아낸 산도 낮은 말들이 얼마나 내 가슴을 아리게 했었는지... 뚫린 입으로 가만히 독설을 듣고만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결국은 서로에게 상당한 마음의 상처를 남길 수 밖에 없다.

평상심을 유지하며 지낼 수 만 있다면...

휴대폰을 붙잡고 누군가와 40여분을 통화하던 아내가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해요...ㅎㅎ"

서울사는 벗이 "남자는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여자는 수다로 스트레스를 푸는것 같다"더니 정말이다. 최소한 우리집에는...

과묵한 집안내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나는 조금이라도 말을 많이 했던 날은 여지없이 목이 쉬고, 뭔가 말 실수는 하지 않았나 괜시리 걱정이 되기도 한다. 참 걱정도 팔자인가...난 잡담을 많이 할 수록 스트레스가 쌓인다.

남녀를 불문하고, 말로써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은 내 기준에서 보면 정말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한다. 내 주변에도 유난스레 말이 많은 분이 몇 분 있다. 그런 사람의 말 들중에는 상대방의 아픈 곳을 쿡 찌르는 비수같은 단어들이 스스럼없이 섞여있어, 제 3자로써 듣는 나에게마저 고스란히 스트레스를 준다.

'저런 말은 듣는 사람에겐 아플텐데...', '저렇게 말하면 저 사람은 정말 화가 날것 같은데...'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끊임없이 말들을 쏟아낸다. 물론 그사람이 갑의 위치(?)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언젠가 술의 힘을 빌어 넌지시 지적질을 좀 해 봤는데, 소 귀에 경 읽기였다. 40살 넘어가면 사람은 여간해서는 안 바뀐다...

 

사회생활 초년시절, 상급자로부터 당했던 언어폭력들은 고스란히 흉터로 남아 있다. 수년이 지난 후에 우연히 멀찌감치서 그 사람을 마주쳤을때 쿵쾅거리던 가슴을 스스로 조절할 수 없었던 걸 보면 말이다. 전형적인 스트레스 반응에서 난 싸우기보다 도망치는 걸 선택했다. 내 마음은 다시 지난날의 상처를 휘젓고 싶어하지 않는 무의식의 지배하에 있었던 것이다. 애써 괜챦은 척, 다 지나간 일이라고 잊은척 하고 싶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지나고 보면 그렇게 할 이유도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매일 매일 1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년차별로 아래년차들을 닦달하곤 했다. 일이 주는 스트레스를 그렇게 잘못되게 풀었던가 싶기도 하다. 아니면, 본성이 나빴거나...(후자일 가능성에 더 무게가 가는 듯하다. 비슷한 환경인데도 분위기가 전혀 다른 파트들도 있었으니까...)

그 탓에,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로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낸다. 손에 쥔 자그마한 권력을 참 잔인하게도 행사했던 사람들이었다.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물리적 폭력을 행사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예전에 횡행했던 군 부대내의 폭력처럼, 요즘 시대에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들이었다.

요즘 내 주변에는 다행히도 말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맷집은 많이 약해진 것 같다. 정말 사소한 말이나 의미없어 보이는 잡담에도 소위 빈정이 상할때가 있다.

형태도 없고 흔적도 남지 않는 말들이 상처가 되어 기억속에 퇴적된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말그릇에 스스로 담지만 않았다면 그저 그렇게 흘러가 버릴 말들이 말이다.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한다는 건 그만큼 상대방을 신뢰한다는 얘기지만, 사이가 어그러져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게 되면 회복하는데 정말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런 일을 당하면, 어쩌면 더 이상 누구에게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수 도 있다.

잘 말하는 것 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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