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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단상]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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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per301/unsplash

 

어느 새 머리털 이곳 저곳이 희끗거립니다.

그간에는 건강에 별 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었는데 몸 이곳 저곳에서 이상신호들이 갑툭튀하고 체력저하마저 실감하게 되는 일이 잦아집니다.

마치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나이듦에 대해 혹은 늙어감에 대해 무심하게 쳐다보지 않다가 문득 자신의 나이숫자를 보고 식겁하곤 합니다. 어린 시절 지금 제 나이의 어른들을 봤을 때의 느낌이 되 살아나기 때문이죠...

 

서서히 가열되는 냄비 속에서 뜨거운 줄도 모르고 삶아져가는 개구리처럼, 그렇게 소리없이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을 참 무던히도 모르고 지냈더군요.

하긴 두 손안에 쏙 들어오던 큰 아들이 어느새 장성하여 저보다 한 뼘은 키가 더 큰 성인이 된 상태이니, 어찌보면 애써 세월의 무상함에 눈 돌리고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젊고 아름다운 시절은 가고, 늙고 추함으로 인식되어지는 노년만 남았구나 싶은 생각에 울컥하기도 합니다.

 

우리 어린 시절, 어르신들의 훈계는 참으로 자연스럽고도 흔한 일이었죠.

집안 어르신들 뿐 아니라, 지역사회 어르신들까지...

요즘 시대같으면 당장 세대간 갈등이 불거질 만한 일들에 대해서 어르신들이 이런 저런 지적을 하시는 경우가 참 많았지요.

 

@robbie36/unsplash

 

 

시대가 변하고, 노인들에 대한 인식이 천양지차로 변하면서 이런 모습은 자취를 감춘 듯 합니다.

유교사상이 지배적이던 한국 사회에서는 어르신들의 역할이 큰 위상을 갖고 있었지요.

요즘은 어르신들과 같이 사는 경우도 많지 않을 뿐더러 같이 산다해도 예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을 것 같아요.

 

꼰대란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였지만, 최근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죠.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참 꼰대같은 사람들 꼴불견이었죠.

단어가 주는 뉘앙스에서 알수 있듯이, 뭐 그리 좋은 모양새는 연출하지 않았을 법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었고 대개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고지식하고 쫌 꽉 막힌 느낌의 사람들이 떠 오르니까요.

 

엊그제, 지인 집에 찾아갈 일이 있었습니다.

급하게 상의할 일이 있어서 간 거였는데, 하필 또 다른 손님이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더군요.

애 둘을 키우고 사는 이혼남이었는데, 그 쪽 또한 잠깐 들러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던 모양이더라구요.

 

@phammi/unsplash

 

누구에게 하는 인사인지도 모르게 걸어 들어오면서 '안녕하세요' 하며 외치는 예닐곱 살 또래의 남매들은 바로 집안 수색에 들어갑니다.

거실 이곳 저곳을 탐방하고 놓여진 물건들을 서슴없이 만지고 조작하고 마치 자기 집에라도 온 것처럼 들쑤시고 다니더군요.

애들 아빠는 아이들의 그런 행동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다만, 아이들에게 주의를 많이 주었는지 발 뒤꿈치를 들고 뛰어다니더군요.

 

잠깐 동안이었지만, 애들의 행동이 뭔가 이건 아니다싶은 꼰대(?)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연한 타인의 공간인데, 철없는 아이라는 이유로 타인의 물건들을 주인의 허락 없이 이것저것 만지고 건드리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거죠.

입이 근질거렸지만, 차마 남의 집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 같아 목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습니다.

여자애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 같더니, 지인의 딸 것으로 보이는 쿠션인형을 들고 나옵니다.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깔아 뭉게고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는 에너지 덩어리입니다.

그 모습을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지인의 딸은 그냥 묵묵히 보고 있더군요.

 

@chayene/unsplash

 

애들의 행동은 역시 보고 자란 그대로 따라하는 경향이 있을겁니다.

어쩌면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다른 집에 가서 저런 행동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최소한 제 기억속에 제가 본 앞에서 우리 애들은 타인의 물건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함부로 손대거나 타인의 공간을 들쑤시고 돌아다닌 기억은 없습니다. 그런 행동을 했다면, 나무라고 못하게 했을 것 같구요...

 

철부지 어린애들의 천방지축같은 행동을 너무 꼰대처럼 바라본 걸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제 스스로의 모습이 그렇게 싫어하던 꼰대가 되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뭐 실은 남에게 싫은 소리는 거의 못하고, 혹여라도 못 참고 입 밖으로 내 뱉으면 두고 두고 후회하는 소심남이긴 합니다만...

 

저희들이 커 왔던 세대와 지금 아이들이 자라나는 환경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보통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복작거리며 지내던 때와 한 두명의 귀한 애들이 왕자, 공주처럼 키워지는 시대는 같을 수가 없겠죠. 물질적인 면에서는 더 비교할 필요도 없겠구요.

 

@ashfonbingham/unsplash

 

갑작스런 풍요로움에 적응하지 못해 비만이라는 새로운 질병에 어쩔줄 몰라하는 현대인들처럼, 우리들은 적절한 훈육의 기준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 채 우리들의 왕자와 공주들을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타산지석이라고, 다른 집 애들의 행동을 보며 문득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뭔가 이건 좀 아닌데 싶은 느낌만 들었을 뿐이고, 나중에 이 찝찝함은 무얼까 생각하다가 든 단상들이었습니다.

'어느 사이에 내가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하는 그런 생각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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