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머리털 이곳 저곳이 희끗거립니다.
그간에는 건강에 별 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었는데 몸 이곳 저곳에서 이상신호들이 갑툭튀하고 체력저하마저 실감하게 되는 일이 잦아집니다.
마치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나이듦에 대해 혹은 늙어감에 대해 무심하게 쳐다보지 않다가 문득 자신의 나이숫자를 보고 식겁하곤 합니다. 어린 시절 지금 제 나이의 어른들을 봤을 때의 느낌이 되 살아나기 때문이죠...
서서히 가열되는 냄비 속에서 뜨거운 줄도 모르고 삶아져가는 개구리처럼, 그렇게 소리없이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을 참 무던히도 모르고 지냈더군요.
하긴 두 손안에 쏙 들어오던 큰 아들이 어느새 장성하여 저보다 한 뼘은 키가 더 큰 성인이 된 상태이니, 어찌보면 애써 세월의 무상함에 눈 돌리고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젊고 아름다운 시절은 가고, 늙고 추함으로 인식되어지는 노년만 남았구나 싶은 생각에 울컥하기도 합니다.
우리 어린 시절, 어르신들의 훈계는 참으로 자연스럽고도 흔한 일이었죠.
집안 어르신들 뿐 아니라, 지역사회 어르신들까지...
요즘 시대같으면 당장 세대간 갈등이 불거질 만한 일들에 대해서 어르신들이 이런 저런 지적을 하시는 경우가 참 많았지요.
시대가 변하고, 노인들에 대한 인식이 천양지차로 변하면서 이런 모습은 자취를 감춘 듯 합니다.
유교사상이 지배적이던 한국 사회에서는 어르신들의 역할이 큰 위상을 갖고 있었지요.
요즘은 어르신들과 같이 사는 경우도 많지 않을 뿐더러 같이 산다해도 예전과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을 것 같아요.
꼰대란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였지만, 최근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되었죠.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참 꼰대같은 사람들 꼴불견이었죠.
단어가 주는 뉘앙스에서 알수 있듯이, 뭐 그리 좋은 모양새는 연출하지 않았을 법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었고 대개 평범한(?) 사람들 눈에는 고지식하고 쫌 꽉 막힌 느낌의 사람들이 떠 오르니까요.
엊그제, 지인 집에 찾아갈 일이 있었습니다.
급하게 상의할 일이 있어서 간 거였는데, 하필 또 다른 손님이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더군요.
애 둘을 키우고 사는 이혼남이었는데, 그 쪽 또한 잠깐 들러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던 모양이더라구요.
누구에게 하는 인사인지도 모르게 걸어 들어오면서 '안녕하세요' 하며 외치는 예닐곱 살 또래의 남매들은 바로 집안 수색에 들어갑니다.
거실 이곳 저곳을 탐방하고 놓여진 물건들을 서슴없이 만지고 조작하고 마치 자기 집에라도 온 것처럼 들쑤시고 다니더군요.
애들 아빠는 아이들의 그런 행동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다만, 아이들에게 주의를 많이 주었는지 발 뒤꿈치를 들고 뛰어다니더군요.
잠깐 동안이었지만, 애들의 행동이 뭔가 이건 아니다싶은 꼰대(?)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연한 타인의 공간인데, 철없는 아이라는 이유로 타인의 물건들을 주인의 허락 없이 이것저것 만지고 건드리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한거죠.
입이 근질거렸지만, 차마 남의 집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 같아 목까지 올라온 말을 삼켰습니다.
여자애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 같더니, 지인의 딸 것으로 보이는 쿠션인형을 들고 나옵니다.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깔아 뭉게고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는 에너지 덩어리입니다.
그 모습을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지인의 딸은 그냥 묵묵히 보고 있더군요.
애들의 행동은 역시 보고 자란 그대로 따라하는 경향이 있을겁니다.
어쩌면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다른 집에 가서 저런 행동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최소한 제 기억속에 제가 본 앞에서 우리 애들은 타인의 물건을 상대방의 동의 없이 함부로 손대거나 타인의 공간을 들쑤시고 돌아다닌 기억은 없습니다. 그런 행동을 했다면, 나무라고 못하게 했을 것 같구요...
철부지 어린애들의 천방지축같은 행동을 너무 꼰대처럼 바라본 걸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제 스스로의 모습이 그렇게 싫어하던 꼰대가 되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뭐 실은 남에게 싫은 소리는 거의 못하고, 혹여라도 못 참고 입 밖으로 내 뱉으면 두고 두고 후회하는 소심남이긴 합니다만...
저희들이 커 왔던 세대와 지금 아이들이 자라나는 환경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보통 대여섯명의 아이들이 복작거리며 지내던 때와 한 두명의 귀한 애들이 왕자, 공주처럼 키워지는 시대는 같을 수가 없겠죠. 물질적인 면에서는 더 비교할 필요도 없겠구요.
갑작스런 풍요로움에 적응하지 못해 비만이라는 새로운 질병에 어쩔줄 몰라하는 현대인들처럼, 우리들은 적절한 훈육의 기준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 채 우리들의 왕자와 공주들을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타산지석이라고, 다른 집 애들의 행동을 보며 문득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에는 뭔가 이건 좀 아닌데 싶은 느낌만 들었을 뿐이고, 나중에 이 찝찝함은 무얼까 생각하다가 든 단상들이었습니다.
'어느 사이에 내가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하는 그런 생각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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