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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여행

백년을 살아보니. 김형석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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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덴스토리. 예스 24

 

100세 시대...

아마도 지금 태어나는 세대들은 지구상에 큰 이변이 없는 한 100살 까지는 살지 않을까 싶다.

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나라들도 급속도로 많아질 것이다.

한국의 경우,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빠른 속도의 고령화 현상으로 머지 않아 여러가지 사회문제들이 심각해 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인 논의들이 부족한 듯 하여 걱정이다.

유럽 여행 다닐때 보면, 극 노인들이 서로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공공장소에서 자주 눈에 띄었었다.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과 얼굴 표정이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는 현 생활을 대변해 주는 듯 해 보였다. 우리나라에 비하면, 다소 생경한 모습이라 기억에 많이 남았고 나도 저 나이 때에 저런 모습이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스쳐지났던 기억이 난다.

늙고 병들어 간다는 것... 외롭고 고독해진다는 것...

나이 먹는 것은 철 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누구에게나 탐탁치 않은 일일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가끔 청소년들이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는 대사를 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속으로는 '저 때가 제일 좋은 때인데...'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얼마나 힘들면 그런 말을 할까 싶지만...

사람들은 미래를 계획하고 목표를 세워 그것을 이루려 애쓰며 산다. 대부분 인생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하지만,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어르신들의 경우는 사실 불확실한 내일을 알 길이 없기에 노쇠한 육체와 약해져가는 정신을 부여잡고 하루 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언젠가 봤던 요양병원 침대에 움직임 거의 없이 누워계시던 십수명의 어르신들 모습은 삶의 끝자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현실화시킨 현장이었다.

@coopery/unsplash

 

한국 철학계의 대부로 인정받는 김형석 교수님의 <백년을 살아보니>는 100세를 앞 둔 노 철학자의 인생 회고이자 삶에 대한 충고를 담아 놓은 책이다.

우리 사회에는 어느 샌가 "꼰대"라는 말이 대중화되어 있다.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였는데, 최근에는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으로 타인에게 자신의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직장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빗대는 말로 확대 사용되고 있다.

지혜로움을 지닌 한 사회의 어른으로써 대접받아야 할 어르신들의 위치가 언제부터인지 걸핏하면 꼰대'라며 면박을 주는 대상으로 희화화 되어버린 현실은 노인세대들에게 극심한 모멸감과 회한을 주는 현타이다.

철학자이자 수필가인 김형석 전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1920년 평안북도 운산 태생으로 한국사의 굵직한 사건들의 현장을 두루 겪으며 100세에 이른 분이었다.

일제시대를 거쳐, 해방과 전쟁, 탈북 등 현대인들에겐 상상하기 힘든 격동의 세월을 체험하였고, 그 와중에 6 남매를 모두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워내며 스스로도 탁월한 학업적 성취를 이뤄냈으니 가히 평범한 분은 아닌것 같다. 후학들이 김형석 교수를 추앙하며 강원도 양구군에 양구인 문학박물관 '철학의 집'을 개관시킨 것도 이 분의 인생이 성공적이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백년을 살아보니>는 복잡하고 심오한 철학서적이라기 보다는, 마치 후손들에게 다정다감하게 해주는 따뜻한 인생의 충고들이다.

100세에 이르다보니, 때론 후배들의 죽음을 보게 되기도 하고 육체의 쇠락으로 인한 아내의 병간호와 사별 등으로 생로병사의 인간사를 타인에 비해 훨씬 많이 겪으셨을 것이다.

@fuuj/unsplash

 

책을 출간할 때는 97세였으나, 이후 세월이 좀 더 흘렀으니 올해로 백세를 넘기셨다.

책 내용 중에, 제자들과 식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고 왜소한 극노인을 두고 7~80대의 덩치 큰 할아버지들이 식당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순간이었다.

어려운 시절 자신을 지도해 주셨던 은사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한 해프닝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서빙하는 직원이 깜짝 놀랐다는 내용이다.

책 내용을 읽다보면, 과연 97세의 나이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기억력도 좋으시고 사고방식도 합리적이시다. 아마도 꾸준한 학문 연구의 노력 덕이지 싶다.

최근 뜨거웠던 '미투운동'에 대한 언급도 눈에 띈다.

자신들의 손녀 딸 입장으로 생각해보니, 과거에 몇몇 주점이나 유흥점에서의 여성에 대한 농지꺼리나 성희롱 등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는 70대 할아버지의 말..."그땐 그런 짓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 다들 그랬으니까..."

삶의 끝자락에서 담담하게 회고하는 굴곡진 삶의 모습은 사실 그 행간에서 읽혀지는 수 없이 많은 고통의 나날들이 너무도 절절하게 느껴지는 까닭에 오히려 달관의 경지처럼 보인다.

자그마한 스트레스에도 바르르 떠는 내 모습을 돌아보며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했나 싶기도 하다.

노인정에 가면 80대 어르신이 6~70대 어르신보고 젊은 애들 이라고 한다지만...

@seantookthese/unsplash

 

김형석 교수님은 인생의 행복은 사랑이라고 얘기하신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하지만, 돈과 명예보다는 사랑이 담긴 가정과 사회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고 회고하신다.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익어가는 것'이라고 술회하는 노 철학자의 촌철살인 말씀은 초고령이심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 노신사의 품격이기도 하다.

육체적 성장이야 20대 초반을 정점으로 하여 쇠락의 길을 가지만, 정신적 성장과 인간적인 성숙에는 한계가 없다는 말씀은 정말 귀 기울여 새겨들을만 하다. 좀 더 일찍 이런 책들을 접할 수 있었다면, 내 인생도 지금과는 조금은 달리 변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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