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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리뷰]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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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도 종환

 


 

 

출처 : 네이버 이미지. 이하 사진출처는 동일함

 

 

들판에 피어있는 예쁜 꽃들을 상상해 봅니다.

바람에 하늘 하늘 흔들리는 각양 각색의 들꽃들을 바라보면 마음이 푸근해지지요.

모처럼만의 여유로움도 느껴지구요.

볕 좋은 가을날, 뺨을 스치는 시원한 가을바람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따뜻한 선물같습니다.

 

 

하지만, 시인의 눈은 똑같은 광경에서 다른 걸 봤네요.

 

시인의 감성은 문장 속 행간을 뒤지듯들꽃들의 생애를 더듬습니다.

 

여유롭게 바람의 리듬을 타며 흔들리는 꽃의 모습에서, 시인은 오히려 세상만파에 시달리는 민초들의 모습을 보았군요.

굳건하게 뿌리를 내린 나무들 조차도 바람에 잎들이 흔들리기는 하지요.

하지만, 튼튼하게 땅에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는 나무들이야 어지간한 태풍이 불지 않는한 큰 문제야 있겠습니까... 마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처럼 말이죠.

만수르의 아들 딸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문득 쓰잘데 없는 생각이 드는군요...^^

 

 

흔들리면서 줄기를 굳게 세웠다는 문장은 참으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듭니다.

우리네 삶의 모습을 이처럼 간략하면서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 싶어요.

 

매일 매일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꼭 돌발상황들이 튀어나오죠.

한동안 속 썩이고 왕창 스트레스받고 심적 육체적으로 무척이나 고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그 일이 어느 샌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더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오고 우리 삶의 줄기도 한 꺼풀 단단하게 굳어지는 거죠.

물론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로 빠져버리는 경우도 있겠지만요. 불행한 일이죠.

 

 

젖지 않고 피는 꽃(삶)으로 댓구를 지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삶)에 대해 라임을 짓는 이어지는 2절의 싯구들도 참 좋네요.

 

바람과 비에 젖어 있는 꽃...

우리의 눈에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겠으나, 우리들이 비오는 날 우산도 없이 흠뻑 젖었다면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비가 와서 쌀쌀해진 기온으로 을씨년스럽게 춥고 젖은 옷이 피부에 들러붙는 축축한 느낌이 행복할 수는 없겠죠.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따뜻한 꽃잎을 피워낸 꽃들을 참 장하게 쳐다보는 시인의 시선이 예쁩니다.

우리가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개인적인 성취를 이뤄내는 사람들에게 환호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들이 우리들에게도 또 다른 희망을 보여주기 때문이겠죠.

 

아름다운 계절, 가을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을 읽으며 잠시 사색에 잠겨봅니다.

가을 꽃 구경하러 나서봐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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