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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끄적

[단상] 색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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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히 읽고 사색하고 토론하고 공부하면 좀 더 현명해질 수 있을까?

우리 눈에 덧 씌워진 색안경의 색을 지우고, 투명한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을까?

유혹에 흔들림이 없어지고, 듣는 모든 것들에 대해 반응이 부드러워진다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온갖 유혹에 흔들리고 듣는 것들에는 화를 돋우는 것들 투성이다.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된다.

- 투키디데스

역사는 언제나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한 번은 비극의 형태로, 다음에는 우스꽝스러운 희극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상이한 형태의 비극들로 계속 반복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몇몇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들이 있으며, 그것에 비추어 볼 때 역사학은 수사학적 의미가 아닌 지극히 과학적인 의미에서 여전히 <삶의 스승>이다.

- 움베르토 에코, <미네르바 성냥갑>

 

살다보면 때론 예기치 않은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사과하고 응당의 대가를 치루면 될 일인데, 아무도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혹은 아니라고 우기면 되겠다 싶은 이기심으로 혹은 단순히 당황하여 실수를 부인하고 게다가 그 실수의 원인을 탓하며 상대방에게 잘못을 전가하기도 한다.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서야 '원래 저런 인간이었어?'하고 그저 속으로 욕 한번 하거나 영 아니다 싶으면 얼굴 안 보고 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관계망 속의 인간들에게서 이런 일을 당하면 해결책을 찾기가 힘들다.

 

@cristian_newman/unsplash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으로, 남이 할 때는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이 할 때는 합리화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


 

우리들의 인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고귀한 인격의 소유자를 제외하고는, 너나 할거 없이 '내로남불'하지 않고 살지 않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들어 자타공인 고귀한 인격의 소유자라 칭송받았던 사람들이 줄줄이 내로남불 인격의 소유자였음이 드러났을때 느꼈던 인간적 실망감...

예수님, 석가님 등 인류가 추앙해 온 성인이 아닌 한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 넘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닐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쓸함을 떨쳐내기는 힘들다.

하긴, 스스로도 내로남불하며 살고 있으면서 타인에게는 다른 모습을 기대한다는 게 어불성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와중에 소도둑과 바늘도둑이 같냐며 항변하는 걸 본다.

일종의 보이지 않는 선을 지키자는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선은 누가 정한 것이며 설령 정해져 있다한들 그 선의 합리성이나 타당성 여부는 또한 별개의 문제가 아닌가...

@evertonvilla/unsplash

 

어찌되었건,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판단기준으로 그 선을 가늠하고 살고 있는 게 현실의 우리들 모습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수한 일들을 보고 있자니 가뜩이나 애매한 이런 선들의 경계가 더욱 불투명해지고 사라지는 듯한 인상이 든다.

기억하는 역사 한도 내에서도 어느 한 순간 세상이 공명정대 했던 적이 있었나 싶긴 하지만, 사람들이 좀 더 깨어나면서 우리 사는 공동체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잠시 동안의 착각이었나 싶다.

여전히 능력있고 용감한 인간들은 자신의 재능을 공동체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자신만을 위해 쓰고 있는 듯 하고, '내로남불'식의 요설로 혹세무민을 일삼는 듯 하다.

게다가, 예전보다 더욱 강력해진 뇌피셜로 자신의 불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왜 나의 아름다운 로맨스를 이토록 뭐라하는것이지?' 의아해 하는 것 같다.

@josechomall/unsplash

완력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정말 힘 쎈 사람이 짱이었다.

인권? 그런거 없던 시절이었다.

힘쎈 사람은 권력을 쥐고,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고 힘없는 인간들은 그저 권력자의 처분에 몸을 맡기고 벌벌 떨며 살았다.

불과 몇 백년 전의 조선시대만 해도, 양반들이 자기 집안의 노비들을 어떻게 다루었고 그 노비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해보면 알 일이다.

물론 인권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깨어나면서 노비들도 항거를 한 적이 있긴 하다.

주변환경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실제 예이다.

사극을 보고 있노라면, 노비근성에 쩔어 있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기 힘들다. 짐승우리같은 처소에서 먹고 자면서 주인의 손발이 되어 온갖 잡일을 해 주면서도, 그것이 자기의 운명이라 믿고 충성을 다하는 모습들 말이다.

발로 걷어차도 깨깽하고 나서는 다시 주인의 발 밑에서 꼬리를 흔드는 충견들처럼...

@fabrizioverrecchia/unsplash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의 우리들은 과연 얼마나 깨어있는 것일까?

형태와 내용만 바뀐 노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국가의 최고 우두머리라는 대통령...

역대 대통령 중에 은퇴 후에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해피엔딩을 맞이한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는 나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는 정치인들은 넘쳐 나지만 오늘도 죽네 사네 힘들다고 아우성인 사람들이 부지기수인 나라.

물리적인 폭력이 어마무시한 돈과 연결되며 끈질기게 괴롭히는 소송으로 진화하여, 누가 더 고소고발을 잘 이용하는 가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은 세상살이 속에서 송사 한번 겪지 않고 무사히 살아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부르짖던 탈주범의 공허한 외침은 여전히 진행형인지도 모르겠다.

깨어있는 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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