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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고독이라는 병. 김형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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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홍림. 예스 24

 

50년만에, 2016년도에 재 출간되었다는 김형석 교수님의 저작입니다.

그러니까, 1966년 경에 쓰여진 책이군요.

교수님이 1920년에 태어나셨으니 올해로 100세를 넘기셨고, 40대 중반에 쓰신 글들이군요. ^^

 

굵직 굵직한 대형 사건들로 점철된 드라마틱하게 굴곡진 한국 근 현대사, 그 한 세기 가량을 몸으로 부대끼며 지나온 노 철학자의 젊은(?) 시절의 기록들 속에서 삶을 바라보는 혜안과 통찰을 접해 볼 수 있는 귀한 책입니다.

 


 

어제 저녁, 갑작스레 굵어진 소낙비 속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죠.

운전 중 라듸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밤안개>로 유명한 가수 현미 씨의 인터뷰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더군요. 공익 광고인 듯 한데, 끝까지 듣진 못했어요.

 

인터뷰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어느 날 자고 있는데, 아버지가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깨우더래요. 그렇게 갑작스레 시작된 피난살이는 6.25 전쟁 난리통을 온 몸으로 겪어낸 세대들에겐 지울 수 없이 아픈 상처로 남아 있는 듯 했습니다.

동생들과 함께 십리길을 걸어 도착한 피난 열차는 이미 만원이 되어 탈 수 조차 없어, 그냥 그대로 걸어서 이남으로 이남으로 내려왔다죠.

서로 헤어지지 않으려고 끈으로 서로를 연결해 묶고 다녀서 그나마 헤어지지 않았다고 하니, 그 난리통에 야단법석은 얼마나 끔찍했을까요... 어린 동생들은 엄마 아빠가 들쳐 업고 조금 큰 아이들은 이불이며 세간살이, 쌀 등을 이고 지고 질질 끌고서 말이죠... 그러다가 빈 집에 들어가 잠깐 눈 부치고 또 이동하고...

말만 들어도 그 고생이 얼마나 극심했을지 어느 정도 가늠이 되더군요.

 

고단한 피난살이.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그렇게 2달을 걸어서 부산까지 왔다고 해요.

인터뷰 과정에서 생략된 무수한 생존의 몸부림은 말해 무엇할까요...

울먹이며 간략 간략하게 말하는 현미 씨의 증언을 통해 전해지는 시대의 아픔은 젊은 세대들에겐 공감하기 힘든 과거일수도 있겠죠...

 


 

김형석 교수님도 평안북도 운산 출신으로 1947년 탈북하였습니다. 이후 서울 중앙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교사와 교감으로 일하다 1954년부터 31년간 연세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로 일해왔구요. 지금과는 달리 중고등교사가 대학교수를 하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외국에서는 지금도 그런 것 같더군요...

 

한때 나는 자유로운 지성인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자아를 상실한 군중 속에 외로이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군중 속의 고독 같은 느낌이었다.

나 자신의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한 방법이 글을 쓰는 일이었다. 어떤 것은 나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했다.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삶의 이야기가 그 출발과 내용이 되었다.

 

- <고독이라는 병> 서문 중에서

 

요즘 시대에는 모든 게 풍요 속의 빈곤일지도 모릅니다. 자본주의의 한 특성이기도 하죠.

너무 많아서 오히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다는 역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간들 중에서 어떤 책들은 정말 출판사의 안목과 의도가 의심스러운 것들도 있죠.

잡스러운...뭐 같지도 않은 책들 속에서 보석같은 양서를 찾아내는 것도 한가지 즐거움 일수 있지만, 때로는 몹시 짜증스러운 일일수도 있구요.

 

잘 써진 책을 읽다보면 좋다는 느낌이나 뭔가 내면이 성숙해 간다는 기분 좋은 흐름이 유지되지요.

하지만, 책장을 덮으면서 이런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아쉬움이 늘 있었더랬죠.

영화나 음악, 그림을 감상할 때는 그 순간의 만족으로 즐기면서, 왜 꼭 책은 읽고 나서 무언가 굵직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게 된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아마도 학창시절 책 읽고 공부하면 나중에 시험봐서 평가받고 하던 그런 뒤끝일까요?

 

하지만, 이런 거에 대해서 김형석 교수님은 아주 뛰어난 비유를 하셨더군요.

 

...어떤 책을 통해 그 내용을 안다는 일은 마치 콩나물에 물을 주는것 같아서 다 흘러가고 아무것도 남는것 같지 않으나 그 동안에 자기가 자란다는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 178

 

인생, 마음, 가치, 지혜, 고향이렇게 5가지 카테고리로 나누어서, 대략 대 여섯개의 칼럼들을 모아놓았는데요 개인마다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글들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전 참 좋았습니다.

 

문득 언젠가 지인이 저보고 "살다가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구에게 조언이나 도움을 받느냐?"고 물어 본 적이 있었죠... 세상 살아가다 보면 혼자 힘으로는 살 수 없으니까요...

 

한데 막상 그런 질문을 받고 돌이켜보니 혼자서 낑낑대고 지나왔을 뿐이더군요. 도움을 청하고 싶은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슬픈 일이죠...

고난과 역경을 통해 한 층 성숙해진다고 하던데, 어찌 어찌 아슬아슬하게 삐딱선을 피해 살아온 셈이더라구요. 그나마 운이 좋았던 거죠.

 

이 책을 읽다보니, 문득 그 생각이 나네요. 김형석 교수님 같은 이런 분이 내 주변에 계셨다면 당연히 이 분에게 찾아가 조언을 들었을 거라구요. 실제로 대구에서 고등학생이 교수님의 조언을 듣기위해 상경해 찾아 온 얘기도 책에 실려 있습니다.

 

@christhenryphoto/unsplash

 

교수님은 흔히 말하는 주색잡기 같은 것과는 거리가 한참 먼 고고한 학자의 인생을 사신 분 같아요.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교육계 인사들과 함께 기생집(?)에 갔던 에피소드를 읽다보면 빙그레 웃음이 나옵니다. 샌님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보고, 나름 상남자인 척 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꽤나 비웃었겠죠. 아마도, 국민 세금으로 먹고 마시면서 말이죠... 그 당시에는 관행처럼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꿈도 못 꿀 일이지만...

 

학자로서의 성취도 높은지 후학들이 교수님을 위한 기념관까지 마련해 드릴 정도이니, 고생 끝에 낙이 온 성공한 인생이신거 같더군요. 끼리끼리 모인다고 주변 지인들도 모두 훌륭한(?) 모범 사회인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는 삶을 영위하시는 듯 해요. 제 자신을 돌이켜보니 오직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아온 듯 해, 이제부터는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하지 않을까 다짐도 해 봅니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국가의 소중함을 알고 공동체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사회구성원들에게 따스한 인정을 아끼지 않는 삶을 살아온 분의 부드러운 충고들은 그 어떤 따끔한 질책보다도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시간이 되는대로 김형석 교수님의 책들을 더 찾아 읽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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