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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오직 두사람. 김영하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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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학동네. 예스 24. 2017년 5월 출간

 

 

이력을 보니, 1968년 강원도 화천 태생의 김영하 소설가는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역을 옮겨 다녔다고 한다. 최종 학력은 연세대 경영학 석사이고, 한 번도 자신이 작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작가 지망생들이 보면 울컥 할 수도 있겠다. ^^

친구따라 오디션 갔는데, 친구는 떨어지고 본인은 캐스팅 되어 잘 나가는 아이돌 스타가 되었다는 모 군처럼...

 

김영하 작가는 1990년대 PC통신 하이텔에 올린 짤막한 콩트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는 것에 자신의 재능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참 오래 전 얘기이다. 사진 한 장 다운 받으려면 1시간을 버벅대던 시절이었는데...

 

모 방송국 예능 프로(알쓸신잡)에 얼굴을 선 보일때,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책 한권을 뚝딱 읽어내는 모습을 보고 정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또한, <살인자의 기억법>의 저자였다는 사실도 뒤 늦게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방송을 탄 후 얼마나 인기였는지, <살인자의 기억법>을 도서관에서 대출받을 수가 없었다. 소설책은 먼저 대출해서 읽어보고 '소장가치가 있다' 생각되면 책을 사곤 했기 때문에 내 손에 쥐기까지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었다.

 

김영하 소설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그의 책들에 달린 인터넷 상의 리뷰에는 "흡인력이 뛰어나다"는 평들이 많이 달려 있었다.

왠지 난 시간 낭비처럼 느껴져 소설류는 그닥 즐겨 읽지 않는 편견이 생겨 있어 유독 편식이 심한 책 장르인데, 그러다 우연히 어느 작가에 꽂히게 되면 그 작가의 전작들을 모두 훓어보는 편이다.

때로는 소설에서만 맛볼수 있는 멋진 작가들의 세심한 관찰력과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표현력에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하고, 이런 글들을 세상에 남겨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가도 현타가 오면 어느새 시들해지곤 했었다.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상위 소수만이 살아남는 세계가 문학계가 아니던가.

 

오늘도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간과 인터넷 상의 무수한 글들... 거기에 시선을 사로잡는 온갖 동영상 물까지...

 

저는 생각했어요.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에 대해서요. 이제 그만 화해하지 그래, 라고 참견할 사람도 없는 외로움...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말다툼.

만약 제가 사용하는 언어의 사용자가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면 말을 조심해야 겠어요. 수십 년 동안 언어의 독방에 갇힐 수도 있을테니까.

그치만 사소한 언쟁조차 할 수 없는 모국어라니, 그게 왠 사치품이에요?

 

- <오직 두 사람>중에서

 

기이한 방식으로 옭아매어진... 특별한 부녀 관계가 있었다.

자녀 들 중 유독 아빠의 사랑을 받던 딸.

다른 가족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 관계. 희귀언어 사용자와 같았던 아빠와 딸...

 

대학교수로서 사회적 지위를 누리던 아빠의 이유를 알수 없는 끝없는 여성편력. 이로 인한 이혼...

그 와중에 중간에 끼인 딸의 이해하기 어려운 생존 방식.

다소 생경한 느낌으로 읽게 되는 주인공의 난해한 처지...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을 평범한 우리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빠를 암으로 떠나 보내며, 한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삶을 마주한 딸의 회고록 같은,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오직 두사람>은 읽고 나서도 뒷 맛이 개운치 않다.

뭘 얘기하려고 하는지도 와 닿지 않는다. 두 부녀사이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일 듯...

 


 

'뉴욕타임즈 국제판'에 매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칼럼을 쓰던 그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썼다.

이에 대해 편집자가 발언의 근거를 물었다고 하는데, 김영하 작가는 '근거는 없다. 그냥 작가로서 나의 직감이다.'라고 했다는데...

 

김영하는 작가는 팩트를 확인하고 인용할 근거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잘 느끼는 사람'이라는 직업관을 갖고 있었다.

흡인력 강한 문장들을 써 낼 줄 아는 소비자 친화성 작가로써의 정체성을 잘 표현한 것 같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에 어떤 불합리한 점을 제시하면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기자나 정치인 등 다른 직업군이 해야할 일이지, 작가가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닐 듯 하긴 하다.

 

<오직 두사람>을 비롯하여 6개의 단편이 실려 있는 이 책은, 제9회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인 <아이를 찾습니다>와 제 3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인<옥수수와 나>를 만나볼 수 있다.

 

범죄자와 작가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 은밀히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계획이 뻔하면 덜미를 잡힌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때로는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다는 점도 그렇지...

 

- <옥수수와 나> 중에서

 

상당 수의 소설들이 그렇듯이, 김영하의 책 속 주인공들도 무언가를 상실했거나 내면이 파괴되어 있거나 힘든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사람들이다.

이 책의 단편들은 신박한 문장들은 눈에 그리 많이 띄지 않은 반면...김영하 작가의 세간평 그대로 흡입력 강한 작품들인것 같다.

 

@brunett23/unsplash

 

문학작품에 우리가 학생시절 강요받았던 시험지 답안 같은 명확한 정의는 없다.

독자들 저마다 각자의 감상이 있을뿐...

똑 같은 문장에도 서로 다른 해석이 생기고 색다른 감흥이 일어날 터이다.

 

등산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늘상 하는 말 "어차피 내려올 것을 뭐하러 그 고생하며 올라가?"...

대학시절 친구 중 하나가 얘기했던 말 "어차피 다 허구의 얘기들... 뭐하러 그런 헛소리를 시간 들여가며 읽어?"...

귀 얇은 나는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소설책에 대해 참 안 좋은 편견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문득 문득 소설책 속에 발견하는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문장들은 이러한 정서적 트라우마를 조금씩 깨트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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