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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단상]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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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3lcl/unsplash

 

"난 너희들을 모두 똑같이 사랑한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

일주일이면 2~3번은 듣곤 했다.

남자가 '사랑'이란 말을 참 쉽게도 내 뱉는다고 생각했다.

한 반에 60여명 가까운 학생들이 우글거리던 시절...

학생들 이름도 다 외우기 힘들 때, 담임은 우리들 모두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늘 말하곤 했다.

순진하게도 그 말을 믿었다.

 

빨리 깨어난 학생들은 벌써 눈치챘을 법한 사실인데도, 별 다른 생각없이 살던 나는 담임이 그렇다고 말하니 그런가보다 했다.

사람들의 말이 '겉과 속이 다를수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했던 얼뜨기 시절이었다.

고지식한 집안내력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지금도 속과 겉이 다른 얘기를 거의 못한다.

얼굴에 '나 거짓말 중이야'라고 써져 버리기 때문이다.

 

@garrettpsystems/unsplash

 

60여명의 제자들을 똑같은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담임의 초인적인 인간애를 뭐 굳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고 지내던 어느날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었다.

 

"이따가 집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교실 뒷 편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조용한 밤 교실 공기를 난타했다.

술 한잔 걸쳤는지, 반에서 주먹 꽤나 쓰는 녀석(동석. 가명)이 사~알짝 불량기 섞인 목소리로 교실에 순찰 나와 있던 담임에게 큰 소리로 말했던 것이다.

조용하던 교실에 낮은 웅얼거림이 부스럭거렸다.

동석이가 언제부터 안 보였는지, 그리고 언제 나타났는지는 잘 모른다.

자율학습시간이면 한 두녀석은 호기롭게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나타나곤 하는 일이 뭐 그리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었다.

낮 시간에 동석과 담임사이에 무슨 일인가 있었던 것 같은데, 당연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세한 내막을 몰랐다.

 

"너..너..너 이놈... 집으로는 왜 오겠다는 거야...너 이놈"

 

담임은 아이들 앞에서 굉장히 당황했음을 표정으로 여과없이 드러내며 말을 더듬었었다.

 

@auntneecey/unsplash

 

동석이는 무슨 일인가를 계기로 마음을 다 잡고 공부를 시작했었다.

학기 초에 껄렁거리며 점심시간이면 반 급우들의 도시락을 뺏어 먹던 녀석이었는데 개과천선을 한 셈이었다.

그런 동석이를 도와주려는 우등생 창규(가명)도 동석의 그런 변화와 연관이 있어 보였다.

당시 전교에서 20등 안에는 들 정도로 공부를 잘했던 창규는 아쉽게도 동석이를 끌어안고 공부하면서 자신의 성적은 점점 아래로 떨어져 갔다.

하지만, 쉬는 시간 조차도 두 사람은 들러붙어서 가르치고 배우고 열정적으로 공부했었다.

두사람의 끈끈해보이는 우정은 어느 정도 급우들의 시샘어린 질투속에 학기 내내 지속되었다.

 

쇼맨쉽 강한 동석이는 공부마저도 참 요란스럽게 했다.

점심시간, 다른 애들이 놀러 나간 틈에도 공부를 했고 ...오는 잠을 떨쳐내려고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왔는지 교복 상의와 얼굴 머리등에 온통 물범벅이 된 채로 닦지도 않고 껄렁껄렁대며 교실로 들어오곤 했다.

 

학생들이 교사들의 내밀한 세계를 가늠할 방법은 없었고, 대부분 그럴만 한 오지랖도 없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 날의 해프닝은 창규의 성적부진과 연관되어 담임이 동석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나 싶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이것이 창규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에서일지 아님 학급 성적 평균의 저하를 우려하는 마음에서일지 그것도 아니면 '될 성 싶지 않은' 녀석 도와준답시고 '될성 부른' 나무가 망가질까 걱정되는 마음에서였는지 알 길은 없다.

단지 창규와 동석의 미미한 행동변화가 담임이 뭔가를 했음을 추론케 했고, 그런 루머성 추측들이 수근대며 입에서 귀로 전해졌다는 기억만 난다.

 

@nci/unsplash

 

"너희들을 똑같이 사랑한다."던 담임의 입 바른 소리는 수 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 속에서 본색을 드러냈다.

가만히 냅둬도 알아서 공부 잘 하는 우등생들에게는 사랑과 관심을, 그리고 막상 관심이 필요한 문제아나 해 볼려고 기를 쓰지만 성적면에서는 약간 뒤 처지는 학생들에게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그것이 담임이 늘 강조했던 똑같은 사랑의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다.

수 십년이 지나 돌이켜보면, 개인적인 판단으로 치자면 담임의 교사로서의 자질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당시에 몇 몇 교사들은 독재정권의 횡포에 이를 갈며 젊은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곤 했었는데, 그러고난 다음 해에는 학교에서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실력있는 선생님들은 작은 독재국가였던 학교 시스템에서 뛰쳐 나가 학원가로 가 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학원에서의 로비였는지, 학교 내에서의 탄압이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실력있는 젊은 교사들만 늘 학교에서 사라지는 것 같이 느껴졌었다.

학원가로 건너간 선생님들도 비교적 순수한 학교아이들과는 달리 조금은 닳아진(?) 학원애들을 상대로 독재정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yvesalarie/unsplash

 

독재권력에 의해 언론이 장악되어 실상을 알지 못하던 시절, 순진한 학생들이 스스로 깨어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신변의 위험을 감수하고서 학생들에게 실상을 알리고자 분개했던 교사들이 '불순분자'로 주홍글씨를 박힌채 교정에서 퇴출되는 모습... 당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런 모습들을 보며 사회의 부조리함을 간접체험하였던 순진한 학생들에게 뭔가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한 권력(혹은 사회악?)의 힘에 대한 공포가 소리없이 스며들었을지도 모른다.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젊은 세대를 교육하는 교권은 정말 소중히 보호해야 할 권리이다.

자격미달의 교원이나 편협한 사고방식을 지닌 교사들이 많아질 수록, 우리의 미래는 어두워질 수 밖에 없다.

 

지난 정권들에서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교육계를 길들이려는 시도가 여러차례 있었다. 참으로 경악스러운 일이다.

 

@shubhamsharan/usn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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